2012.08.15 06:53

[단편/서부극]Fatman Blues

조회 수 374 추천 수 1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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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완전한 허구입니다.     

--

 

 

“큰일났어요, 스미스 씨! 보안관이...”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문을 열고 들이닥친 덕분에 보안관, 아니. ‘전’ 보안관 헥터는 큼지막한 엉덩이를 벅벅 긁으며 일어났다. 그는 바지 위로 흘러내린 뱃살을 애써 감추며 눈을 비볐다. 매일 먹고 마시고 나서 얻은 훈장이었다. 아직 술도 다 안 깼는데. 역광에 눈을 찌푸리며 올려다보자, 헥터의 앞에는 앞집 꼬마가 서 있었다.

 

“꼬마야.” 헥터가 말했다. 그의 머리는 아직도 핑핑 도는 것 같았다.

 

“예?”

 

“뭔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나 보안관 손 뗐단 말야. 저번에 너네 부모님이 앞장서서 나 짜르는 거 봤거든? 그러니 자게 좀 냅둬라. 제발.” 그는 돌아누우려고 했지만, 손 몇 쌍인가가 거칠게 그를 흔들었다. 헥터는 화를 버럭 내며 일어났다.

 

“아오, 이 애새끼가 정말! 나 좀 내버려 두라고!”

 

“그럴 수는 없소. 왜냐면 보안관이 이 꼴이 됐으니까.” 꼬마네 아버지였다. 이름이... 알버트였나? 말고도 수심에 가득 찬 얼굴들이 여럿 있었다. 의사와, 보안관을 부축하고 있는... 부축하고 있는... 보안관의 가슴팍에는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시퍼렇게 변한 얼굴색으로 판단하건데 이미 가망은 없어 보였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그 친구 안으로 들이지 마요. 젠장! 어제 청소했는데.” 이미 바닥에 보안관의 가슴에서 흘러내린 피가 얼룩을 만들었다.

 

“샘 ‘토끼눈’ 맥거핀과 그 패거리가 마을에 왔소. 당장 내일까지 마을에 있는 돈이니 물을 전부 긁어서 바치지 않는다면 마을 사람들은 전부 죽이고 건물마다 불을 질러버리겠다는군.” 알버트가 말했다. 토끼눈이라니 귀엽게밖에 들리지 않는 작명이었지만, 아무튼 악명 높은 범죄집단이었다. 지나가는 마을마다 시체와 불탄 잔해밖에 남질 않는다는 지독한 놈들. 특히 우두머리인 ‘토끼눈’ 샘은 뽑았다 하면 세 명이 죽는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의 총잡이였다. 매일같이 시체가 불타는 연기를 쐰 탓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토끼 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무시무시한 일화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헥터는 코를 파서 그걸 침대 뒤에다 발랐다. 밖에서 바람이 불어, 먼지가 집 안까지 들이닥쳤다. 안 좋은 징조였다. 헥터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쩌라고. 다 갖다 주고 보내버리쇼.” 마을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분명히 기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일부는 헥터에게 주먹을 흔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럴 순 없어요! 놈들은 분명 물건은 물건대로 받고 우리 모두를 죽일 거요. 그렇지 않더라도 우린 천천히 말라 죽겠죠. 우기까지는 한참 남았는데도 비라고는 구경도 못 해봤으니까.” 의사가 말했다. 몇 년 전부터 여기에 눌러 사는 양반이었는데, 헥터는 솔직히 그가 부목이나 제대로 댈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저번에 총 맞고 총알 뺄 때 엉뚱한 곳 짼 이후로는 도저히 신뢰가 가질 않았으니까.

 

“아니, 그럼 어쩌라고. 나보고 그놈들을 처리하라고?” 헥터의 얼굴이 점점 시뻘개졌다. 단순히 숙취 때문에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소.”

 

“젠장. 나를 보안관 자리에서 끌어내린 건 당신네들이잖아. 싫어. 마을에 총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당신네들이 좀 해결하면 안 되는 거야? 총 못 쏘면 돌이니 쇠스랑이라도 가지고 가 보던지.” 헥터가 말했다. 그러자 마을 무지렁이들 중 하나가 그의 멱살을 잡고 끌어올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는 막상 붙잡힌 헥터보다 더 괴로운 표정이었다. 아무렴. 200파운드가 넘는 거구인데. 헥터는 멱살 잡힌 와중에도 그의 어깨 너머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도 회전초가 많았다.

 

“이 돼지 새끼가! 그러니까 네놈이 보안관 자리에서 짤린 거겠지!”

 

“이봐, 진정하게.” 무지렁이는 그대로 헥터를 내려놓았다. 헥터가 주저앉으며, 침대가 끔찍한 신음소리를 냈다. “스미스 씨? 어차피 빈 보안관 자리를 채울 사람은 필요해요.” 알버트가 말했다. “적격자가 누구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죠, 여러분?” 헥터는 침대 옆에 걸려 있는 탄띠에서 리볼버를 뽑아 그들을 겨눴다. 헥터의 손이 순간 잔상밖에 남지 않았을 정도로 귀신같은 솜씨였다. 몇은 감탄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몇은 공포에 질린 신음소리를 냈다.

 

“보자보자 하니까 이것들이 사람을 병신으로 아네. 니미럴 놈들아. 다시 말해두건데, 나는 보안관 나부랭이 할 생각 없어. 대가리에 납덩이 박아 넣기 싫으면 얌전히들 꺼지시지. 의사양반은... 별로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어 보이는군. 안 그래?”

 

“스미스 씨, 다시 생각해 보세요.” 알버트가 그 얄미운 얼굴로 이죽거렸다. “여기서 누굴 쏘거나 물러간다고 칩시다. 그러면 스미스 씨는 무사할 것 같아요?” 리볼버를 쥔 헥터의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저번에 스미스 씨를 굴리려다 만 타르가... 존.”

 

“예, 알버트 아저씨. 아직 남았죠. 헥터 아저씨 궁둥짝까지 시커멓게 칠하고도 남을 거고요. 깃털? 깃털도 필요하다고요? 배게 하나 째면 되죠 뭐.” 잡화상네 아들 존이 말했다. 알버트는 몹시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있었다.

 

“존, 너 임마. 새끼손가락만한 새끼가 어른한테 하는 말 꼬라지 하고는. 네 애미가 그렇게 가르치더냐?” 하지만 헥터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떨리고, 약하게 들렸다. 동시에 리볼버를 쥔 손도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걸치고 있었다. 보안관의 가슴에서 계속 피가 뚝, 뚝 떨어졌다.

 

“그래서 스미스 씨.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알버트가 말했다.

 

***

 

간신히 엉덩이를 바지에 구겨 넣고, 헥터는 주점으로 향했다. 지독하게 메마른 날이라, 헥터는 나가서 걷기만 해도 얼굴이 푸석푸석해지는 것 같았다. 흘러내린 땀도 금방 증발해 버릴 정도였다. 그의 가슴에는 은빛 별이, 허리춤에는 두 정의 리볼버가 빛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역시나 못 보던-그리고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것 같은-놈들이 넷이나 있었다. 헥터는 어기적어기적 걸어가서 그들 옆에 앉았다. 주점 안의 모두가 마른침을 삼켰다. 열심히 깽깽이를 켜고 있던 녀석까지 침묵해버리는 바람에, 누가 방귀만 뀌어도 다 들릴 판이었다. 실제로 다 들렸다. 방귀를 뀐 건 헥터였고.

 

“위스키. 이 친구들 것도 내가 사지.” 말라깽이 바텐더가 빨리도 헥터에게 잔을 내밀었다. 어찌나 떨리고 있는지, 헥터가 입도 대기 전에 카운터가 다 마셔버릴 판이었다. 보다 못한 헥터가 그걸 잡아챘다. 그는 그걸 단숨에 들이키고 옆을 봤다. 인상 안 좋은 친구들이 그를 마주 노려봤다.

 

“뭐야, 꺼져.”

 

“친구들. 그렇게 험악하게 굴지 말고. 나는 이 동네 보안관이야.” 헥터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의 입가가 떨렸다.

 

“그거야 가슴팍에 달고 있는 그 멍청한 별만 보면 알지, 돼지야.” 헥터의 바로 옆에 앉은 무법자가 말했다. 한술 더 떠, 그 옆에 있는 작자는 허리춤에 손까지 가져다 대고 있었다.

 

“이봐, 말로 해결하자고. 물도 돈도 다 갖다 줄테니까, 제발 이 마을에서 나가 줘.” 헥터의 이마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려, 카운터에 어두운 자국을 만들었다. 여전히 어색한 미소를 걸친 채였다.

 

“닥쳐, 멍청아. 죽-” 주점 안에 총성이 세 번 울렸다. 헥터의 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바닥에 팔이니 다리니 하나씩 떨어져 나간 채로 샘의 똘마니들이 뒹굴었다.

 

“비, 비겁한 새끼...” 샘의 똘마니 하나가 말했다.

 

“술집 안에서는 어지간하면 총 안 쏘는 주의지만, 친구들이 자초한 일이니까 너무 원망하지는 말라고.” 헥터가 말했다. 그가 한발 더 쏘자, 저기 뒤쪽에서 헥터에게 총을 겨누려던 똘마니의 손이 순식간에 벙어리장갑이 되어 버렸다. 녀석이 비명을 질렀다. 헥터는 제일 가까이 있는 놈의 멱살을 잡았다. 다리는 멀쩡한 놈이었는데, 그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가서 네놈들 두목에게 전해. 내일 정오까지 광장에 나오라고 말야." 놈을 바닥에 패대기친 뒤, 헥터는 주머니에서 백동화 몇개를 꺼내 뒤에 있는 놈들에게 던졌다. "자, 치료비다. 뒤에 가면 돌팔이가 하나 있으니까 그놈에게나 가버리라고." 똘마니들은 자존심도 잊은 채로 동전을 허겁지겁 주워서는, 제각기 꼴사나운 몰골으로 주점을 빠져나갔다. 그들 중 하나가 헥터에게 외쳤다. "야! 이 돼지새끼야! 우리 두목이 오면 네놈 따위는 죽었어! 네놈 관짝이나 짜 두라고! 네 덩치가 들어갈 관짝이나 있으면 말야!" 헥터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카운터 앞에 앉았다.

 

"그 친구들 것까지 따라 봐. 술값은 내일 놈들 두목한테나 받고." 바텐더는 있는 대로 싫은 기색을 보이며 위스키를 부었다. 그리고 뒤의 보드에 획을 하나 더 그었다.

 

*** 


 헥터는 광장에 섰다. 오늘 모래바람은 특히나 더 지독했다. 정오였지만 해 따위는 보이질 않았다. 그는 몇번씩이나 시계를 보면서, 신경질적으로 공이를 젖혀댔다. 바늘이 정확히 정각을 가리키는 것과 동시에, 광장에 있는 시계가 소름끼치는 낮은 소리로 울었다. 멀리서 모래바람 사이로 그림자 하나가 걸어왔다. 헥터는 리볼버에 총알을 하나씩, 하나씩 쟀다. 그리고 '그것'이 걸어올 때까지 총을 겨누는 시늉을 했다. 하나, 둘, 셋. 죽었다. 하나. 살았다. 하나, 둘... 헥터는 문득, 여기서 살아 돌아가봐야 부질없는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보안관 배지? 빛 좋은 개살구였다. 이 일이 끝나면 뺏어갈 게 뻔했다. 다시 마을의 골칫거리로, 누군가는 흠씬 두들겨 패고 타르에 굴린 뒤 깃털을 마구 꽂아서, 철봉 위에 싣고 다니지 못해 애를 태우는 그런 인간으로 돌아가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잠시 뒤,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모래 바람이 몰아치는 사이로, 무거운 자루가 쓰러지는 둔탁한 소리가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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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yarsas 2012.08.24 19:10
    아 엔딩이...
  • profile
    욀슨 2012.08.27 22:22
    생각하기 나름이지요.
  • profile
    윤주[尹主] 2012.10.19 05:24
    영화 스틸컷같은 단편이네요. 결말이 궁금해지네요
    잘 봤어요~
  • profile
    욀슨 2012.10.19 06:29
    일부러 결말은 애매하게 하긴 했는데, 지금 누군가가 열심히 작업하고 있으니 한번 기대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
    강건마 포인트맨 2012.10.19 06:29
    10점 뽀오나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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