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29 01:48

종점을 위한 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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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번역기 수준의 라틴어가 들어갔습니다.
*학살 수준의 형용사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글은 중학교 2학년 수준의 폭력과 개똥철학이 가미되어 있습니다. 불쾌할 수 있으니 보시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 주세요.
*이 글은 실제 단체, 인물, 사상, 사건 등 아무튼 실재하는 그 어떤 것과도 관계가 없는 완전한 허구입니다.

거리는 난장판이었다. 멀쩡한 가게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바닥에 온통 널려 있는 유리 파편 사이로 낙엽 대신 벗겨진 페인트와 재가 날아다녔다. 불이 거리의 건물들 대부분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시간은 분명히 낮이었지만, 하늘은 연기에 질식해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출근시간인데도 거리에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있더라도 주저앉아 먼 하늘만 쳐다보고 있거나,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거나, 울부짖고 있거나, 불을 지르거나 눈에 보이는 걸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고 있을 뿐이었다. 장관은 넓고 좋은 세단 안에 앉아, 창문 너머로 그 수라장을 쳐다보며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이미 물어뜯을 손톱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어디라고?”

 “30분만 더 가시면 됩니다.” 
 기사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핸들을 꺾었다. 건너편에서 갈지자로 오던 트럭이 스쳐 지나가 가로등을 받았다. 앞이 움푹 들어간 트럭에서 경적 소리가 길게 울렸다.

 “젠장! 이 빌어먹을 놈들은 뭐 이렇게 외진 곳에 박혀 있는 거야!”
장관은 뒷통수를 어루만졌다. 차가 주저앉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도로는 완전히 엉망이었고, 언제 눈먼 차에 받히거나 폭도에게 습격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다행히 차는 곧 인적이 없는 샛길로 빠졌다. 동시에 주위 풍경도 푸르게, 붉게 바뀌었다. 한참을 달려 차는 한 건물 앞에 멈췄다. 장관은 그걸 보고 개미집이나 골판지 상자가 차라리 더 쾌적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경호원들이 내리려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그는 건물의 윗부분에 붙은 간판을 봤다.

- 연구ㅗ-

 “간판 붙일 돈도 없나.”
경호원 둘에 이어 내리며 장관이 말했다. 그의 손에는 주스 상자가 들려 있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주 빅엿을 선사하는군요.”

 경호원이 앞서서 뿌연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비스듬하게 새어 들어오는 햇빛에 먼지가 가득 떠다니는 것이 비쳤다, 문이 닫히자 모습을 감췄다. 안은 불이 켜져 있는데도 어두운 편이었다. 비어 있거나 이미 끄트머리가 새까맣게 타 버린 형광등 덕분이었다. 홀에서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하나와 양 옆으로 난 긴 복도가 보였는데, 누가 시트르산이라도 쏟았는지 시큼한 냄새가 비위를 상하게 했다.


 “그제 전화하신 김 장관님이군요. 제가 여기 소장입니다. 그래봐야 이제 남은 사람은 저 포함해 두명 뿐이지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데 정신이 팔려 있던 사이, 장관의 앞에 가운 입은 산발남이 서 있었다. 피부는 햇빛이라고는 받지 못한 것처럼 허옇게 떠 푸석푸석하고, 자르다 자르다 이제 자기에게 맞는 스타일은 포기한 양 어정쩡하게 자란 머리가 눈을 가리고 있었다. 장관은 하마터면 들고 있던 상자로 그를 후려칠 뻔했다. 하지만 그는 산전수전 겪은 정치인답게 뜨악한 표정을 고치고, 그에게 주스 세트를 내밀었다.

 “작은 성의네. 만나서 반갑군.” 장관이 말했다.

 “예, 너무 늦게 뵙게 되어서 가슴이 아프군요. 근 십년 만에 이런 건 또 처음 받아보는 것 같은데. 그제는 한화와 롯데가 코리아시리즈에 올라가서 롯데가 우승을 하질 않나, 어제는 또 마지막 남은 너구리 한 봉지에서 다시마가 스무 장이 나오질 않나. 올해 말에 무슨 일이 있기는 할 모양이네. 따라오세요."

 소장은 장관과 경호원들을 복도로 이끌었다. 복도에서는 조교-가운을 입고 있었던 걸로 판단해서-하나가 언제 갈았는지도 모를 대걸레로 복도를 닦고 있었다. 그를 지나쳐 조금 걷자 문 하나가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간 방은 원형 탁자 하나와 의자 두세 개만 덜렁 놓여 있어 휑뎅그렁한 곳이었다.

 "앉으세요. 의자 더 가져올까요? 저 친구들도 앉아야죠." 
 소장은 의자를 빼 준 뒤, 건너편으로 가 앉았다.

 "아니, 그럴 필요 없네. 자네들은 밖에서 기다리게. 필요하면 부를 테니까." 장관은 문을 닫았다.


 “자네 이야기는 잘 들었네. 뭐라더라... 그래. 측근들은 자네를 ‘은둔형 고수’라고 그러더군.” 
 장관이 주스 병을 땄다. 딱 소리가 났다.

 “부도난 어음만큼이나 전도유망한 인재죠. 그런 소리 많이 들었어요.”

 “흐흠, 그렇군.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자네도 알고 있을 거야. 그렇지?”

 “짐작 가는 게 있긴 하지만요.” 몇 마디나 했다고 소장은 주스 병을 따서 단숨에 들이켰다. "크, 이게 얼마만에 섭취하는 아스코르브산이야."

 “지금 지구가 망하게 생겼네.”

 “그래서요?” 
 박사는 병을 눕혀 천천히 굴렸다.

 “자네만이 인류를 구할 수 있네.”

 소장은 코웃음을 쳤다. “무슨 꿈꾸는 소리야. 지구가 곧 망하게 생겼다고요? 인류를 구할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요? 미안하네요. 시간과 예산이 모자라서 안 될 것 같네요.”

장관은 책상을 치며 일어났다. 플라스틱 의자가 위태롭게 뒤로 기우뚱거렸다가, 장관의 푸짐한 엉덩이에 걸려 다시 섰다.

 “개소리 하지 마! 내가 이런 일이라도 아니었으면 너희 따위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시늉이라도 했을 것 같아? 내버려뒀더니 끝도 없이 기어오르는군. 너 같은 놈들에게 사명감 같은 걸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밖에서 경호원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급히 안으로 들이닥쳤다가, 아무 일도 없는 걸 보고는 다시 나갔다.

 “부탁하러 와서는 태도가 아주 글러먹은 건 그렇다 치고, 지금까지 이 다 무너져가는 방구석에 이거-” 소장은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하나 안 던져주고서는, 이제 와서 꼴랑 사흘 줘 놓고 못하겠다니까 땡깡이라고요. 훌륭하네요. 정말 훌륭해.” 그는 매우 천천히 박수를 쳤다. “일단 앉으시죠.” 장관은 여전히 소장을 노려보는 채로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억지로 표정을 만드느라 그의 입가가 떨리고 있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Machina Magna Inutilitatem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보게. 하여간 자네들은 뭐든 영어로만 쓰면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소장이 말을 끊었다. “아뇨, 라틴어에요. 그리고 그게 정확히 뭐 하는 기계고, 어떻게 하면 지구가 개판이 되는 걸 방지할 수 있는지 장관님 수준에서 설명하려면 지옥에 가서도 계속해야 할걸요. 만약 그게 여기 붙어 있었더라면 사흘 동안 밥도 안 먹고 잠도 안자고 했으면 어떻게든 가동은 했겠죠.”

“말하는 싸가지하고는. 잠깐, 뭐? 붙어 있었다니, 무슨 소리야. 그게 지금 없다는 소리인가? 돈은 얼마든지 주겠네. 인류의 생존에 기여하는 건데 무슨 돈이 그렇게 중요하겠나. 응?”

“팔아 치운지 오래거든요.”

 “뭐야!” 장관은 책상을 치며 소리를 질렀지만, 이번에는 일어서지는 않았다. "아직 정신을 덜 차린 모양인데, 너 같은 놈은 내가 전화 한 통만 하면, 아니. 밖의 저 친구들에게 한 마디만 하면 골로 보낼 수 있어. 알아? 그러니까 당장 그 엿같은 기계 있는 곳이나 알려주고 뭣 빠지게 돌리란 말야!"


 “어차피 다 끝났는데 서로 얼굴 붉히지 좀 말죠, 장관님. 지원금은 신청할 때마다 ‘국익에 도움이 안 되는 분야’라서 안 내주더군요. 아시다시피 우린 학계에서도 사이비라고 쫓겨났고, 덕분에 기업에서 후원도 못 받고 있죠. 우리 상황은 보시는 그대로-" 소장은 팔을 양쪽으로 쭉 뻗었다. "개판 그 자체죠. 그거 팔아치우니까 그나마 당분간 돌려막을 돈은 생기데요. 하이고, 사이비라고 깔 때는 언제고 기재 팔아치운다니까 냄새 맡고 달려오기는. 장관님도 보셨어야 할 텐데. 물론 가격 이야기하고 나니까 침 뱉으면서 돌아가기에, 고물상에다 팔아 넘겼죠. 어차피 그 돈도 이젠 없어서 며칠 뒤에는 길바닥에 나앉을 판이었지만요. 저기 딱지 붙은 것 좀 보세요.” 그의 말대로, 연구소 내의 집기에는 빨간 스티커가 붙지 않은 것을 찾는 게 더 빨랐다. 소장의 말을 들으며, 장관은 점점 얼굴이 시뻘게지며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실컷 성질부린 주제에 어떻게든 냉정하게 보이려고 억누르는 것이 틀림없었으나, 입가나 손끝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뭐? 방법이 전혀 없다... 그 말인가?”

 “잘 들으세요.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인류는 끝장났다는 거죠.”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바퀴벌레가 지구의 지배자라니! 안돼! 안돼! 바퀴벌레가 지구의 지배자라니...” 장관은 엎드려 얼굴을 팔에 파묻었다. 그의 등이 들썩이는 가운데, 소장은 어딘가 먼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거짓말 참 잘하시네요.”
 장관이 경호원들의 부축을 받아 연구소 문을 나서자, 바깥에서 청소하는 척 하며 모든 걸 듣고 있었던 조교가 말했다. 소장은 주스를 세 병째 비우고 있었다.

 “그래. 안박사는 이런 거 도저히 못 하겠다고 박차고 나갔고, 임박사는 사방이 부드러운 방에서 몸에 딱 맞는 옷이나 입고 벽에 머리나 박고 있고. 그나마 잘될 것 같았던 순이는 ‘너는 언제까지 돈도 안 돼는 이런 거나 할 거야? 나는 빽 사주는 남자 만날 거야!’ 라면서 날 찼지. 얼마 전에 소식을 들으니-” 소장의 눈가가 벌개졌다. “-성형수술을 잘 해서 재벌가 며느리로 들어간 모양이더군. 그래, 순이가 예쁘긴 예뻤지. 내게 남은 건 이제 그것밖에 없어. 나이 서른이 넘어 마흔줄에 들어서기까지 남중남고공대랩만 들락날락거리던 내 일생의 결과물인데 그걸 어떻게 팔아 치우냐.” 그는 자기 배를 어루만졌다. “신장을 팔면 팔았지.”

 소장은 방을 나와 복도를 따라 쭉 걸었고, 조수가 그뒤를 따랐다. 세 곳의 방을 지나고 계단 하나를 내려가 그들이 도착한 곳은 우주왕복선이라도 건조할 수 있을 법한 거대한 방이었다. 방의 대부분은 알 수 없는 장치, 발전기, 파이프, 그리고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었다.


 "슬슬 시작하죠. 소장님?"
소장은 구석에 있는 구멍에서 샴페인을 꺼내왔다. 빨간 리본이 하얀 라벨을 가르지르고 있었다. 조교는  세탁하고 난 바지에서 심사임당이라도 찾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지하실이고, 진동도 어차피 거의 없으니까 이거 보관하긴 딱이지. 오늘을 위해 준비해놨어."

 "정말, 소장님 답지 않게 낭만적이네."

 "짜식, 아저씨라고 이런 것도 준비 못할 것 같았냐." 소장이 여전히 샴페인 병을 든 채로 기계의 앞에 있는 계기판으로 다가갔다.

 "근데 양 박사. 사람들이 그 소동을 일으킨 다음, 이번에도 종말이 뻥이었다고 그러면 과연 우린 기억에나 남을까?" 
 소장은 샴페인 병을 흔들었다. 앞뒤로, 또 앞뒤로. 조교가 그 모습을 불안한 눈으로 쳐다봤다. 

 "글쎄요. 믿어주진 않더라도, 전 소장님과 제가 세상을 구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질 것 같은데요."

 "그래? 그렇구나..." 소장은 아직도 병을 흔들고 있었다. "어차피 호사가들의 입에나 몇 번 오르내리겠지. 우리가 직접 '우리가 지구를 구했다'고 이야기해도 아무도 들은 척도 안 할테고. 만약 우리가 목을 매고 연구소에 불을 지르면 그제서야 아! 우리가 잘못했구나! 이런 바보 천치들이 있었다니! 하며 일간지 12면쯤에 25제곱센치미터 크기로 실리겠지." 
 소장이 마개에 손을 가져다 댔다.

 "소장님?"

"미안, 나는 그런 꼴 이젠 더 못 보겠어."

마개가 날아가 기계의 톱니바퀴 사이에 끼어 들어갔다. 동시에 아래로 기울인 병에서 거품이 마구 뿜어져 나와 계기판을 따라 흘러내렸다. 조용히 돌아가고 있던 기계는 총이라도 맞은 것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박사는 초점 없는 눈으로, 기계의 죽음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병의 주둥이는 계속 거품을 토해냈다.

"무... 무슨 짓이야! 비켜! 안돼... 안돼..."

 조교는 뒤늦게 소장을 밀쳐내고, 급한 대로 입은 가운을 벗어 계기판을 훔쳐냈다. 하지만 이미 늦어, 기계는 그 큰 몸 여기저기서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단말마를 지르며 몸을 마구 뒤틀고 있었다. 소장은 밀려났을 때 그대로, 바닥에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아 있었다.


 "이... 무슨 짓이야. 지금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조교가 말했다. 그는 가망 없는 계기판에 팔꿈치를 대고 그것만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뒤에서 박사가 천천히 일어났다. 여전히 샴페인 병을 손에 든 채였다.


 "전부 거품으로 만들었지. 이젠 진짜로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박사가 병을 치켜들었다.

 "말장난 하지 마! 60억이 붙잡고 있는 난간에서 손가락을 떼 버린 주제에 그딴 소리가 태연하게 나오지! 죽여 버리겠어. 이..." 
뒤를 돌아보는 그의 눈이 한껏 커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병이 조수의 얼굴에서 깨졌다. 그의 목에서 불쾌한 부러지는 소리가 났고, 파편이 박혀 엉망이 된 얼굴은 계기판을 찧었다. 그는 더 이상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잠시 뒤, 조수의 몸뚱이가 핏물을 따라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소장은 손에 남아있던 것을 떨어뜨렸다. 병목은 시멘트 바닥에 부딪쳐 소리를 내고는, 나동그라진 조수의 손앞까지 굴러가 멈췄다.

"10분도 안 남았는걸.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좀 얌전하게 굴었으면 세계의 마지막이나 같이 보러 가자고 하려 했더니. 아! 나는 죽음의 신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소장은 이제 여기저기 폭발하며 불꽃이 솟는 기계를 뒤로 하고 방을 천천히 걸어 나갔다. 샴페인은 쓸모없는 거품과 유릿조각 한 줌으로 만들었지만, 분명 연구소 냉장고를 뒤져보면 어딘가에 맥주 한 캔 정도는 남아 있을게 분명했다. 지구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먹는 술맛은 참 끝내줄 거라고 생각하며 소장은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그 때, 기재가 떨어지는 소리와 불타는 소리에 섞여 발자국 소리 같은 게 들렸다. 그는 뒤를 돌아봤다.

동시에 둥글고, 속이 비고, 뾰족한 것이 소장의 목 옆에 깊이 꽂혔다.

"커... 허..."

 금이 간 병목으로 붉은 것이 꿀럭꿀럭 솟아 나와, 그걸 쥔 손을 적셨다. 뒤에서 끌어안은 자세로, 조수는 그대로 소장의 몸 위에 무너져 내렸다. 

"하,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큰 폭발이 일어났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며 그들의 모습을 묻어버렸다.


 시커먼 세단 하나가 타이어 하나 주저앉은 채로 서 있었다. 그 주위에는 불온한 공기를 뿜는 일군의 폭도들이 저마다 쇠파이프니 돌이니 들고 둘러서 있었다. 그들이 차를 두들길 때마다 도장이 떨어져 나가고, 움푹 들어가고, 창문에는 거미줄이 새겨졌다. 

 "야, 이 멍청이들아... 어떻게 좀 해봐. 밖의 저 새끼들 어떻게 좀 해보라고!"

 "어쩌란 겁니까! 나갔다간 다 맞아 죽을 판인데!" 
차창이 깨지며 장관이 유리조각을 뒤집어썼다. 그 틈으로 손이 비집고 들어와 잠금을 풀었고, 문이 열렸다. 장관이 끌려 나갔다.

 "사, 살려줘! 살려줘!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 그만해 이 폭도 새끼들아!"

사람들은 발버둥치는 그의 머리를 돌멩이로 쳤다. 장관이 축 늘어졌고, 한두 명이 장관의 차 트렁크에서 꺼내온 전원 케이블로 그의 몸을 가로등에 묶었다. 

"제물을 바쳐라!"

"신께서 제물을 원하신다!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기생해온 더러운 놈의 피를!" 폭도들 중 하나가 어디선가 휘발유 통을 가져와, 장관의 살찐 몸에 뿌리기 시작했다. 장관이 기절한 지 얼마나 됐다고, 기름을 뒤집어쓰고 그걸 뿜으며 깨어났다. 나머지 폭도들은 경호원을 때려죽이거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거나, 장관이 묶인 가로등을 중심으로 둥글게 서 단조로운 연창을 하고 있었다. "피를!" 휘발유가 장관의 얼굴을 때렸다. "피를!" 경호원들 중 하나는 배가 갈라진 채로 장대 끝에 매달려, 이리로 저리로 기분 나쁜 진자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피를! 신에게 제물을!" 그들에게 마구 두들겨 맞던 기사는 경련 한 번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움직이질 않았다. 경호원 하나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는데, 적어도 그들보다 나은 상황에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제물을!"

"그만해, 제발... 아아아아아!" "제물을!" 기름을 뿌리던 폭도가 장관의 얼굴로 빈 휘발유 통을 집어던졌다. " 잘못했어! 나한테는 자식도 있고 마누라도 있어!" "피를!" 지포 라이터의 딸깍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발! 그만해! 살려줘!" 

기름을 뿌리던 폭도가 코웃음을 쳤다.

"다 짖었나? 이거 참 해보고 싶었단 말이지. 끝장나기 전에 소원 하나 이루고 가네."

허공에서 호를 그리며, 라이터가 바닥에 떨어졌다. 라이터가 기름 웅덩이에 떨어져 막 불이 붙으려는 순간 공포에 질린 장관의 눈에, 라이터를 던지고 묘하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남자의 눈에, 기사를 때려죽이고 경호원을 장대 끝에 매달아 다니며 소름끼치는 연창을 하던 폭도들의 눈에,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의 눈에, 전 지구 사람들의 눈에 망막을 태워버릴 정도의 빛이 보였다. 빛이 그들을 삼켜버리는 것과 동시에 아무도 듣지 못할,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굉음이 따랐다.

그리고 지구는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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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윤주[尹主] 2012.05.30 06:37
    공대의 역습! 잘 봤습니다. 저번 글도 비슷한 분위기였죠?
  • ?
    다시 2012.05.30 09:10
    다 죽은거네요 신기한 철학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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