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12 03:47

사랑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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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범이네.”

 현장을 둘러보던 김형사는 말을 마치고 점심으로 뭘 먹을지 생각했다. 현장은 상당히 깔끔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분위기가 조금 훈훈하다 할 정도였다. cctv확보했고 증거물들도 쉽게 나오고 있었다. 피가 조금 났을 뿐, 시신의 상태도 양호해, 고작 심장에 한번 칼을 맞았을 뿐, 어떤 사람이라도 무리 없이 볼 수 있는 그런 곳이었기에 그곳을 조사하는 경찰과 형사들은 약간의 안심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 현장에 나온 경찰관은 내심 미소를 짓기도 했다.

 유독 범죄가 자주 발생해 설치해 놓은 그 골목의 cctv에는 살해장면까지 나와있었다. 가난한 남자가 야한 여자를 찌르는 장면. 너무나 흔한 것이었다. 그의 얼굴은 모두 드러나 있었다. 그 사람이 범인이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수배를 내릴 필요도 없이 지문이 나타났고 그의 거주지가 나왔다. 자수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쉬운 진행이었다. 그는 잡혔고, 그는 형사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검사는 범인에 대한 자료를 받았다.

 ‘우발적 살인……. 피해자 여성은 고아이고……. 일이 쉬워지겠는데? 신원 확인 다 됐고, 직업은 매춘부……. 피의자는……. 남우정.’

 그는 잠시 읽는 것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 이름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름만보면, 그와 비슷한 글자라도 보면 생각에 잠기게 하는 그런 힘을 가진 이름이었다.

 ‘남우정.’

 그는 강제적으로 과거를 떠올렸다.

 

 “뭐하냐?”

 남자 중학교, 오로지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곳이었다. 어른들은 그곳을 지나가는 곳이라며, 귀여운 때라며, 싸우면서 크는 것들이라며 넘어갈지도 모르지만 그곳은 정글이었다. 시대가 지날수록 세상이 험해져서가 아니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겪기도 했다. 다만 풋풋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위해 잊기를 원할 뿐이었다. 어느 시대에나 그 또래가 모이면 정글이 형성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책임도 모르고 위치도 모른다. 그들이 아는 것은 오로지 본능뿐이었다. 자신이 좀더 유리한 위치라면 누구라도 강해졌고 불리한 위치라면 성숙해졌다. 그렇게 각자의 생존 본능을 가지는 곳에서, 남이석은 강하고 현명한 기인이었다. 그는 훗날 검사가 될 현명하고 어린 이진우를 괴롭히는 학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뭐야? 신경 꺼!”

 잠깐 놀려먹어서 지루한 10분의 쉬는 시간을 보내려 했던 그 학우는 당황하여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의 말 뒤에는 온갖 욕설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남우정이 무슨 말을 하던 그가 답할 것은 욕밖에 없었다. 남우정은 현명했다.

 “!”

 배를 맞은 그 학우는 그래도 쓰러졌다. 남우정은 이진우에게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로가 앉았다. 그렇게 그의 카리스마는 만들어졌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그러나 졸업 이후로 만날 수 없었다. 중학교 때만 해도 어떻게든 친해지려는 이검사의 노력 덕택에 방과후 가끔 같이 축구를 하거나 게임을 할 정도로 친해졌었지만 서로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한 이후로는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서로 집전화 번호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고등학생이 , 너 요즘 뭐하냐? 얼굴 좀 보게 나와라. 한잔하자!’ 이런 말은 못하니까. 물론 이진우의 입장에서야 몇 번이고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그 정도로 친한 관계는 아니었기 때문에 연락을 못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이 남우정이었다. 자신과 같이 졸업을 했을 그였다. 그때 쯤의 학생들이란 많이 혼란스러울 때 아닌가. 특히 남학생이 더 심했다. 선택지엔 군대가 빠지지 않았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모이기를 좋아했다.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남우정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3년이면 오랜만이고 전화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전화를 걸었다. 없는 번호였다. 어렴풋이 기억을 더듬으며 찾아간 그의 집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회상을 마치고 계속해서 자료를 읽었다.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남우정과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했던 것이었다. 그는 경악했다. 이사내역, 분명히 그가 살던 동네였다. 홀어머니를 모셨나. 이제 처음 알았다.

 ‘어쩌다가?’

 그는 사람을 죽일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이 살해를 당하기 직전 그 칼을 잡고

 “뭐하냐?”

 하고 사람을 살려줄 사람이었다.

 그는 멍하니 종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도 명쾌한 사건이었다. 사업이 망한 남씨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여성을 찔러 죽인, 우발적인 사건. 그러나 그는 노련한 검사답게 이 사건에  뭔가 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명쾌한 자료, 이곳에서는 그 느낌뿐이었다. 솔직히 사람을 이렇게 죽이는 사건이 어디 있나.

 ‘대학교는 안 갔지만 그래도 받을 교육 다 받은 사람이야. 이렇게 대놓고 살인을 할 리가 없아.’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는 살해현장에 도착했다. 아스팔트에는 여전히 검붉은 핏자국이 흥건하게 남아있었다. 닦는 다고 닦아지는 것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처참한 모습을 남우정이 만들었다는 데에 그는 큰 실망감과 좌절을 느끼고 있었다. 그에게는 영웅이었던 그였다.

 그는 이곳 저곳을 살펴보았다. 그냥 평범한 골목이었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이미 cctv까지 나왔는데 우정이 살인을 한 것은 분명해. 내가 알아야 하는 것은……. 왜 그랬냐는 거지.’

 그는 골목 옆에 위치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이 검사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자리에 앉아있던 남자는 일어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무척 과묵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굳게 다문 입술,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파릇파릇한 수염자국, 맨날 같은 것만 입을 것 같은 헐렁한 청바지, 힘 좀 쓰게 생긴 어깨……. 이검사는 힘든 대화를 예상했다.

 “지도운씨? 실례지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이검사가 말했다. 그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손을 깍지 껴 책상 위에 올리고 있었는데 제법 긴장한 것 같았다.

 “이신정씨와는 어떤 사이였죠?”

 “일하는 곳이 같았습니다.”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다른 특별한 관계가 없었나요?”

 “…….”

 남자는 선뜻 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피해자 이신정이 일하는 곳에서 잡역을 맡은 남자였다. 이신정이 일하던 업소는 불법 성 매매를 하고 있었고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업소의 정체로 인해 그 주인은 구속 예정 중이었다.

 “과거 이신정씨가 원한을 살만한 일을 하거나 그런 일에 관련되는 것을 본적이 있나요.”

 “아뇨.”

 남자는 침착하게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거짓말이다. 뭔가 있어.’

 과도한 침착함과 경직된 얼굴근육을 본 이검사가 확신했다. 그는 경력자였다. 거짓말을 하거나 뒤가 구린 사람들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뭔가 있다면……. 뭘까?’

 둘은 대화 없이 앉아있었다. 생판 남에다 검사라는 직업 때문인지 남자는 상대방의 눈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내렸다. 검사는 순간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좋아하셨습니까?”

 “?”

 “이신정씨 개인적으로 좋아하셨죠?”

 남자는 굳은 표정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검사의 예상이 들어맞았던 것이다.

 ‘남녀 사이에 뭔가 있으면 있어 봤자지…….’

 그는 아직도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지도운씨가 괜히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닙니다. 특별 조사 대상이에요.”

 거짓말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 허술한 말이었다. 피해자를 좋아했다고 특별 조사 대상이 될리가 없었다. 물론, 피해자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잘 알고 있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사건과 관련도 없는 사람을 강제로 붙잡아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검사는 지도운의 학력이 낮고 자신의 지위와 그의 이전 직업을 생각해 봤을 때 충분히 위압감을 주며 정신적으로 압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들어맞았다. 지도운의 복잡했던 머리 속은 깨끗해졌다. 이성적 판단은 마비되고 검사의 말에는 복종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지금은 무직입니다.”

 ‘역시.’

 누가 좋아서 매춘 업소에서 일하겠나. 당연 경제적인 사정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다른 이에게 지원을 받기도 힘든 상황일 것이 분명했다.

 “앞으로 조사를 하는 동안 소정에 사례금이 지급될 것입니다. 제가 직접 드릴 거에요.”

 남자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평소 이신정씨의 생활은 어땠나요?”

 검사의 말에 남자는 곧 바로 대답을 했다.

 “생활이라고 해 봤자 다들 똑같아서……. 그냥 업소에서 일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게 끝이거든요. 신정이는 집을 다 갚은 상태였기 때문에 외출이 자유로웠지만, 그렇게 자주 밖으로 다니지는 않았어요.

 사실인가? 그는 지도운의 곳곳을 살폈다. 사실 같았다.

 “피의자가 누군지 아시나요?”

 “…….”

 이검사는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업소에 자주 출입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본적 없으십니까?”

 “가끔 보던 얼굴이네요.”

 “이신정씨와 어떤 관계였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검사의 질문에 도운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쓰레기였어요.”

 “?”

 “노숙자로 알고 있는데, 구걸한 돈을 모아서 저희 업소에 오는 걸로 알고 있어요. 거의 달마다 왔고 가끔씩 자주 올 때도 있었고……. 그냥 돈이 되면 바로 오는 것 같더라고요. 올 때마다 신정이를 찾았는데 집착의 정도가 심했어요. 그 새끼 내가 일낼 줄 알았어. 미친 새끼.”

 그들은 주먹을 꽉 쥐었다.

 “개새끼.”

 도운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검사의 말에 도운은 고개를 빠르게 까딱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검사는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어 메모를 시작했다.

 [피의자 이신정에 대한 집착이 심했고 남우정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음.]

 그는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곧 우정을 보기로 한 시간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좁은 방에서 그가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우정아!”

 침울한 표정의 그가 들어왔다. 여전히 치렁치렁 긴 머리에 어지러운 수염을 하고 있었지만, 그나마 씻었기 때문에 잡혔을 때 당시의 더러움은 없었다. 그는 천천히, 담담하게 의자에 앉았다.

 “우정아 나야. 기억 안나?”

 이검사의 따뜻한 맞이에 그는 차가운 표정을 답했다. 알 리가 없었다. 그가 학창시절 구해준 학생이 한 두 명 인가.

 “나 너랑 같은 반이었는데…… 2때 말야.”

 그 말에 우정은 새우눈을 뜨고 그를 살폈다. 기억이 났다. 그러나 내색하기 어려웠다. 그때의 상하 관계가 완전히 역전된 상황에서 그는 큰 부끄러움과 불편함을 느꼈다. 여러 번, 여러 사람과 독대를 해왔던 그가 그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그는 황급히 대화 소제를 바꿨다.

 “배고프지? 내가 따로 도시락 사왔어.”

 그는 평소에도 자주 먹지 않았던 초밥 도시락 두 게를 꺼냈다. 우정은 처음에 머뭇거렸지만 이검사가 해맑게 웃으며 먹으라는 손짓을 하자 뚜껑을 열고 맛있게 먹었다. 구걸하는 돈을 먹는데 쓰지 못했던 그에겐 과한 맛이었다. 너무나 생소한 미각적인 흥분. 라면과 삼각김밥 밖에 몰랐던 그에게 고급 도시락의 갓 지은 밥과 신선한 회는 외계의 것과 같았다.

 식사를 마친 둘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이검사는 막 식사를 마친 사람에게 곤란한 질문을 하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앞으로 몇 번 볼 수도 없는데 아무것도 묻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고심 끝에 가장 궁금한 것 하나를 묻기로 했다.

 “왜 죽인 거야?”

 경찰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가 고백을 받아주지 않자라고 적혀있었지만, 남우정을 잘 알고 있는 그로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미워서.”

 짧은 시간 생각에 잠겼던 우정이 답했다. 이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폈다.

 “너도 한대 줄까?”

 검사의 말에 우정은 고개를 흔들더니 헛기침을 했다.

 “담배 안 피워.”

 “끊었어?”

 “원래 안 피워.”

 그는 한번의 헛기침을 더 했다. 담배 연기를 싫어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검사는 담배를 끌 수 없었다. 고양이나 개를 길들이기 위해 그들의 발톱을 깎는 것처럼, 이것은 기 싸움 같은 것이었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강압적으로 하는 것, 상대의 요구를 들어주다 보면 주도권을 빼앗긴다는 것을 그는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이런 단순하고 본능적인 사건일수록 주도권이 중요했다. 쉽게 휘말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열열히 뿜어댔다. 가슴이 아팠지만 그래도 원활한 조사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왜 미웠는데?”

 그가 최대한 침착한 어조를 하며 물었다. 갑자기 우정이가 불쌍해진 그는 약간 마음의 평정을 잃은 상태였다. 자신의 영웅이 이런 초췌한 모습을 하고 있다니……. 그는 한 모금 깊게 빨았다. 우정은 어려운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고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도운.”

 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우정의 혼잣말이었다. 그것은 순수한 혼잣말이 아니었다.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하나 자신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그가 일어나자 경찰 두 명이 와 우정을 데려갔다. 대충 윤곽이 잡혔다.

 ‘그래…… 지도운이 핵심이다. 놈이 우정을 자극한 거야. 아마 이신정도 같이 깔봤겠지. 그렇게 열 받아서 죽였다…… 아냐 이건 아니고. 겨우 이런 이유로 살인을 하지는 않지. 지도운이 이신정을 좋아했지. 그런데 이신정도 지도운을 좋아한 거야. 이 사실을 우정이 알게 되고 복수……. 이것도 아니야. 우정이는 그럴 애가 아니다. 전과도 없이 처음 한 살인이야. 정말 본인이 했다면 이런 평정을 유지하는 경우는 드물어. 핑계 하나 없이 인정하는 것도 수상하고. 대부분 형을 낮추기 위해서 여러 가지 말을 하는데.’

 그는 자신의 넓은 원룸을 서성이며 생각에 잠겼다. 근거가 부족했다.

 

 다음날 이검사는 다시 한번 지도운을 불러냈다.

 “여기.”

 그가 봉투를 내밀었다.

 “이건……?”

 “전에 말씀 드렸던 사례금입니다.”

 “, .”

 그는 천천히 봉투를 자신의 주머니로 가져가 반으로 구겨 넣었다.

 “저기 검사님.”

 “?”

 “물어볼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남우정…… 그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가 남우정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질문을 하는 그의 눈이 매서웠다.

 “cctv, 증거물, 정황 모두 밝혀졌으니 실형을 받겠죠.”

 “그럼 왜 저를 조사하시는 거죠?”

 “뭐든 확실한 게 좋잖아요.”

 “확실한 것…….”

 지도운이 중얼거렸다.

 ‘사회 생활을 빨리 해서인가? 눈치가 빠르군. 조심해야겠어.’

 “cctv까지 찍혔다니까 가만히 있었는데……. 저에게 확실한 증거물이 있습니다.”

 “?”

 지운의 난데없는 말에 당황한 이검사가 물었다.

 “여기.”

 그는 가방에서 수첩을 꺼냈다. 보라색 표지 한가운데에 분홍색 하트가 그려져 있는 한 뼘 크기의 수첩이었다.

 “이건?”

 “일기에요.”

 “어떻게 이걸 가지고 계신 거죠?”

 그가 일기를 받으며 물었다.

 “사건 터지자 마자 숙소 가서 챙겼어요. 추억하고 싶어서……. 아직 읽진 않았어요.”

 “이건 꽤 중요한 증거물 같은데……. 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어요. 그 놈 처벌 받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동요한 모습을 안 보이기 위해서 그 수첩을 침착하게 가방에 넣고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네 감사합니다. 나중에 확인해 볼게요.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죠.”

 도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4 17일 피의자와 통화한 내역이 있네요?”

 “가방을 두고 가서…….”

 대화는 계속 되었지만 역시나 건질 건 없었다. 애초에 건질게 있었다면 이검사가 이렇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심증이 있는 사건이 이런 면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여기 보시면 통장 거래 내역이 있네요?”

 “.”

 그가 미소를 지었다. 사람을 깔보는 표정이었다.

 “개새…… 놈이 한번에 큰 돈을 주고 간 적이 있었어요. 올 때마다 돈 내는 게 귀찮으니까 한꺼번에 내겠다고. 그때 통장으로 보내줬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예상대로 크게 건질게 없는 대화였으나 이 일기장은 정말 의외였다. 수확이라면 수확, 그러나 지도운이 줬다는 점에서 마음이 걸렸다. 조작의 여지가 있으니 말이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도운이 등을 보인 찰나, 문득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기!”

 “?”

 도운이 돌아봤다.

 “왜 안 읽으신 거죠?”

 “그야 읽으라고 허락을 안 했으니까요.”

 “?”

 “그 안에 뭐라고 적혔는지는 궁금하지 않았어요. 알고 싶지도 않고…… 신정이도…… 그걸 원했을 것 같고요.”

 “그런가요…… 그럼 수사에 도움이 될 내용이 없을 수도 있겠군요?”

 “어쩌면요. 근데 있을 거에요. 분명히.”

 그는 고개를 끄덕이곤 카페 밖으로 나갔다.

 ‘일기장이라.’

 

 

 그는 창을 열고 담배를 피웠다. 참으로 심란한 일이었다. 일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기 안에는 피해자 이신정의 힘들었던 생활과 함께 몰래 지켜본 지도운의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이신정은 지도운을 좋아했다. 그리고 힘들었던 생활에는 남우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손 놔요!”

 한 중년의 남성이 긴 머리를 한 젊은 여성의 손목을 붙잡고 뒷골목에 들어왔다.

 “, 그런 새끼가 뭐가 좋다고 나를 버리는 거야? 이제 오지 말라니?”

 그는 애처로운 표정을 하곤 소리를 질렀다.

 “내 말 못 들었어요? 그리도 도운이가 당신보다 모자란 게 뭐에요? 정신차려요! 구걸이나 하면서!”

 여자가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남자는 그런 평가에 익숙한 듯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일 시작했어. 그래서 자주 오잖아. 너만 나오면 그 돈 그냥 다 너 한태 가는 거야. 잘 생각해 보라고! 우리가 몸을 섞은 게 며칠인데!”

 정적이 흐른다. 모두 사실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고민한다.

 “그때 좋았는지 아세요?”

 또다시 정적이 흐른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몰랐던 사실이기에 몸이 얼어 붙는다. 그는 주머니를 만지작거린다.

 “안 그래도 곧 나가려고 했어요. 이제 모을 만큼 모았고……. 지운이 데리고 나갈 거에요. 아저씨도 정신 차리세요. 그럼 이만.”

 한 사람만 바라봤던 그 사람은 큰 허무 이 후에 분노를 느꼈다. 그는 그녀를 강하게 벽으로 밀치고 주머니에 있던 물건을 꺼냈다.

 

 

 

 그는 빠르게 한 개피를 태우고 담뱃갑을 만지작거린다.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버린다. [딩동] 한 여자가 우울한 표정으로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고 있다. 그는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문 앞에 있는 짐을 주섬주섬 챙긴다. 버릴 물건과 가져갈 물건을 정리하던 그녀가 행동을 멈추고 그를 본다. 그는 시선을 피한다.

 “왜 뜬금 없이 헤어지자고 하는 거야.”

 “미안하다.”

 “……. 안 났어 궁금해서 묻는 거야.”

 그가 고개를 돌려 그녀의 표정을 살핀다. 화가 났다. 속마음을 읽는 다는 게 어느 때나 편리한 것은 아니다.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 미안함을 느꼈다.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그녀는 그의 말에 고개를 옅게 끄덕이는 것으로 호응했다. 그리고 짐을 챙겨 나갔다. 그는 쓰레기통을 열었다. 담배를 피고 싶었으나 또 피기 싫은 마음이 공존하는 이상한 상태였다. 뚜껑을 닫고 일기장을 살펴보았다. 지도운과 너무 상반된 성격, 완벽한 여자의 특성들……. 조작이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 지금 무슨 상황인 거야? 정말 우정 스스로 살인을 한 거야? 그저 싫어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이 사실이었다. 정황상은 그랬다. 그는 라이터로 일기장에 불을 붙여 재떨이에 놓았다. 제법 빠른 속도로 타 시커먼 재가 되었다.

 

 

 

 “청부 살인입니다.”

 재판장이 술렁거린다. 이검사는 통장의 거래내역을 보여준다.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피고인을 지도운은 자신의 연정을 거부한 피해자 이신정을 죽이는데 이용하기 위해 돈으로 유혹했습니다.”

 지도운이 벌떡 일어나 소리친다. 경찰관 제복을 입은 두 남자가 다가가 제지한다.

 “여기 통장 거래 내역입니다. 이렇다 할 관계가 없었던 둘이 돈을 거래를 할 다른 이유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얼굴이 빨개진 지도운이 고래고래 욕설을 퍼 붓는다.

 “받은 적 없습니다.”

 판사가 일기장에 대해 묻자 이검사가 답한다. 경찰은 도운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퇴장이다. 남우정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평소 지씨는 피고에게 안 좋은 감정이 있었고 이것을 공공연하게 표현했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돈을 통한 회유와 함께 다른 폭력적인 협박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cctv장면을 보십시오. 이 입 모양을 자세히 보시면 나가자라고 피고인이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고는 지씨가 이씨의 생명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 받은 돈과 함께 도망을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씨는 그가 돈을 받았다는 사실에 분개해 그를 자극했고, 평소 오랜 노숙 생활과 알코올에 의존하며 심신이 약해진 피고는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생활은 어때?”

 “그냥 뭐…….”

 우정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조금만 참아. 형량 이 정도면 많이 줄인 거니까.”

 “…….”

 “너 이렇게 끝나면 안 되잖아. 일어나야지.”

 우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소하면 내 집으로 와. 일 구하고 자리 잡을 때까지 도와줄게.”

 우정은 겨우겨우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본다.

 “이렇게까지 해주는 이유가 뭐야?”

 그는 우정의 눈을 가만히 지켜본다.

 “너 예전에 내가 중학교 때 체육복 빌려준 거 기억나?”

 우정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잖아.”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날 원룸으로 돌아온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편안한 고요함은 처음 느끼는 것 같았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있던 그는 벌떡 이러나 자신의 서랍으로 간다. 세 번째 서랍 깊숙한 곳에는 구두상자가 있었다. 오래된 구두상자 안에는 체육복이 있었다. 그는 그 옷을 코에 대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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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현실과 꿈 아저씨편- 12(나타난 소년1) 2 다시 2012.07.31 385 1
108 현실과 꿈 아저씨 편-11 다시 2012.07.25 461 1
107 현실과 꿈 아저씨편-10 3 다시 2012.07.17 395 2
» 사랑의 힘으로 1 다시 2012.07.12 366 1
105 현실과 꿈 아저씨편- 9 2 다시 2012.07.10 414 2
104 현실과 꿈 아저씨편- 8 2 다시 2012.07.03 411 2
103 보통 하루 4 다시 2012.06.27 409 2
102 현실과 꿈 아저씨편 -7 2 다시 2012.06.26 388 1
101 [비평]어느 겨울의 초상 9 다시 2012.06.25 381 2
100 보통 하루-1 2 다시 2012.06.24 381 1
99 현실과 꿈 아저씨편- 6 1 다시 2012.06.22 359 2
98 현실과 꿈 아저씨 편 -5 5 다시 2012.06.18 377 2
97 나의 그냥과 타인의 그냥 3 다시 2012.06.16 353 3
96 우동 한 그릇 4 다시 2012.06.15 529 3
95 현실과 꿈 아저씨편 -4 2 다시 2012.06.14 450 1
94 현실과 꿈 아저씨편 -3 2 다시 2012.06.12 385 2
93 현실과 꿈 아저씨편 -2 3 다시 2012.06.08 424 1
92 현실과 꿈 아저씨편-1 3 다시 2012.06.08 447 1
91 현실과 꿈 아저씨편 프롤로그 3 다시 2012.06.06 457 1
90 현실과 꿈- 지혜편 2 다시 2012.05.31 46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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