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27 19:01

보통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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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지럽게 꼬인 선, 수많은 조명들이 빛을 발산하고 있다. 그 빛만큼의 열기가 사람들을 달아오르게 하고 스탭들은 실수가 없도록 긴장한다. 매끄러운 자제들로 꾸민 깔끔하고 빛나는 디자인의 무대 와 그 빛을 내기 위한 촬영 스탭들의 어지러운 어둠이 고작 선 하나로 갈리기 때문에 혹자는 이것을 물 속에서 발버둥 치는 백조에 비유를 할 수 도 있겠고 달의 양면이라고 표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세계에 몸 담은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생각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수면 위도 발버둥을 치는 기형적인 백조이고, 양면이 거칠고 어두운, 태양에게 버림받은 달의 모습이라는 것을 말이다. 여유 넘치는 연기자들의 표정마저 정말 치열한 삶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니까. 메인 엠씨를 맡고 있는 서른 하나의 잚은 배우는 자신의 대본을 확인 하고 있고 그의 옆에는 이번 방송의 초대손님이 앉을 의자가 있다. 그리고 그 맞은 편에는 3명의 고정 패널이 자리하고 있다. 처음으로 방송에 출연하는 인기 여배우. 모두 이번 방송을 위해서 많은 회의와 연습을 했고 이제 제 실력을 발휘하는 것만이 남았다. 패널 중 초대 손님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오른쪽자리에 앉은 중년의 배우, 그의 이야기이다.

 그는 대본을 보고 있지 않았다. 세 명의 패널 모두 대본은 악세서리일 뿐, 깊이 보고나 외우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역효과이기 때문이다. 서로간의 대화를 나누는 토크쇼라면 그나마 덜 하지만 이렇게 인터뷰 형식으로 한 사람의 말을 듣는 형식의 토크쇼의 경우 대본대로 가지 않을 때가 훨씬 많았다. 한 사람의 비중이 커지면 커질수록 심했는데, 이것은 사람이 불완전하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울어버리는데 그가 잘못했던 일에 대해 추궁할 수 없는 일이고 즐겁게 웃는 면전에다 슬픈 과거를 물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사람과 대화는 유기적인 것, 이 패널들은 그런 것들에 정말 통달한 사람들 이었다. 말하는 것에는 자신이 없어도 들어주는 것에는 더 이상 따라올 사람이 없는 그들……. 여러 프로그램의 메인mc는 다양한 사람들이 맡았지만 패널들 중에는 꼭 이들 중 한 사람이 들어가 있었다. 사회를 살면서 그들이 갈고 닦은 기술은 눈치였다.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피디가 외쳤다. 모든 출연진이 자신의 옷 매무새를 확인했다. 코디들이 꼼꼼하게 챙겨주었지만 의례적으로 하는 일이었다.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정말로 방송이 시작된 것이다.

 

 

 “여러분 오늘 오신 이 분을 소개하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젊은 엠씨가 웃으며 말했다. 젊은 그는 배우다. 어렸을 때부터 토크쇼, 개그쇼를 좋아하고 동경해왔던 그는 언제나 그곳을 위해 노력했다. 예술 고등학교를 나왔고 마땅한 개그 학과가 보이지 않아 연극 영화과를 지원했다. 그는 잘생겼다. 연기도 곧 잘 했다. 목소리가 좋았고 센스가 있었다. 시작부터 인기 있을 드라마에 비중 있는 조연을 맡아 연기했고 스타가 되었다. 그 후에 그는 여러 영화에서 캐스팅 제의가 왔었다. 무엇보다 그는 인기가 생겼다. 그가 나오는 작품은 성공했다. 신선함 없이 지루한 영화에서도 그의 키스신은 화제가 되었다. 별 차이 없어 보이는 냉장고도 그와 함께라면 유난히 잘 팔렸다. 그는 힘이 생겼다.

 이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된 그는 토크쇼에 나갔다. 그의 꿈을 밝혔다. 토크쇼 엠씨였다. 그는 잘나간다. 그를 엠씨로한 토크쇼가 나왔다. 어려운 일도, 위험한 일도 아니었다. 그가 나오니 잘 될 것이다. 그는 인기 있으니까, 프로그램도 인기 있을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말이다. 그의 신드롬은 점점 식어가고 있지만 이 쇼는 그것을 조금 느리게 진행되도록 돕고 있었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배우죠? 영화, 드라마, CF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대세 배우! 이혜주씨를 모시겠습니다!”

 그녀를 소개하는 그의 표정은 평소보다 덜 밝다. 그는 섭외요청이 줄어드는 것으로 그의 인기가 식어 간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질투에 대상이기도, 연민의 대상이기도 했다. 회의 때 나왔던 말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토크쇼는 대박날 것이 확실했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확실하니까 말이다. 동병상련.

 의자에 앉아있던 일동 일어나 박수를 친다. 흰색 원피스를 입은 배우가 하늘하늘 걸어 들어온다. 자신의 짧은 단발 머리를 넘기며 수줍게 인사를 한다. 맨날 대본만 읽다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하니 긴장했을 그녀였다. 일동 인사를 나누며 다같이 앉는다.

 너무 밝지도, 너무 소극적이지도 않은 적당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는 그의 이야기이다.

 “어렸을 때부터 배우 준비를 하면서 친구들이랑 많이 놀지 못했어요.”

 근황을 물은 후에 수선대로 유년 시절을 물었다. 그는 생각에 잠긴다. 베테랑이지만 일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는 그 대화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녀에게 집중하고 분위기를 읽는다. 그것이 베테랑이다. 고수는 방심하지 않는다. 중고등 학교의 이야기를 지나 초등학교 얘기가 나왔다. 피부가 워낙 하얀 탓에 혼혈아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잘 울어서 수도꼭지라는 별명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별명 이야기를 듣고 가볍게 소리 내며 웃었다.

 웃겨서? 그는 웃겨서 웃는 경우가 없다. 웃어야 하기 때문에 웃는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웃어야 할 때가 굉장히 자주 온다. 어쩌면 한 사람이 평생 웃는 시간은 정해져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는 너무 잘했다 사회생활을. 볼에는 없었던 보조개가 생길 것 같은, 입 주변 근육은 갈아주는 것이 좋을 것 같이 웃어왔다. 할당량을 다 쓰고도 더 쓰고 있는 실정이다. 그에게 웃음은 긴장이다. 상황을 봐가면서 웃는다-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은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편안할 때는 무표정을 지었다. 어느새 그는 그렇게 돼있었다. 재능 있는 사람이 자기 실력만 믿고 안하무인이 되듯, 재능이 없던 그는 친절한 사람이 되었다. 원치 않는 자리에도 가끔 응하던 그는 사람을 대하는 데에 전문가가 되었고 이렇게 고정 패널이 되었다. 여러 프로그램의 메인mc는 다양한 사람들이 맡았지만 패널들 중에는 꼭 이들 중 한 사람이 들어가 있었다.

 게스트는 배우, 자신도 배우이니 관련된 질문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삶과 비교하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조연인데 주연 배우는 조금 다른 삶을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조심스러워진 그는 그녀의 말에 추임새를 넣는 것으로 1차 촬영을 마쳤다. 쉬는 시간이 되어 그는 화장실에 갔다.

 ‘나도 어렸을 때는 꽤 잘생긴 편이었지.’

 그가 생각했다. 사실 까마득한 이야기. 몇 장 없는 사진으로만 남은 시절이다. 탄광에서 일하시던 그의 아버지는 폐에 이상이 오셨다. 그가 배우를 준비하던 도중 찾아온 생계의 문제는 그를 단순하게 만들었다. 어떤 작품을 할지, 미래에는 어떤 배우가 될지, 이게 천성에 맞는지에 대한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들을 깨끗하게 지워주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살았다. 그리고 지금은 여러 쇼에 참여하며 꽤 괜찮은 수입을 가지고 있다. 여러 지역 행사에 초대받기도 했다. 그는 이제 그 정도의 인지도도 가지고 있었다. 더 이상 닥치는 대로 살 필요가 없어 졌을 때, 아픈 아버지의 병원비가 걱정되지 않는 삶이 여러 해 반복되고 그는 붕 뜬 느낌을 받았다. 그저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그는 웃고 있다.

 그는 소변을 보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매니저는 안절부절 입술을 축이고 있다. 그는 눈치가 좋았다.

 “무슨 일이야?”

 “, 그게.......”

 “그게 뭐?”

 매니저는 그의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위독 하시다고.”

 ‘,’

 그는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긁었다.

 “그런 건 끝나고 말해도 되잖아!”

 눈치를 보는 것은 제법 피곤한 일이었기 때문에,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오면 그는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곤 했다. 그는 짜증이 났다. 그는 아버지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가 이 소식을 미리 알고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아버지는 병원에 있다. 필요한 조치를 받고 있을 것이다. 그저 방송에 집중할 수 없을 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그는 방문을 쌔게 닫고 나가버렸다. 매니저보고 나가라 해 봤자 그가 있을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냥 대기실을 조용히 지키는 것이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괜히 일 그게 벌여서 다른 사람 기분까지 망치면 베테랑이 아니니까. 그는 주차장으로 내려가 담배를 꺼냈다. 손으로 대를 이리저리 굴리다 다시 집어 넣었다.

 ‘이제 금방 끝났다. 조금만 참자.’

 냄새가 영향을 끼치면 곤란했다. 그는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갔다. 그의 주머니 안에는 휴대폰이 아직 남아있었다. 그는 전원을 끄기 위해 휴대폰을 확인했다. 수신 목록에는 병원이 있었다. 전에도 종종 왔던 연락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가끔 위독하셨다. 아마 곧 안정됐다는 연락이 올 것이었다.

 ‘한심한 놈. 머리가 없는 건가.’

 휴대폰의 전원을 끄고 매니저에게 돌려주고 싶었으나 그 얼굴을 다시 보기는 싫었던 그는 그냥 진동모드로 전환하고 자신의 바지주머니에 넣었다. 단지 그런 이유였을 것이었다.

 그는 자리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열중했다. 하지만 모든 생각을 잊고 싶어도 하벅지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느낌이 점점 더 강해질 뿐이었다.

 ‘금방 전화가 올 거야. 괜찮아 졌다고.’

 쇼는 다시 시작되었다. 루머에 관한 얘기를 나눌 차례였다. 쇼가 시작되기 전 엠씨는 노련하게도 그녀에게 미리 질문을 말해 당황하지 않도록 했다.

 “그게 정말 닮은 사람이지 저가 아니거든요. 저가 왜 그런 일을 하겠어요.”

 그녀의 눈이 촉촉해졌다. 지금 그녀가 말하는 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그 일로 힘들었을 것이다. 이제 패널들이 그녀를 위로해 주며 편을 들어줘야 하는 때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그는 허벅지에서 강한 진동을 느꼈다.

 ‘왔다.’

 그는 침을 삼켰다. 검지로 자신의 허벅지를 계속 두드렸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다리를 떨지 않았다. 초창기 시절 피디에게 지적을 받은 이후부터 말이다. 그는 약간 안심했다. 이전에도 이렇게 전화가 왔고 아버지가 안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받지 않으면 전화는 곧 그치고 나중에 그가 확인해보면 될 일이었다. 그는 미소가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짧은 안도의 한숨으로 대신했다.

 배우는 계속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말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지만 해명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그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진동이 멈추지 않는 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병원에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있는데 한 명이 위험했다가 안정이 되었다는 소식 따위를 전하기 위해 이렇게 전화를 오랫동안 걸리 없다고 생각했다.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매번 철렁함을 느꼈다. 분명 뭔가 잘못된 것이다. 그는 그 잘못된 것을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아마 그가 맞을 것이다. 그는 바보같이 휴대폰을 가져왔다. 작가에게 맡기든 여러 방법이 있었지만 그도 사람, 아버지의 소식이 걱정되기도 하고 자신 이외에 다른 사람이 그 소식을 먼저 아는 것도 원지 않았다. 그러나 이 상황은 가장 원치 않았던 것이었다. 그는 입술을 말아 넣어 축였다. 두 손을 배꼽 밑에 두고 집게 사이를 주물렀다. 그는 어떻게든 전화를 받고 싶었다. 어떤 수를 써도 받을 수 없는 상황. 진동이 멈추자 그 불안감은 더 심해졌다.

 “정말 아닌데 가족들까지……. 저 때문에 밖에서 마음대로 행동도 못하시고 너무 죄송했어요.”

 배우의 감정은 점점 격해졌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기력으로 화제였던 만큼 지금의 상태가 정말 진실인지 확신할 사람은 없었다. 현재 고개를 끄덕이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 만큼 말이다.

 게스트가 가족 얘기를 꺼내자 그는 더욱 초조해졌다. 이제 그에겐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귀찮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버지를 두고 도망간 어머니를 이해했다. 그는 아버지를 존경하고 있었다.

 힘든 광부 생활 가운데 그는 자식의 식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을 차려주고 어떻게 저녁을 먹어야 하는지 당부했다. 매일 반복되는 말에 그가 이미 알고 있다며 투정을 부리면 그는 웃으며 다 컸다 칭찬을 했다. 미련할 만큼 반복되는 생활을 했다. 그의 자식은 비교적 빠른 시기에 그의 희생을 이해했다.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어쩌면 그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 늙어 가는 것은 자신의 아버지처럼 희생할 자신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고 자신의 한정된 사랑을 아버지 이외의 사람에게 주는 것이 싫어서일지 모른다.

 쉬는 시간이 가지고 싶다. 그는 간절했다. 그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저도 가족 때문에 마음 고생을 했었는데요…….”

 그는 적절한 때에 치고 나와 자신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젊은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한 상대방을 칭찬했다. 그는 어떻게든 그녀를 울리기 위해 작정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퍽 말을 잘하는 편이었다. 다만 인기가 없을 뿐. 그렇기 때문에 오래갈 수 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와 같이 반복되는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입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번 어긋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으니까요. 항상 생각하고 위해야 해요.”

 그가 가족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말했다. 그는 여배우의 삶을 한번 쭉 훑으며 이야기를 했다. 메인 엠씨가 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기다릴 수 없었다.

 그녀는 오열했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 왔다.

 그는 화장실에 달려가 휴대폰을 열었다. 병원에선 5통의 전화가 왔었다. 그는 변기 주변을 서성이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그의 생각을 확신했다. 전화를 걸면 방송에 지장이 있을 것이다. 그는 방송에 지장이 생겼을 때 일을 생각했다.

 ‘내가 만약 기분이 이상하고 격한 상황에서 방송을 한다면.’

 그는 잠시 상상을 해보았다. 그래도 경력이 있는데 자신은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는 이러고 잇는 자신이 너무 싫었다. ‘지금 아버지가…’ 그는 생각을 마치고 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는 변기뚜껑을 발로 찍어 부쉈다. 진정하기 위해선 흥분해야 했다. 그는 닥치는 대로 때렸다. 무슨 일이던 닥치는 대로 했던 그다운 방식이었다. 오른손에서 피가 났다. 그는 흠칫했다.

 ‘방송에 피가 나오면 안 되는데.’

 왼손을 가려보았다. 대충 될 것 같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30분 정도면 마무리 될 것 같았다. 끝 인사만 하면 마무리될 방송이기에 그는 어떻게는 마무리하고 싶었다. 책임과 신뢰는 무거운 것이라는 게 그의 좌우명이었다.

 그는 촬영장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를 제외한 모든 인원이 착석한 상태에서 그를 맞이했다. 그는 미안하다며 고개를 연신 꾸벅이고 실실 웃고 손을 가리고 자리에 앉았다. 모든 상황은 마무리 되었다. 그는 자신의 허벅지를 만져보았다. 뭔가 허전했다. 그는 휴대폰을 두고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상관 없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가야 할 곳도, 해야 할 것도 정해져 있다. 그에게 그것은 변동 가능성이 없는 스케줄이었다.

 “엄마, 아빠 나 때문에 마음 고생한 거 미안하고……. 사랑해!”

 아직 채 울음의 흔적이 가시지 않은 배우가 머리위로 하트를 그리며 인사를 했다. 그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몇 분 안 남은 때였다.

 

 그는 순간 주변이 조용해지고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을 느꼈다. 배우의 입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눈을 깜빡였다. 눈을 뜬 순간 배우의 얼굴은 이전보다 훨씬 거대해져 있었다. 그는 오른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강타했다.

 “!”

 촬영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메인 엠씨는 그녀를 끌고 와 자신의 뒤에 숨겼고 여러 스탭들이 몰려나와 그를 잡았다. 그는 피가 뚝뚝 떨이지는 손을 보며 사태를 파악했다. 그 역시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그를 속박하던 손을 모두 뿌리치고 방송국 밖으로 뛰쳐나가 택시를 잡았다.

 “서울 병원으로.”

 택시기사는 뭔가 급박한 상황임을 감지하고 빠르게 출발했다.

 그는 시트에 등을 완전히 기대 고개를 의자에 받쳤다. 전에 느껴본 적 없는 편안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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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윤주[尹主] 2012.06.28 05:53
    완성된 글을 보니 좋네요 ㅎ
    감정노동, 감정피로라는 말들이 있던데, 이 글을 보니까 절로 떠오르네요.
    의미심장한 글 잘 읽었습니다.
  • profile
    2012.06.28 07:16

    마지막에 한방먹이고 통쾌하게 자리를 박차고 나갈땐 제 기분까지 후련해지더군요

    뒷일은 본인한테 매우 큰일 이겟지만 마지막에서야 가족을 챙기는 모습이 좋습니다

  • profile
    yarsas 2012.06.28 07:38
    굉장히 몰입하다 마지막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역시 가족을 위하는 것이 좋죠.
  • ?
    다시 2012.06.28 18:14
    으앙 아버지 죽은 건데 전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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