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20 05:07

경마장에서

조회 수 325 추천 수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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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경마장으로 갔다. 그는 나와 함께 그곳에 가보고 싶다고 전부터 말했었다. 경마장이라. 어떤 곳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관심이 없었으니까. 굉장히 신선한 느낌이다. 재미있는 데이트가 될 것 같다.

 

 “어떤 곳이야?”

 “그냥 말들이 경주하는 곳이지.”

 그는 내용과는 달리 친절한 어조로 답했다. 그리고 우린 말이 없어졌다.

 “별로 재미없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축구, 야구처럼 공하나를 놓고 박진감 넘치게 쫓고 쫓기는 스포츠도 아니고, 누가 빨리 달리나에 대한 단순한 기록 경기……. 너무 마니아틱하지 않나? 재미없을 것 같았다.

 “굉장히 재미있어. 관객들이 열광적이거든.”

 “?”

 “돈이 걸렸으니까.”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마에선 땀이 흐르고 있었다. 제법 후덥지근한 날씨였지만 버스 안은 시원했는데?

 “도박이야?”

 “실시간 토토 같은 거지. 그리고 요즘은 포커도 스포츠더만? 외국에선 대회도 열고 세계랭킹도 있데.”

 “우리 지금 도박장가는 거야?”

 범법행위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내가 물었다. 나는 정말 법 없이도 살 사람, 그런 일과는 연루되고 싶지 않았다.

 “스포츠와 혼합형태고 합법이지만, , 도박이지.”

 그는 억지로 부정하지 않았다.

 우린 버스에서 내렸다. 경기시간까지는 많이 남았다며 그는 나를 빵집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선 커피를 싸게 마실 수 있어 우리가 애용하는 장소였다.

 “희로애락이 있어.”

 “?”

 “경마 말이야. 거기에 인생이 있거든. 금요일마다 로또 사는 사람들 있지? 그거랑 똑 같은 거야.”

 “흐응…….”

 “뭐 조금 더 절박하고, 조금 더 돈이 들긴 하지만 말야.”

 “한심해. 그냥 돈을 갖다 버리는 것 같아. 도박을 돈을 번다는 게 말이되? 도박장 영업하는 사람만 돈 버는 게 당연하지.”

 나는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솔직히 내 남자가 이런 곳에 돈을 쓸 것 같지는 않아서 할 수 있었던 말이었다. 빵집을 오면서 경마장에 가려는 사람들을 여럿 봤다. 때가 꼬질꼬질 껴있는 허름한 옷을 입고 이상한 경마잡지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 집중력으로 공부를 하지…… 물론 그 분들이 공부를 주로 하는 나이가 아니긴 한 것 같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보기 좋지는 않았다. 내 앞에 이 사람은 참 보기 좋은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런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람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도박으로 돈을 벌려고 하겠어?”

 “?”

 “그래, 그런 바보들이 있기도 하지. 하지만 경마를 하는 사람들이 다 그런 생각으로 돈을 거는 것은 아니야.”

 “그럼? 정말 그냥 말을 좋아해서?”

 “…….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 삶이 무료해서 아니겠어? 몇 초사로 승부가 갈리면서 요즘 가장 귀하다는 돈들이 오락가락 주인을 찾아가지. 얼마나 허무해? 고작 몇 초라니. 돈의 가치가 다시 정립되는 순간이지.”

 “그런가.”

 내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그럴 것 같아. 그 희열을 잊지 못한 몇은 도박 중독자가 되겠지만, 가끔 스트레스 풀 땐 따던 잃던 경마가 최고인 것 같아. 오늘 너도 한번 그것을 느끼면, 경마의 매력에 푹 빠질걸?”

 “그렇게 말하니까 조금 기대가 된다.”

 나는 예의상 답했다. 조금 가식적으로 보일 정도로 말이다. 내가 이곳에 흥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도박 폐인들을 보니 경마장에 대한 호기심이 싹 사라졌다. 가래침과 담뱃재만 가득한 곳이 분명했다.

 “재미없지?”

 그가 물었다. 나는 쓴 웃음을 지어 답했다.

 “아직 안 봐서 그래.”

 “나랑 전혀 관련 없는 곳인걸.”

 우리 둘은 일어나 계산을 하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경마장으로 걸어갔다. 10분 정도 걸린다고 했었다.

 “아주 관련 없진 않지.”

 그가 문득 이야기를 꺼냈다.

 “?”

 “너 무전무죄 유전유죄라는 말 알아?”

 “반대 아니야?”

 내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무전 유죄 유전 무죄? 그건 틀렸다는 말이잖아. ……. 납치범 이야기 하는 거지? 걔가 왜 그런 말을 했겠어. 돈과 관련 없이 죄를 처벌해야 하는데 돈 있는 사람은 처벌받지 않는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야, 이거 아니야?”

 “정확히 그거지. 근데 왜?”

 “그럼 유전 무죄 무전 유죄는 잘못 됐다는, 틀렸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말한 거지.”

 “그런데?”

 “유전 유죄 무전 무죄는 맞는 말이야. 가난한 사람이 빵을 훔친 거, 이해할 수 있잖아?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 돈을 모아서 부자가 된 것이고.”

 “그런가. 그런 말도 있었구나. 신기하네.”

 “나도 소설에서 본거야.”

 그리고 다시 걸었다. 그리고 다시 그는 문득 입을 열었다.

 “중요한 건 혼합돼 있다는 거야. 말을 타는 사람이랑 말에 거는 사람. 모두의 인생이.”

 나는 잠자코 들으며 걷기로 했다.

 “말을 타는 사람들은 가능성 따지지 않고 그저 열심히 달리기만 한다고. 절대 단편적인 게 아니야 뭐든지.”

 “…….”

 “그리고 마사회는 여러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어. 태릉 선수촌도 지원하고 있고. 물론 여기 경마장 사람들이 마사회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선 좀 더 망해야 하지만.”

 우린 경마장 안으로 들어갔다.

 

 “꼭 사야 돼?”

 마권을 사는 것은 도박에 참여하는 것 같아서 망설여졌다. 주위 사람들은 빨간 팬으로 필기를 해가며 연구하는 데, 내가 그냥 덮어놓고 돈을 걸면 좀, 뭐라고 하나, 호구 같다고 하나? 손해를 보는 기분이어서 더욱 망설여졌다.

 “사야 재미있다니깐.”

 “그럼 뭐가 유력한지나 말해봐.”

 나의 말에 내 그럴 줄 알았지씩 웃곤 설명을 해줬다. 저 말은 승률이 80%, 컨디션은 별로인 것 같음. 요 말은 65%지만 상승세……. 그러다 승률0%의 늙은 말을 타는 여 기수를 설명해줬다. 그야말로 0%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마권을 사기로 했다. 즉흥적인 선택이었다.

 “왜 이 말이야? 이 말은 안돼.”

 “나는 도박하고 싶은 마음 없고, 그냥 응원하고 싶어. 당신의 도전도 가치 있다고.”

 이 늙어빠진 도박중독 패배자들이 당신을 쩔뚝이 년, 개발년.’ 이라고 욕해도.

 “가자.”

 우린 들어갔다. 가관이었다. 여기저기서 악취가 났다. 누가 병나발을 불던, 줄담배를 피며 손을 떨던 말을 열심히 뛰고 있었다. 내가 응원하는 8번 말은 우승권 대열과는 떨어져있었지만 딱 봐도 다부지게 일정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힘내요!’

 여러 사람들이 고래고래 악을 써가며 각자의 말을 응원했다. 마침내 마지막 바퀴! 선두 말이 굴러 넘어졌다! 그리고 그 뒤에 말도 넘어지고 그 뒤에 말도 넘어지고 그 뒤의 말은 처참한 광경에 겁을 먹고 반대로 뛰기 시작했다! 중간 순위를 유지하던 8번 말은 선두로 치고 나갔다!

 ‘그래 그거야!’

 어우성은 점점 더 심해졌다. 뜨거운 열기 속에 8번 말은 1등으로 들어왔다. 여기수는 펑펑 눈물을 쏟으며 만세를 질렀다!

 나는 양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기적은 정말로 있는 것인가!

 ‘됐어!’

 “좃됐어!”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몇 사람들은 쓰레기를 경마장 안으로 던졌고 대부분이 뱉는 침으로 홍수를 이룰 듯 했다.

 그러든 말든 기수는 환희에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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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윤주[尹主] 2012.10.19 05:36
    다음엔 같은 결말, 다른 이야기를 써 보시면 어떨까요? 결말이 마음에 들어서요 ㅎ
    어떤 글인지 생각 안나는데, 아사다 지로란 작가 소설 중에 경마장 소재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었어요. 조금 독특한 인연에 대한 드라마틱한 이야기였는데, 그런 이야기를 보고 싶다고 내심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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