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05 07:22

시크릿Secret (2)

조회 수 480 추천 수 2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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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내려가 본 지 얼마나 됐지? 시외버스에 몸을 실은 채 바깥 풍경을 멍하니 보다가, 진연은 문득 엄마 윤주를 본지도 꽤 오래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이 바빠서, 혹은 별 거 아닌 개인 사정을 핑계로 회사 근처에 빌린 원룸 방에 틀어박힌 게 작년부터였던가 재작년부터였던가?


 간혹 엉덩이 무거운 딸내미를 대신해 윤주 자신이 직접 몇 번인가 원룸에 쳐들어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첫 해에만 두세 차례였을 뿐, 다음 해가 되자 가끔 전화로다 알음알음 안부를 전하는 게 전부였다. 왜 그렇게 됐는지는 진연도 잘 알았다. 가을 막 들어섰을 때였나, 깜짝 파티 좋아하는 엄마 윤주가 연락도 없이 무작정 원룸 방에 쳐들어왔을 때. 하필 진연은 사귄지 두 달여쯤 된 남친 이랑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단란'이 단란한 가족할 때 단란과, 단란주점할 때 단란 중에 어느 쪽에 보다 가까웠는지 굳이 언급해 둘 필요는 없겠다.


 그러니까 적어도 일 년 가까이, 진연은 엄마 윤주 얼굴을 제대로 본때가 없었단 소리다. 이 생각을 하자 진연은 갑자기 묘한 죄책감을 느꼈다. 살아생전 부모 맘 흡족하게 해드리는 자식 없다지만 막상 본인이 그 꼴이 되자 마치 사람들 앞에 벌거벗겨진 채 비난받고 있는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읍내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린 뒤, 진연은 다시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엄마 윤주의 집은 읍내에서도 조금 떨어져 집 예닐곱 채 정도가 야산 아래 작은 동네를 이룬 시골 마을에 있었다. 몸집이 작고 심하게 덜커덩대는 마을버스로 십 수 분은 더 가야 비로소 마을 어귀에 도착하게 된다. 버스정류장 앞 골목가게에서 작은 생수병을 하나 사 나오면서 진연은, 어릴 때 자신이 어떻게 이 답답하고 느릿한 시골 마을을 참아주고 살았었던지 심히 궁금해졌다.


 읍내라고 하지만 넉넉잡아 걸어서 한 시간 정도면 구석구석까지 죄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곳이다. 진연이 서 있는 정류장을 중심으로 그 일대는 대부분 상설시장인지 3일 장터인지 구별이 안 되는 번화가지만, 오른쪽으로 십여 분만 걸어 들어가면 진연이 어릴 적 다녔던 초등학교가 있었다. 학교 주변엔 제멋대로 집들이 세워져 복잡하게 발달한 골목길이 있었고, 진연이 초등학교를 다니던 당시에도 한쪽 귀가 멀다시피 한 노파가 운영하는 작은 문방구가 그 골목길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진연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죽 나아가면, 읍내를 빙 둘러 엄마 윤주네 동네며 그 밖에 작은 마을들을 따라 흐르는 작은 실개천이 나왔고, 진연이 등진 방향으로 3, 4분가량만 걸어도 비뚤비뚤 구획진 논밭이며 축사를 볼 수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늦은 오후임에도 길거리에 사람이라곤 잘 눈에 띄지도 않았다. 어쩌다 인기척이라도 나서 고개를 돌려보면, 머리는 새하얗고 몸은 하나같이 왜소한 노인네 한둘이 느긋한 걸음으로 도로를 가로지르는 게 눈에 띌 뿐이었다. 지독히 조용한 동네다. 진연은 불안해했다. 쉴 새 없이 소음이 쏟아지고 사람들로 북적대던 도시와는 전혀 다른 읍내 모습은 그렇게 을씨년스러워 보일 수 없었다.


 초조함과 왠지 모를 불안감 속에서 사십 여 분을 그렇게 기다린 끝에야 겨우 마을버스가 도착했다.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진연은 부리나케 올라타 자리에 앉았다. 마음속으론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에서 떠나고 싶은 생각만 간절했다. 그런 진연의 마음과 달리 버스 기사는 여유롭기만 했다. 진연이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버스 기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리로 내려가더니,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진연 눈앞에서 구멍가게 주인과 한가롭게 수다를 떨었다. 15분가량 흐른 끝에야 두 사람의 한담은 겨우 끝이 났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멀미 때문에 진연은 창문을 열었다. 다행인 건 버스에 탄 사람이 진연 외에는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찬바람 덕분에 속이 울렁이는 건 좀 가셨지만, 그날따라 버스는 심하게 덜컹거렸다. 한 차례 버스가 무언가를 밟고 심하게 요동칠 때가 있었다. 앞좌석을 잡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진연은 하마터면 자리에서 튕겨나가 바닥을 구를 뻔했다. 대신 딱딱한 버스 좌석에 엉덩방아를 세게 찧어서 도착할 때까지 제대로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리에 걸터앉아 한쪽 엉덩이를 문질러야 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에야 버스는 비로소 마을 어귀에 진연을 내려 주었다.


          *                    *                    *                    *


 배산임수라고 했던가, 전체적인 마을 모습은 딱 그 표현에 걸맞았다. 정류장에서 트렁크를 끌고 진연은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실개천에 놓인 돌다리를 건넜다. 읍내에서부터 흘러내려온 바로 그 물줄기다.


 다리를 건너 죽 이어진 시골길은 야트막한 야산에 살포시 안긴 마을 골목으로 이어졌다.  마을을 흡사 학처럼 껴안은 산자락은 그 꼭대기 평상처럼 놓인 커다란 바위가 조상과 귀신들이 놀다가는 곳이라 해서 영 영(靈)자에 놀 유(遊)자를 써서 영유 산이라고 불렸다. 그 야트막한 산자락 맨 아래서부터 집들은 마치 어미 품에 안긴 자식들처럼 파고들어 전체적으론 경사 완만한 비탈을 이루고 있었다. 엄마 윤주네 집은 그 중에서도 가장 산 가까이, 그러니까 비탈길 제일 끝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작은 기와집이었다.


 경사 얕은 오르막이라곤 하지만 방금 전까지 버스에서 한껏 부대낀 대다 트렁크까지 짊어지고 온 채였다. 대문 앞에 이르자 진연은 금세 녹초가 되었다. 살짝 문에 손을 대었더니 철제문은 끼익 소리를 내며 자연스럽게 안으로 밀렸다. 조심성 없기는, 진연은 혀를 차며 안으로 들어섰다. 마당이 제법 깔끔한 게 최근까지 사람 손길을 받은 모양이었다. 가을철이라 하루하루 치워주지 않으면 금세 낙엽으로 뒤덮이는 게 한옥 마당이다.


 "계세요?"


 당연히 진연은 집 안에 누군가 있겠거니 싶어 사람을 불렀다. 이상하게도 안에선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진연은 마루 앞까지 와서 다시 한 번 계세요, 하고 사람을 불렀다. 여전히 방 안에선 반응이 없었다.


 신고 있던 부츠를 벗어 트렁크와 함께 마루 앞에 나란히 놓아두고 진연은 마루 위로 올라갔다. 앞뒤로 뻥 뚫린 대청마루지만 뒷마당으로 열린 들문은 누군가 내려 걸어 잠갔으므로 바람이 심하게 들이치진 않았다. 진연은 곧바로 마루 왼편 안방 문을 열어젖혔다. 방 안 풍경을 본 진연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방 안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란 대상에 산 사람만을 한정시켜놓고 얘기하자면 그랬다. 거기에 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관 속에 들어앉은 윤주만이 홀로 외로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진연은 다른 방들이며 부엌까지 죄다 둘러보았다. 모두 방금 청소해놓은 것처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긴 했지만 사람 기척은 어디에도 없었다. 안방, 안방에서 문 한 짝으로 통하는 부엌, 그 부엌과 연결된 또 다른 방, 대청 마루너머 작은 방, 또 작은 방, 작은 방에서 올라가는 다락방까지도 진연은 살펴보았다. 집에 있는 건 분명 죽은 윤주 시신뿐이었다.


 섬뜩하기보단 조금 슬펐다. 평소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던 사람이 정작 자기 죽어선 아무에게도 도움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조금이라도 일찍 올걸 하는 후회가 진연에게 밀어닥쳤다. 아니,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이 집에서 떠나질 말 걸 그랬다. 진연은 그제야 엄마 윤주 앞에서 실컷 통곡하고 울 수 있었다.


 진연이 너무 당황하고 또 혼란했던 나머지 그때까진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관 속에 담긴 윤주 시신은 놀라우리만큼 평온해 마치 잠든 것처럼 보인다는 것과, 윤주를 관에 넣은 사람의 흔적은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다는 사실. 또 한 가지, 진연 자신에게 윤주의 부고를 알려준, 젊은 여자 모습도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


 간만에 시크릿, 두 번째 화 올립니다.

 뭔가 새 게시판에 적응을 못한 건지, 업로드하고 보면 생각했던 대로 올라가질 않네요;; 글 양쪽이 잘리는 것 같은데, 이번엔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메모장에 붙여넣기 했다 빼도 난리네요;;


 당분간 천천히 갑니다. 연재주기는 대략 일주일 이내에서 돌아갈 예정이네요. 부족한 글이지만, 아무쪼록 즐겁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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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미니♂ban 2011.01.05 07:35

    저도 소설 가운데에다 ********* 이런 표시도 넣어볼까요? 글자가 굵으니가 읽기가 개인적으로 좀 불편한듯?? 아무튼 창도가 리뉴얼 되어서 윤주님도 채팅창에 볼 수도 없고.. 윤주님이랑 이야기 하고 싶은데 ㅠㅠ

  • profile
    윤주[尹主] 2011.01.05 07:57

    아....의외로 읽기 불편하군요;; 감사합니다. 어떻게 해야 보기 편할지 이래저래 시도중이라;;

     채팅창 4, 50분 전부터 계속 접속 시도하곤 있는데 잘 안되네요...그것 때문에 혹시나 싶어 인터넷 브라우저까지 크롬으로 갈아탔는데;;

  • profile
    클레어^^ 2011.01.05 07:37

    아앗, 오랜만이에요.(진연씨도 오랜만~)

    저 같은 경우는 그런 경우, 수정 버튼 눌러서 그냥 등록을 누르긴 하지만...;;

    이제 윤주 여사님의 장례를 치르시면 되겠군요 ㅠㅠ

    진연씨, 힘 내세요...

    (그러고 보니 그 고교 동창은 요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나... 이름 보니까 걔 생각이 드네요...;;)

  • profile
    윤주[尹主] 2011.01.05 07:59

     동창분과 연락 되시면 좋겠네요^^

     장례식은 좀 '화려하게 불태울' 생각입니다 이런저런 의미에서요 ㅎㅎ

  • profile
    시우처럼 2011.01.05 20:30

    화려하게 불태운다면!

    전에 윤주님의 스토리 라인을 봐서 대충을 알긴하면서도

    이젠 정말로 화려하게 불타겠군요. ㅎ

     

    아무튼 더이상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테니 여기서 입을 다물어 봅니다. ㅋ

  • profile
    시우처럼 2011.01.05 20:36

    아, 그리고 다시 천천히 읽다보니

     

    3번째 문단에 '제대로 본때가 없었다.' 부분이 전 조금 어색하게 보이네요

    제대로 본 때라고 하면 뭔가 어감이 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가 낫지 않을까요?

     

    물론,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라는 표현이 상투적이고 자주 쓰이는 표현이라

    윤주님께서 글의 신선함을 위해 일부로 그렇게 쓰셨을지도 모르지만요. ㅋ

     

    그리고 시골 마을에 대한 묘사가 좋은 것 같아요.

    한적하고 여유자적한 모습이 잘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매점 아줌마와 잡담을 나누는 기사의 모습은 심히 공감이 되기도 했다는.

    (예전에 제가 그런 경험이 있거든요. 도대체가 버스가 30분이 넘도록 출발을 안해. ㅋㅋ)

     

    마지막에, 부고를 전해온 젊은 여자의 종적이 어디로 갔는지 없다라는 문구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와서 다음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것 같습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1.01.06 00:09

     시우님 말이 맞네요. '제대로 본 적 없었다'가 좋겠어요^^;;


     발차 시간 질질 끄는 운전기사 얘기는 그냥 상상해본 건데, 실제로도 간혹 그런 일이 있나 보네요;; '아, 정말 그런 일 겪으셨구나' 하고, 덕분에 웃었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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