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22 22:01

발큐리아! 3화

조회 수 540 추천 수 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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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나순정!"


 별관 복도를 어슬렁대다가 꼴보기 싫은 녀석들을 마주쳤다. 지난밤 두 꼬맹이를 끌고 다니느라 피곤했던지라, 아무 일 없이 그냥 조용히 지나가길 내심 바라던 터였다. 기대와는 달리, 세 녀석들 중 하나가 나를 불러 세웠다. 어젯밤 상선고 가기 전 만났던 바로 그 년이다.

 대꾸하는 대신, 나는 걸음을 멈추고 상대방을 힐끔 쳐다보았다. 피래미는 관심없다. 목소리 큰 것 하나만 믿고 설치는 년 따윈 상대할 가치도 없다.


 "어쭈, 말 씹네. 야,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냐!"

 "한구석에 짜져 있어라, 시발년아. 그만큼 쳐맞았으면 닥치고 있어야 될 거 아냐, 젠장할."

 "분위기 진짜 못 읽는다, 너. 아, 아싸니까 당연한 건가?"


 다른 년 하나가 이야기에 끼어든다. '아싸'라는 말에 목소리 큰 년도 같이 키득대면서 비웃기 시작한다. 어차피 이 쪽도 주둥아리만 떠들 줄 알지, 제대로 싸우면 한 주먹감도 안 될 년이다.

 정말 상대해야 할 년은 그 뒤에 년이다. 여태껏 아무 말도 없었고 표정 변화도 없이, 그저 이쪽을 보면서 기분나쁘게 실실 쪼개고 있는 얌전하게 생긴 년 말이다. 틈만 나면 선생들에게 애교나 떨어대는데다 성적도 우수하고 부모도 동네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사람들, 거기에 사교성도 좋아서 항상 반 애들 무리 여기저기 끼어 몰려다니는 이 녀석이 절대 나 같은 양아치랑 어울릴 일 따윈 없어 보이지만,


 "야, 윤혜미! 할 말 있으면 직접 하시지그래? 이런 쫄따구들 시켜서 싸움붙이지 말고!"


 매일같이 당하는 나는 알고 있다. 학교 양아치 새끼들을 손가락 하나로 부리고, 반항하는 녀석은 자기가 손 더럽히지도 않으면서 처리해 버리는 악질 중에 악질, 일진 중에서도 일진이 그 년이란 걸.


 "야, 혜미가 뭐하러 너랑 상대하는데! 우리는 우습게 보인다 이거냐?"

 "병신 새끼, 입만 살아서 지랄하는 것 좀 보소."

 "뭐래, 주먹질 하는 것밖에 모르면서 잘난체 하는 쓰레기가."


 아 그래, 늘상 이런 식이다. 먼저 도발하는 건 녀석들이고, 나는 그저 거기에 발끈할 뿐인데 항상 처맞는 녀석들은 피해자고 때린 나는 가해자라고 한다. 싸움박질 좀 잘한대봐야 여학교, 그것도 초등학교도 아니고 고등학교에서 좋다고 달라붙을 애들도 없다. 자연히 이미지가 나빠지는 건 나뿐이다. 친구도 하나 없이 혼자가 되는 것도, 그들이 아닌 나 하나 뿐이다.


 '그치만 누나도, 좀 더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해주면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거예요.'


 어젯밤 만난 꼬맹이는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말인데, 맨날 싸움박질이나 하던 녀석이 어느날 갑자기 친절해진다고 해도 좋다고 할 사람이 있기나 할까? '쟤 요즘 왜 저러지?', '뭔가 꿍꿍이가 있나?' 이렇게 생각하는 게 보통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내가 주변 애들에게 친절해지고 싸움박질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대도 이 녀석들이 나를 가만히 두긴 할까?


 "오늘은 계속 책상에 엎어져 잠이나 자던데? 이동수업 때까지 고개 한 번 들지도 않고 말야."


 혜미가 입을 열자, 다른 두 년은 낄낄대고 비꼬던 걸 그쳤다. 오로지 나와 혜미만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마치 그 자리에 우리 두 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신경 끄시지? 그게 너랑 뭔 상관인데?"

 "신경 쓸 수밖에. 이래뵈도 학급 반장이거든?"

 "어, 그러셔? 학급 반장이 그런 일 하는 거였냐? 난 또 선생들에게 아양이나 떨고 점수 좀 잘 받아가려고 하는 건 줄 알았지."

 "설마 그거 기분나쁘라고 하는 소리니? 상관없어. 사실이니까."


 혜미는 전혀 표정 변화 없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떻게 인간 이 이리도 뻔뻔할 수가 있는지. 황당하리만큼 당당한 그 기세엔 솔직히 화도 나지 않았다.


 "사실이니까, 네겐 신경 안 쓸 수가 없어. 행여 네가 사고라도 치면, 물론 선생님들은 그렇게 생각 안하시겠지만, 반장인 내 책임인 것만 같잖아?"

 "그런 생각 쥐꼬리만큼도 없으면서 말은 잘하셔."

 "오늘 계속 자는 거, 혹시 어젯밤 일 때문이야?"

 "!!"


 나도 모르게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고 말았다. 혜미가 어째서 어제 일을 알고 있는 거지? 전부 보고 있었던 걸까? 어째서 그 시간에?


 "진화한테 들었어."


 목소리 큰 애를 가리키며 혜미가 말했다.


 "너 어제 어딘가 가고 있었다며? 그런 한밤중에 어딜 갔던 거야?"

 "시끄러, 알 거 없어."

 "왜? 소문 퍼지면 안 되는 일이라도 하나보지?"


 들킨 걸까? 혜미 표정을 살피면서 나는 대꾸할 말을 신중히 고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 혜미는 음흉하게 웃고 있었다. 역시 들킨 거다. 소문낼 생각이다. 도시 전설 같은 거나 믿고 꼴사납게 다른 학교 담장 넘어 들어갔다 수위 아저씨에게 쫓겨 도망쳐나왔다고 다 말해버릴 생각인 거다.

 혜미는 목소리를 조금 낮춰, 하지만 주위에 있는 세 사람에겐 모두 들릴 정도 크기로 속삭이듯 말했다.


 "단란주점이라도 나가는 거 아냐? 용돈벌이라도 하려고."

 "뭐라고?!"


 다행히 들키지 않았어, 라는 안도보다 화가 먼저 치밀어 올랐다. 혜미는 내가 유흥업소라도 드나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우리 집이 가난하단 걸 은연중에 비꼬면서 말이다.

 혜미가 데려온 두 녀석들은 낄낄대며 웃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분을 삭이며 혜미를 노려보았다. 그 와중에 한 녀석이 조심성없이 말을 내뱉지만 않았다면, 난 그대로 혜미에게 덤벼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 녀석은 나를 깔보듯 보며 이렇게 말했다.


 "왜, 부모가 주는 생선 비린내 나는 돈만 가지곤 부족했나봐?"

 "야, 이 시팔 새꺄!"


 순간 꼭지가 확 돌아, 말을 던진 녀석에게 주먹을 날렸다.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복도에 쓰러져 누웠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곧바로 녀석 위에 올라타 주먹으로 얼굴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녀석이 팔을 버둥대며 몇 번인가 막긴 했지만, 이미 그 년 얼굴은 만신창이가 된 후였다.


 "인마, 나순정! 그만 두지 못해!"


 그 사이 누군가 불러왔는지, 선생 하나가 내려와 나를 뜯어말렸다. 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대는 와중에도 왠지 그 순간엔 머릿속에서 '아, 어쩌면 퇴학당할지도 모르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상관없다. 퇴학이든 뭐든, 이젠 어찌되든 상관 없는 일이다.

 어젯밤 그 녀석, 스스로 여신이라고 부르던 그 꼬맹이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친구 만드는 게 네 소원이라면, 들어주는 건 어렵지 않지.'

 '정말이지?'

 '그렇게 거창한 소원도 아니고, 어차피 내가 손쓰지 않아도 조만간 친구 정도는 사귀게 될 거 같으니까 뭐...'

 '아니 잠깐, 지금 그거 무슨 뜻이야?'

 '아무 의미도 없었느니라?'

 '...다른 소원을 빌까? 뭐든지 들어준다는데 이건 너무 소박한가?'

 '어이, 폭주하지 말고 일단 내 말 좀 들어라!'


 내 소원을 들은 여신은 너무도 흔쾌히 받아들여주었다. 그러나 내가 떠올린 건, 여신이 한 그 다음 얘기였다.


 '소원은 들어주겠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말이다...'

 '조건이라고? 그런 말 안 했잖아, 시팔!'

 '이건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으니까 멱살은 놓아라!'

 '...'

 '크흠, 아무튼 조건은 이거다. 소원을 이루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게 며칠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좌우간 이틀 이상은 걸릴 테지.'

 '그게 뭐?'

 '그러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어렵게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해도 사흘 뒤에 온 세상이 멸망해 버리면 말이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여신은 선언했다.


 '들어라. 오늘부터 사흘 뒤, 세상은 망한다. 너희가 무언가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

 좀처럼 글이 나가지 않아서 지금껏 올리질 못했네요. 아무튼 3화 올립니다.

 새로운 근황입니다. 겨우 취업했습니다.
 여행사 회계/경리직입니다. 다음 주 화요일부터 출근입니다.
 유명한지는 모르겠지만 오래된 회사라서, 최소한 이상한 회사인 것 같진 않네요.
 오전 면접 직후 오후 채용 확정이란 게 걸리긴 하지만서도... 술접대 있단 말에 꺼림칙하긴 했지만서도...

 암튼 1년 6개월 가까이 걸려서, 겨우 쓸모없는 인간에서 평범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힘들게 간 거, 기왕이면 좋은 직장이어서 오랫동안 경력 쌓고 싶네요 ㅎ

 개인사는 여기까지. 아무튼 재밌게 읽으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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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乾天HaNeuL 2012.05.22 22:09
    음.... 여기서 더 나아간 심각한 욕설은 삐~~~~~~~~ 처리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ㅋㅋ

    취업 축하드리고요.

    ㅇ_ㅇ/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2.05.22 22:28
    감사합니다~

    일부 욕설은 X처리 하려고요; 과하다 싶은 게 있으면 그때그때 얘기해 주세요 ㅎ
  • profile
    3류작가 2012.05.23 02:35
    드디어 사건이 벌어지는 건가요~!
  • profile
    윤주[尹主] 2012.05.23 08:19
    서서히 하나씩 하나씩 까면서 긴장감을 높여가고 싶긴 한데, 잘 될지는 모르겠네요;;

    일단 이어질 사건들 중 하나가 발생했다고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profile
    클레어^^ 2012.05.23 07:17
    오호~. 취업! 근데 술접대라... 그 여행사에 대한 정보 등은 자세히 알아보시고 지원을 하신 거지요?
    근데 주인공의 입장에선 '그냥 세상 따위 멸망하라 그래.' 이런 식일지도...;;
  • profile
    윤주[尹主] 2012.05.23 08:17
    아무래도 돈 관련된 일이니까 접대 으레 따라붙기도 하겠다 싶긴 합니다....지원한 회사는, 글쎄 내부 실태까지는 제가 알 수 없지만 정말 오랫동안 사업 벌여온 회사고 인맥도 상당히 넓은 거 같아요. 아주 이상한 회사는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ㅎ

    주인공의 심정은, 클레어 님 말씀하신 대로 진행될 거에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또 내일 생각해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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