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24 06:49

현실과 꿈-6

조회 수 449 추천 수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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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에서의 행군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깨어나보니 역시 병원이다. 내 옆에는 엄마와 아빠, 나를 때린 애가 앉아있었다. 얼마나 불편했을까. 굉장히 미안하다. 내가 눈을 뜬 것을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엄마였다. 엄마는 일어나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눈이 부었다. 울었던 걸까. 병원, 몇 번째지. 정신병원을 포함하면 많이 온 것 같은데. 답답하다. 갑갑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서 ‘넘어졌어요.’ 라고 말해야 하는데, 억울한 저 학생이 빨리 집으로 가야 할 텐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손가락을 움직여봤다. 잘 움직인다. 지금이라면 앉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행동이 굼뜨고 어색할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보이면 다들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알고 싶지 않지만 너무나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들이 떠오른다. ‘너, 넘어졌어.’ 조금 더듬긴 했지만 정확히 말했다. 엄마도 들으신 것 같다. 부은 눈이 다시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뭐지. 뭘 해야 했던 거지? 뭘 하던지 비슷했을까. 시간은 금방 갈 것이지만, 잠이 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병실에 누워있기란 재미있는 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이런 분위기…….
 버리고 싶다. 이 따위 현실. 언제나 느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인정하지 않았었다. 그냥 잠시 지나가는 감기처럼, 이런 현상이 없어지길 바라고 있었다. 그저 막연하게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병원에 가는 것도 정말 몇 번째인가. 심지어 정신병원까지 가봤다.
 이전까진 죄송했던 것이 이젠 짜증으로 변한다.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거지?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 나를 성장시키기는 개뿔 사회에서 낙오 시키고 있다. 아니, 낙오자의 틈에도 끼지 못하도록 탈주 당하는 것 같다. 꿈에서 죽으면, 그 때는 괜찮아질까? 아주 죽어버리면 어떡하지? 아주 죽어버렸을 때, 현실에 미련이 생길 것 같진 않지만, 꿈에는 좀 미련이 생길 것 같다. 꿈에서 나는 능력자니까. 나름 사람을 위해 싸우고 있고 꽤 비중 있는 사람이 쉽게 되었는데, 포기하고 싶지 않다. 꿈에서 죽으면, 최소한 꿈에서는 죽을 테니까.
 현실에서 죽는다면?
 휴대폰을 열어보니 문자가 와있었다. [아저씨다. 그러고 보니 내 이름도 밝히지 않았구나. 내 이르] 꿈은 진짜였다. 말이 이상하지만, 아무튼 그랬던 것이다. [12]라고 답장을 보냈다. 답장을 보내기 까지도 너무 힘들었고, 내 이름 세 글자를 치는 것은 상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괴로웠다. 손을 움직이는 것이 아픈 것은 아니었고, 충분한 시간을 가진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엄마가 나를 보고있는 이 상황에서 결코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겨우겨우 아저씨의 문자를 지웠다. 혹시나 보고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를 묻는다면, 대답을 해야 할 것이고, 그런 자세한 문장을 말하면서 나는 수 차례의 실수를 할 테니까. 아마 아저씨도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하고 포기한 거겠지.
 시간아, 제발 모두 흘러가 버려라.


 “그래서 이름이 뭐라고요?”
 “페퍼진”
 “특이한 이름이네요.”
 소년이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여전히 사막을 걷고 있었다. 충분한 물과 식량을 소년이 운반하고 있었고, 체력적인 한계도 전혀 느끼지 않았지만, 이렇게 지겨운 일정 속에서도 소년이 유쾌함을 잃고 있지 않다는 것은 조금 신기하게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신났구만.”
 아저씨도 웃으며 답했다.
 “문자 봤어요. 답장’12’라고 보냈으니까 확인해보세요.”
 “알겠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아무레도 불안해.”
 “뭐가요?”
 “전에 느껴졌던 강력한 기운 말이야. 아군이었다면 성에서 우리 쪽으로 왔겠지. 우리쪽에서 성으로 갔다면……. 아무레도 적인 것 같아.”
 아저씨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기운을 느꼈던 날부터 아저씨의 표정이 경직되어 있었는데, 이런 걱정을 하고 있었구나, 소년이 생각했다.
 “그렇다고 저희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지 않나요.”
 “그건 그렇지. 대강 예상한 것 때문에 발길을 돌릴 수는 없으니까. 그건 그렇지만…….”
 소년은 꿈이 진짜라는 사실 하나로 너무나 기쁜 상태였으나 그는 그렇지 않은 듯 했다. 그는 소년과 달리 이 꿈에 들어 온지 꽤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소년에겐 아직까지 실감나는 꿈이었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현실이었다. 그것이 남과 공유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그저 신기한 일일 뿐,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그렇게 말한 후 그들은 계속 걸었다.

 “이제 도착이다.”
 “아저씨 궁금한 게 있어요.”
 “말해봐.”
 아저씨는 긴장한 표정이었다.
 “악의 본거지 인데 겨우 우리 두 명이서 쳐들어가도 되는 건가요? 심지어 저를 만나지 않았다면 혼자 가실 계획이었잖아요.”
 “많다고 좋은 건 아니니까.”
 “녹색 괴물 한 마리에도 쩔쩔매시던데.”
 소년이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성을 지키는 입장이니까 다르지. 또 혼자 무장한 성에 쳐들어올 정도면 강한 축에 속하는 놈이었겠지.”
 ‘정말 가능할까? 둘 이서 성 하나를 함락 시키는 게……. 우리도 녹색 괴물 꼴이 나는 거 아니야?’
 소년이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두렵지 않았다. 어째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겪었던 두 번의 전투 이후에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섰기 때문이었다. 이런 확신에 가까운 느낌이 그를 전에 없이 명랑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이기도 했다.
 “다 온 것 같다.”
 그가 연신 지도를 보며 말했다. 소년은 주변엔 아무것도 없이 사막이었는데 지도를 통해서 성의 위치를 안다는 것이 신기했다. 실눈을 뜨고 보니 언뜻 성이 보이기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좀 더 가야하지 않나요?”
 “여기서 공격할거야.”
 그는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주 거대한 원을 그리더니 그 안에 빼곡히 문자와 도형들을 그려넣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아저씨가 소년을 불렀다. 거대 원형 마법진에서부터 지팡이로 선을 그으며 떨어져갔다. 실눈을 떠도 성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동하던 아저씨는 그 뒤로 한참을 더 가서야 걸음을 멈췄다. 이제 둘은 성도 마법진도 완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 서있었다.
 “눈 꼭 감아.”
 소년은 눈을 꼭 감았다. 해가 질 무렵까지 그린 마법진에서 어떤 것이 나올지 궁금했으나 궁금한 만큼 위험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갑자기 깜깜했던 시야에 환한 빛이 들어왔다. 온 몸에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이제 눈을 떠도 되.”
 “와…….”
 거대한 불덩이가 성을 향해 날라가고 있었다. 열기에 대한 느낌을 통해 꽤 멀리 날라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육안으로는 그 거리를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불덩이였다. 그것은 성에 정확히 꽂혔고 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들은 성으로 접근했다.
 “굉장해요.”
 “긴장을 늦추지 마.”
 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것이 있었던 자리엔 무지막지한 구덩이만 생겨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작은 녹색 정육면체가 공중에 떠있었다.
 “저게 뭐죠?”
 “뭐가?”
 “저기 떠있는 거요.”
 눈이 좋은 소년에게만 보이는 듯 했다. 아저씨는 경계하면서 소년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한 줄기의 빛을 날렸다.
 “어떠니?”
 “멀쩡해요.”
 “음…….”
 그는 다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떤 마법을 준비하는 거죠?”
 “소멸 마법. 한번도 써본 적은 없지만 배운 적은 있거든.”
 “방금 쓰신 게 소멸 마법 아닌가요? 성이 완전히 없어져 버렸는데.”
 “방금 건 훨씬 간단한 마법이었어. 그냥 녹여버린 거니까. 아마 기체가 되었겠지. 이번 마법은 완전히 사라지게 만드는 건데, 될지 모르겠다.”
 전에 있던 성에서 마법에 대해 대충은 들은 그였지만 복잡한 마법과 간단한 마법의 차이를 알 수는 없었다. 언뜻 보아도 크기에서나 글자의 수에서나 전의 마법진이 훨씬 복잡해 보였기 때문에 그는 의아해 했다. 몇분 지나지 않아서 그는 마법진을 완성시켰다. 성인 남성 한명이 앉아 있으면 딱 맞을 그런 크기였다.
 “이젠 저걸 어떻게 가져오느냐 인데.”
 “꼭 없애야 하나요? 아무 반응도 없는데.”
 “기운이 강해. 위험한 물건이야. 네가 가서 함 가져와봐라.”
 “네?”
 “저 정도 못 뛰냐?”
 “어떻게 저기까지 뛰어요.”
 한 성을 날려 버렸고 그 성의 한 가운데에 있던 차라 육안으로는 볼 수 도 없는 초록 상자였다.
 “엇?”
 “왜 그래?”
 “이쪽으로 와요!”
 소년이 소리쳤다.
 녹색 상자는 그들이 있던 지면을 강타했다. 소년은 아저씨를 붙잡고 재빠르게 뒤로 뛰어 피할 수 있었다. 그 상자는 여러 개의 작은 정육면체로 이루어졌었고 그 것들이 차차 사라져가며 그 안에 있던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 하는 놈들이냐!”
 놈은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녹색에 눈이 노란 색이었으니, 괴물임이 분명했다.
 “혼자 살아남은 건가. 저 상자 무지하게 단단한 모양이니까 조심해라.”
 아저씨가 소년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리곤 손을 휘둘렀다. 그의 손에선 빛의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괴물을 향해 뻗어나갔다. 괴물은 정면에 녹색 벽을 만들어 공격을 방어해 냈다.
 “지혜님이 없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괴물이 중얼거렸다.
 ‘지혜? 이곳도 우리 같은 이름을 쓰는 건가?”
 괴물과 소년은 엄청난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소년의 엄청난 청력으로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칫, 안 통하는 군!”
 아저씨가 말했다.
 “저 상자, 정말 단단해! 어쩌지?”
 “소멸마법 쓰신다면서요. 그걸로 좀 해보세요!”
 “마법진 안에 들어가야지 쓰지, 성공할지 안 할지도 모르고!”
 너무 강한 상대를 만난 둘은 약간의 공황상태에 빠졌다.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 적이 가진 위압감은 실제로 굉장했다.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
 괴물이 말했다. 물론 소년만 들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않고 그대로 서있었다.
 “먼저 접근할까요.”
 소년이 물었다.
 “위험해. 일단 관찰부터.”
 그렇게 긴 대치국면이 시작되었다. 괴물도 그들에게 접근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저씨 졸려요.”
 소년이 말했다. 이것은 기만이나 교만이 아니었다. 그의 행동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잠이 들고나서 너무 많은 일을 했고 너무 오랜 시간동안 움직이게 되었다. 그의 눈꺼풀이 감기고 있었다.
 ‘큰일이다. 설령 저 괴물을 쓰러트린다 해도 이곳에서 잠이 드는 것은 너무 위험해. 내가 업고 갈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저씨가 생각했다.
 “죽어라.”
 괴물이 조용히 중얼거리는 것을 소년이 들었다.
 “아저씨! 조심하세요!”
 그러나 아무 변화도 없었다.
 “무슨 말이냐?”
 ‘뭐지, 분명 ‘죽어라.’라고 했는데……. 빈말이었나?”
 그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온통 모래뿐이었다. 그때 하늘에 초록색 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원은 점점 커져 그들을 덮으려고 했다. 소년은 아저씨를 엎고 괴물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지만, 녹색 벽은 점점 더 빠르게 퍼져갔고, 결국 그들은 괴물을 눈 앞에 두고 가치고 말았다. 소년은 자신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벽에 강하게 충돌했다.
 [쾅!]
 “크윽-!”
 “이봐 괜찮아?”
 “곧 낫겠죠. 그보다, 이제 어쩌죠?”
 “함정을 파고 있었다니. 일단 불을 밝힐게.”
 사방이 어두워 그들은 서로를 볼 수도 없었다.
 “공기 걱정은 일단 덜었군.”
 아저씨가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그들은 거대한 돔 형태에 갇히고 만 것이다!
 “아저씨 너무 졸려요. 어떡하죠?”
 소년이 자신의 부러진 어깨를 부여잡고 우는 소리를 했다.
 ‘아무리 넓어도 공기는 부족하고,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더 잠이 올 거야. 식량이야 남은 것이 꽤 있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다.’
 아저씨가 생각했다.
 “땅을 파보자.”
 아저씨는 말을 마치자 마자 지팡이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말이 아저씨지 사실 할아버지에 가까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속도가 나오지 않았다.
 “마법을 쓰면 안될까요?”
 “성공할지 안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불 마법을 사용하면 신선한 공기만 날릴 위험이 있어.”
 그가 열심히 지팡이로 땅을 찌르며 말했다.
 “제가 팔게요.”
 “팔은?”
 “다 나았어요.”
 실제로 그의 골절은 다 완치가 된 상태였다.
 “뭐?”
 소년은 대꾸하지 않고 맨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런가, 얘 능력은 ‘완벽한 신체’ 뭐 이런 거 같군.’
 소년은 졸린 와중에도 지친 기색 없이 날렵하게 땅을 팠다.
 ‘부럽군. 설마 안 늙는 것은 아니겠지. 정력도 좋겠지?’
 구덩이는 제법 깊어졌고 소년은 위로 올라가는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손톱은 깨지고 그 사이에선 피가 흘렀다.
 “잠시만 쉬었다 할게요.”
 “알겠다.”
 구덩이 밖에서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망가진 손톱을 뽑자 신음소리와 함께 새로운 손톱이 돋아 나왔다.
 ‘정말 꿈 같은 일이야.’
 소년이 생각했다.
 “다시 팔게요.”
 “수고해라.”
 “근데 이거 아저씨 마법으로 어떻게 안될까요?”
 “안되더라고.”
 “소멸 마법인가 그것도 사용해 보셨나요?”
 “그건 안 통해.”
 “거야 해보지 않으면 모르죠.”
 “아니 마법이 사용 되더라도 마법진으로부터 반구를 형성해서 그 안에 있는 것을 소멸 시키는 마법이라 안 통한다는 거야. 우리가 갇힌 반구보다 크게 그릴 수도 없거니와 우리가 서있을 곳도 없잖아.”
 “그렇군요……. 아저씨.”
 “응?”
 “여기도 막혔네요.”
 소년이 자신이 판 땅굴의 천장을 두드리며 말했다. 괴물은 그들을 돔 형태에 가두고 나서 그 돔 주변으로 넓게 초록 상자의 땅을 만들어 버렸다.
 “어쩌죠.”
 “일단 나와라.”
 그렇게 소년은 땅굴 밖으로, 돔의 안으로 나왔고 둘은 굴 주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쩌죠.”
 “나갈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닌 것 같아. 문제는 나가서.”
 “나가서요?”
 “나가서 저 놈을 어떻게 쓰러트리느냐가 문제지.”
 “그렇군요.”
 “상자를 소환하는데 짧지만 시간이 걸리는걸 확인했어. 그래서 우리랑 거리를 두고 싸운 것 같아. 별다른 공격 기술은 없는 것 같고.”
 “그럼?”
 “내가 시선을 끄는 동안 네가 육탄전을 해줘야겠다.”
 “알겠어요. 그런데 어떻게 나가시겠다는 거죠?”
 “따라와봐.”
 아저씨는 벽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갔다.
 “이거 보여?”
 그가 손으로 가르킨 곳에는 작은 곡선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뭐죠?”
 “아마 내가 전에 그린 마법진인 것 같아.”
 “소멸마법!”
 “그래. 성공할지는 모르겠다만. 성공하면 너부터 바로 뛰쳐나가는 거다. 알겠지?”
 “네!”
 “우리랑 먼 곳에서부터 상자를 소환한 것을 보면, 생성 과정에 방해가 있을 때는 소환이 취소되는 것 같아. 소환 마법 대부분이 그렇지만……. 아무튼, 놈과의 거리를 줄이는 게 중요해!”
 “알았어요! 졸리니까 빨리!”
 “잠깐 기다려 주문 기억 안나.”
 “주문도 필요해요?”
 “익숙하지 않은 마법은.”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마법진에 지팡이를 박았다.
 “바위에서 모래로, 세상 모든 것은 먼지로. 회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다시 해볼게.”
 그는 말을 마친 후에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우자 마법진에선 빛이 났고 돔의 형태로 초록색 상자들이 사라졌다.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은 상자들은 모두 사라지고 드디어 자연광을 육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달려!”
 아저씨가 소리쳤다.
 소년은 아저씨가 만든 개구멍을 민첩하게 기어 빠져나간 후 주위를 둘러 보았다. 엄청나게 넓은 초록색 상자들이 대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소름이 끼치는군.’
 그는 잡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어디로 간 거지?”
 아저씨가 낑낑대며 겨우 상반신 만을 뺐을 때였다.
 “위다! 돔 위에 있어!”
 소년은 재빨리 위로 뛰어올라갔다. 정 육면체로 이루어진 돔의 표면에는 잡을 수 있는 틈이 많았기 때문에 신체능력이 뛰어난 소년은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거의 정상에 다다랐을 때 그는 다시 한번 더 뛰어 오르며 검을 꺼냈다. 녹색 괴물은 놀라 허겁지겁 상자를 소환했지만 소년이 검이 더 빨랐고 상자를 소환하려는 그의 팔을 살짝 밸 수 있었다. 괴물은 넘어지듯 뒤로 물러났다. 그의 팔에선 붉은색 피가 나왔다. 소년은 지체하지 않고 다시 한번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괴물도 품에 차고 있던 검을 꺼내 응수했으나 역부족 이었다. 소년의 빠른 움직임과 강한 힘을 혼자 버텨낼 수는 없었다.
 ‘어려보이는데 어떻게 된 거지? 지혜님과 같은 부류의 인간인가!?’
 검이 서로 부딪쳤을 때 소년은 강한 힘으로 그의 자세를 무너트렸고 얼굴에 강한 발차기를 날렸다.
 “앗!”
 그의 녹색 피부가 벗겨지고 붉게 달아오른 그의 볼이 드러났다.
 “인간이었나?!”
 “무슨 상관이야!”
 그는 소년의 발을 향해 손을 펼쳤다. 그러자 녹색 상자가 사라졌다. 그러나 소년은 당황하지 않고 그에게 달려들어 그를 넘어뜨렸다. 그리고 목에 칼을 대었다. 그는 완전히 제압당한 상태였다.
 “왜? 왜 괴물 행세를 한 거지? 그 눈도 가짜인가? 어떻게 같은 사람을 배신하고…….”
 “눈은 진짜야. 그리고 다들 나를 괴물이라 불렀는데 무슨 괴물 행세를 했다는 거냐. 어서 죽여라.”
 “무슨 말이야?”
 “같은 사람이라고 했나? 웃기지 마라.”
 “무슨 말인지 정확히 설명해.”
 소년은 좀더 칼을 가깝게 댔다. 제압당한 그는 목을 통해 칼의 서늘한 기운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비굴하지 않게 죽을 생각을 한 그였지만 이렇게 가까이 온 죽음에 긴장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온 몸에서 식은 땀이 흐르고 그로 인해 녹색 염색 약이 벗겨지고 있어 약간 더러운 느낌을 주고 있었다. 원래 이렇게 적극적으로 행동하던 김제신이 아니었지만, 전투로 몸이 달아오르기도 했고 이 세계에 대한 궁금증과 불안감을 해소하기를 전부터 간절히 바랐기 때문에 지금 그를 말릴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냥 흔한 이야기지.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 탓을 하며 쫓겨나기를 반복하다 집이 불타고 가족이 죽는.”
 “!”
 “’같은 인간’이라 했나? 그렇게 보였다면 당장 나를 죽여도 좋다.”
 소년은 망설여졌다. 그렇게 어색하고 떨리는 대치 국면은 계속되었다.
 “흥.”
 괴물이 한숨을 쉬며 소년의 주변에 상자들을 소환했다. 소년은 허우적거리며 상자를 없앴지만 너무 많은 수가 소환되고 있어 감당이 힘들었다. 결국 소년은 그의 심장에 칼을 집어 넣었다. 그는 붉은 피를 토해내며 죽었고 모든 상자들이 사라졌다. 소년은 그의 시체와 함께 추락했다.
 “끝났다.”
 소년이 쓰러지며 말했다. 그는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무슨 일이지?”
 위의 상황을 알 수 없었던 아저씨가 말했다. 모든 녹색 상자들은 사라지고 소년이 떨어진 곳에는 먼지가 크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는 그곳으로 접근했다. 먼지가 잦아들길 기다렸고 그 모습을 확인했다. 소년의 승리였다.
 ‘이를 어쩐다. 예상외로 쉽게 적의 본거지를 날렸지만, 사방에 퍼져있는 괴물이 지원을 올 수도 있고 존재 여부를 몰랐던 괴물 부대가 주변을 수색할 수도 있다. 나도 잠시나마 자긴 자야 하는데…….’
 그는 고민하다 제신을 엎고 구덩이로 갔다. 그 곳에 불의 마법으로 구덩이를 파고 식혀 작은 동굴을 만들었다. 미끄러지듯 떨어지던 둘은 골프공처럼 그 구멍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운에 맡기는 수 밖에.’
 그는 소년을 누이고 서둘러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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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클레어^^ 2012.05.26 07:04
    어쩌면 판타지 세계에서 싸우는 것이 현실일려나요?
    (설마...)
  • profile
    윤주[尹主] 2012.05.27 02:53
    현실 파트와 꿈 파트를 왔다갔다하니까, 게임 판타지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ㅎ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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