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02 09:11

시크릿 Secret

조회 수 353 추천 수 2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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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진이 안 좋은 날이란 게 있다. 생일날 야근이라던가, 가벼운 접촉사고에 목이 삔다거나, 갑자기 일복이 터져서 혼자 늦은 점심 먹게 되거나 할 때가 그렇다. 더군다나 이런 일들이 한둘도 아니고 하루에도 여러 번, 연이어 일어나면 그 기분이란 게 과연 어떨까?



 "너 오늘 일진 참 장난 아니다."



 목 언저리에 파스를 붙이고, 눈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을 늘어뜨린 동기 친구를 보며 진연이 뱉은 말이었다. 친구는 멀뚱히 앉아 토끼같이 벌게진 눈으로 진연을 바라보았다. 동그랗게 뜬 눈망울이 촉촉히 젖은 게, 삼 년 절친 앞에서 울음보를 터뜨릴지 말지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진연이 그녀와 함께 회사 근처 식당에 간 건 오후 두 시가 다 되어서였다. 입사 삼년 차 동기 둘이, 나란히 일에 치이고 상사 눈치에 치여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가다 회사 로비에서 딱 마주쳤을 때, 두 사람은 서로 반갑고 또 씁쓸해 잠시 동안 말없이 상대방 얼굴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더랬다.



 "진짜, 되는 일 하나도 없고...일이고 뭐고 확 그냥 던져버리고 나몰라라 하고 싶은데."



 아서라, 아서. 울먹거리는 친구를 애써 달래면서도 진연은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사실 위로받고 싶은 건 난데. 친구 몰골이 말이 아니라 차마 입 밖으로 뱉지는 못하는 울분을 삭히고 또 삭히기만 했다. 이럴 때면 꼭 시골에 있는 엄마 생각이 났다.


 


 * * *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진연에게 엄마 윤주는 항상 친근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고민이나 좀처럼 남에게 하기 힘든 얘기도 진연은 가장 먼저 엄마에게 털어놓곤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진지하게 듣고 가끔은 유쾌한, 또 어떤 때는 엉뚱한 해결책을 내주곤 했다. 진연에게 엄마는 부모이면서 동시에 친한 친구기도 했다.



 엄마 성은 윤 씨에 이름은 주인 주(主)를 외자로 쓴다. 엄마다운 이름이라고 진연은 항상 생각해왔다.


 


 * * *


 


 "오늘 야근 할거면 저녁 때도 만날래? 그래도 생일인데 맛있는 거 먹어야지?"



 수저를 드는 둥 마는 둥 하는 친구에게 진연은 위로 겸 제안을 꺼냈다. 빠듯한 지갑 사정이야 서로 아는 거고, 그렇잖아도 지방 도시에서 돈쓸 때 딱히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 말만으로도 친구는 다소 위안을 받은 모양이었다.



 "빈말이라도 고맙다, 얘."
 "나 빈말 아냐? 너 저녁 먹으러 갈 때 꼭 전화하기다. 안그럼 나 무작정 로비에 서서 기다릴 거니까."
 "가스나, 말을 해도 그렇게 사람 겁주는 식이냐?"



 친구는 피식 웃더니 한결 기분이 나아진 얼굴로 수저를 들었다. 진연은 빙그레 웃더니 자기도 역시 한 숟갈 뜨려고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그 순간 핸드백에 넣어둔 휴대폰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떨었다.



 "야, 너 휴대폰 울린다?"
 "냅둬, 문자겠지."
 "아냐, 계속 울리는데? 전화면 빨리 받아봐."



 이 망할 회사. 진연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최소한 밥 먹을 시간만큼은 보장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눈치 없이 전화를 건 게 과연 누굴까? 낙지머리 강 부장? 철부지같은 민 팀장? 혹시 몇달 전 들어온 후배인가?



  그러나 휴대폰 액정에 뜬 번호는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집, 단 한 글자로 등록된 낯익은 번호가 반짝 빛을 내며 받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있는 건 단 한사람, 엄마 윤주 뿐이니 틀림없이 그녀 전화이리라. 진연은 좀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전화를 받았다. 엄마 쪽에서 먼저 진연에게 전화를 걸어온 적은 흔치 않았다.



 "여보세요."



 예상은 또 한 번 빗나갔다. 전화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50대 중반 아줌마 것이 아니라 다소 톤이 높은 젊은 여자 것이었다. 20대 정도 되려나, 목소리만으로 판단하기에 상대는 진연과 거의 비슷한 나이대인 듯했다.



 "이거 진연이 휴대폰이죠?"



 그럼에도 자신을 허물없이 '진연이'라고 부르는 상대에 대해 진연은 심한 거부감을 느꼈다. 적어도 그녀 기억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목소리였다. 친구들 중에도, 친척들 중에도 상대와 비슷한 음색을 가진 사람은 없었던 듯했다. 진연은 불쾌감을 일단 감추고 침착하게 되물었다. 본인인데요, 누구세요?



 "뭐야, 진연이 맞구나. 난 또 잘못 건 줄 알았지."



 여전히 상대는 묘하게 친한 척을 해왔다. 진연은 다시 한 번 전화가 걸려온 번호를 확인했다. 액정에 찍힌 번호는 분명 집 전화번호가 맞았다.



 진연 얼굴에 뜬 표정이 이상해 보였던지 친구도 수저를 놓고 입모양으로 왜, 하고 물어왔다. 진연은 신경쓰지 말라는 뜻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전화를 다시 받아 상대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누구세요?



 상대는 대놓고 진연이 던진 질문을 무시했다. 진연은 거의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머릿속으로는 온갖 할 말 못할 말을 하나하나 상기하면서 상대에게 던질 적절한 말을 고르고 있었다. 아마 진연이 상대방에게 던질 욕설이 한 바가지는 되었을 것이다. 전화 건너편 그녀가 난데없는 폭탄 선언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건 필요없고, 너 얘기 못들었지? 너네 엄마 돌아가신 거."



 갑작스런 말에 진연은 삽시간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기가 죽었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한참 동안 아무 말 못하고 전화기만 귀에 대고 있다가, 상대방이 여보세요, 를 연달아 외쳐대는 통에 간신히 정신이 들었다. 마음을 다잡은 진연은 곧바로 상대에게 질문을 던졌다. 언제쯤이었죠? 돌아가신 게.



 "어제, 아니다. 오늘 새벽 세 시쯤? 내가 확인한 건 그 시간때였어. 모르지, 또 그 전에 죽었는지는. 하도 조용히 있길래 잠든 줄 알았대두."



 그 밖에도 여자가 온갖 쓸데없는 장황한 얘기를 떠들어댄 것 같은데, 정작 진연에게는 한 마디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그녀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엄마의 죽음, 자기가 해야할 일들. 일단 휴가계를 쓰고, 가장 빠른 시외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거야. 버스를 갈아타야 되는데, 두 번이었던가 세 번이었던가? 생전에 마련해둔 장지라도 따로 있었으려나? 장례는 또 어떻게 치루지?



 그 동안에도 쉬지 않고 떠들던 여자는 마지막으로 몇 마디인가를 덧붙였다. 다행이도 그것만큼은 진연도 제대로 집중해 들었다.



 "암튼 내려오렴. 윤주 마지막 가는 길 지켜볼 사람 지금 당장은 너밖에 없잖니, 가족 중에선."



 아무렴, 내려 가야지. 진연은 대충 대답해두고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친구에게 진연은 먼저 무덤덤하게 사과했다. 미안해.



 "미안, 오늘 저녁은 같이 못 먹을거 같네."
 "왜? 방금 전화 때문에?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대?"



 이상한 기분이었다. 펑펑 울기라도 해야 될 거 같은데 눈물은커녕 오히려 겨울 바람에 눈이 건조해 시릴 지경이었다. TV에서 보면,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은 이럴 때 정신없이 뛰쳐나갈 텐데, 진연 자신은 너무나도 차분했다. 조금 막막하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그거야 누구라도 이런 일을 겪으면 그렇게 느낄 테니까.



 때문에 진연은 평소와 다름없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감동 없는 어조로,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 친구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엄마가 죽었대. 나 내려가봐야 할까봐.



 대답을 듣고 도리어 놀란 건 친구 쪽이었다. 세상에, 탄식을 하고는 말을 잇지 못하는 친구를 보면서 진연은 농담처럼 한 마디를 던졌다. 오늘 일진 정말 아니다, 그치?



 친구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진연은 휴대폰을 다시 백 안에 집어넣은 후, 다시 수저를 들어 몇 숟갈인가 밥을 입에 떠 넣었다. 그러고는 친구에게 사과하며 먼저 일어났다.



 "계산은 내가 할께. 천천히 먹고 가. 나 때문에 괜히 급하게 일어날 거 없잖아."
 "아냐, 다 먹었어. 나도 지금 나가."



 화들짝 놀라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 그녀를 보며 진연은 웃었다. 평소처럼 카운터 앞에 가서 계산이요, 하고 말하는 그녀 목소리는 당황감이나 불안감, 슬픔 따위는 조금도 섞여있지 않았다.


 


=====================================================================================================================


 샘플로 프롤로그만...


 열심히 모으고 고치는 중이니까, 다음 화 기대해 주세요~


 


 참고로 그렇겐 전혀 안 보이시겠지만....일단 판타지입니다. 퓨전인지 판타지인지는 헷갈리긴 하지만, 일반소설은 아니에요;;;

?
  • profile
    시우처럼 2010.12.02 09:11
    드디어 시작이군요.
    살짜꿍 내용을 알긴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어떻게 진행돼 나갈지 궁금하네요.

    역시 윤주고 진연이고 잘 아는 인물이 나와서 인지 왠지모를 친근감도 들고요. ㅋ
  • profile
    윤주[尹主] 2010.12.02 14:41
    끝을 아는 소설처럼 재미없는 것도 없겠지만서도...지난 번 썼던 전개에 약간 변화를 줘봤습니다. 그게 보기 괜찮으실지는 모르겠지만요^^
  • profile
    클레어^^ 2010.12.02 09:37
    헉! 그, 그럼... 소설 속의 님이 저세상으로?
    진연이란 인물... 역시 고교 동창 이름과 같아서 그런지, 아니면 제 소설의 주인공 이름과 비슷해서 그런지 보자마자 조금 깜짝 놀랐습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0.12.02 14:44
    저도 클레어님 글 볼때마다 가끔 깜짝깜짝 놀라요. 진연하고 진영하고 그렇게 비슷해 보여서;;
    앞으로도 그렇고 제가 본명이건 별명이건 소설 속 주인공으로 등장하진 않을 거에요. 사실 지금 저것만으로도 좀 얼굴팔리는 것같아 화끈대내요;;
  • profile
    ♀미니♂ban 2010.12.03 04:10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윤주님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ㅠㅠ
  • profile
    윤주[尹主] 2010.12.03 05:05
    저 안죽었어요!!
    ...근데 참 뭐라 대꾸하기 난감하네요;;; 소설 속 인물은 죽은 게 맞지만서도 저는 아니고....;;
  • profile
    Yes-Man 2011.01.11 21:24

    여기선 윤주님이 엄마라니.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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