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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당은 흔적 없이 깨끗해졌다. 그 한바탕 싸움 이후 어느 누구 손도 타지 않고서 절로 그렇게 되었다. 담장 아래 텃밭에도, 대청 위에도 뭔가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났었단 증거는 찾을 길이 없어졌다. 심지어 반려 여자가 휘두르던 그 이상한 칼마저 싸움이 끝난 직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 칼이 어디서 나왔고, 결국 어디로 사라졌는지 진연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비현실적인 일이라면 하루 종일 진력이 나도록 본 후였기 때문에, 진연은 이 모든 것 어느 하나에도 딴죽 걸지 않고 안방에서 반려 여자가 차려주는 저녁 밥상을 잠자코 받았다.

 식기 부딪치는 소리 이외엔 어떠한 소음도 나지 않았다. 심지어 그 마녀조차 뭔가를 생각하기에 골몰했다. 밥공기를 절반쯤이나 비웠을 때 진연은 수저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청마루로 나가자 마루 끝에 걸터앉은 바리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대들보에 어깨를 기댄 채 달빛 흥건한 마당을 멍하니 내려 보고 있었다. 진연이 방에서 나온 건 깨닫지도 못한 듯했다. 그 와중에 진연은 바리가 무심코 흘린 혼잣말을 의도치 않게 엿들었다.



 "세상 전체를 인질로 삼고 뭘 협상할 생각이죠, 당신은?"



 누구를 향한 말이었을까? 진연은 제자리에 멈춰선 채 그녀를 보았다. 돌연 바리는 배를 움켜 안고 앞으로 쓰러질 듯 몸을 굽혔다. 깜짝 놀란 진연이 다가가 그녀를 돌봤다.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괜찮아요. 아무것도 아녜요."



 달빛에 비친 바리 이마엔 식은땀이 흥건했다. 진연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도리어 당사자인 바리가 차분하게 그녀를 안심시켰다.



 "정말 아무것도 아녜요. 이건 실제 통증도 아니니까요. 그냥 환상통일 뿐인 걸요."

 "환상 통이라고?"



 네, 그래요. 바리는 짧게 대답하곤 그 뒤에 이어질 말을 아꼈다. 그냥 평범한 환상통일 뿐이죠. 텅 빈 자궁으로부터 전해져오는 가짜 통증, 자신이 이름 갖기 전, 멋대로 자라나 떨어져 나간 핏덩이를 빼고는 단 한 번도 무언가 바리 자신 아닌 무언가를 받아들여 품어본 적 없는 바로 그 자궁에서 말예요. 한 때는 제 것 아닌 심장 고동이 전해져오기도 했지만, 때때로 자기 아닌 이물질이 화풀이하듯 두들기는 발길질이 온 몸으로 전해져 오기도 했지만. 그건 전부 옛날 얘기일 뿐인걸요.

 이건 저주야. 처음 통증을 느꼈을 때 바리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 통증은 분명 저주로부터 온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제멋대로 버린 자식이 원한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어미에게 어필하고 있는 거다. 그렇다면야,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바리는 납득했다. 이것이 자식의 원한이라면 야 온전히 제 혼자서 짊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다른 누군가에게, 예컨대 저 진연 같은 이에게 고통을 나누어 짊어지게 할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심성이 비뚤어져 남들에게 원한만 잔뜩 사는 자식인걸.

 그건 어머니로서 자신이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바리는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고 또 되뇌었다.



 마녀는 그들의 적을 보고 '사랑하는 딸'이라고 불렀다.



 "아까 그 그림자들이 어릴 적부터 거두어 돌보고 키운 녀석이라고 하더라? 지금은 뭐, 그놈들 왕 같은 노릇을 하고 있지만."

 "……."

 "아무도 궁금하지 않아?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어서 저 시커먼 녀석들 품에서 자랐는지 말이야."



 마녀가 다시금 자리에 모여 앉은 모두를 떠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반려 여자는 무표정하게 그녀 곁에 앉아 있을 뿐이었고, 바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방바닥만을 쳐다보았다. 진연은 그런 녀석 속사정 따위 어떻든 관계없단 식이었다. 마녀는 한숨을 푹 쉬었다. 누가 보기에도 지나치게 과장된 행동이었다.



 "이러면 재미없는데. 남이 기껏 얘기하는 거 좀 들어보려는 시늉이라도 하면 안 돼?"

 "지금은 그냥 본론만 얘기하죠."



 진연이 뭔가 말하기 전에, 뜻밖에도 바리가 먼저 나서 마녀에게 불만을 표시했다. 마녀는 바리를 향해 눈웃음쳤다. 마치 그녀와 모종의 동업자라도 되는 듯 은밀한 시선이었다.



 "네가 그렇다면야 이번엔 그냥 넘어갈까?"



 바리는 다시 고개를 숙인 채 마녀가 입을 열기만 기다렸다. 마녀는 세 사람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식사를 마치고 반려 여자가 상을 내간 후에, 마녀는 돌연 마루에 있던 바리와 진연을 찾았다.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솔직히 마녀답지 않다고 진연은 생각했다. 그녀라면 좀 더, 남들 얘기는 듣지도 않고 아무 계획도 없이 내키는 대로 뛰쳐나갈 타입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자리에 앉은 후 줄곧 입을 열고 떠드는 건 마녀 혼자뿐이었다. 얘기를 나누기는 개뿔, 이건 그냥 일방적인 통보나 다름없잖아. 속으론 불만을 잔뜩 품고 있으면서도 진연은 섣부르게 나서지 않았다. 아직 그녀는 그들 세상, 상식이라곤 통하지도 않는 세계에 대해선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처음에 마녀는 '사랑하는 딸'이 그들을 공격한 적의 배후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딸'이 무언지를 진연이 몰랐기 때문에, 마녀는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설명해 주었다. 거드름피운 것에 비하면 마녀도 '사랑하는 딸'에 대해 아는 바는 거의 없었다. 아까 낮에 집에 쳐들어온 그것들과 같은 그림자들이 사는 세상이 있고 '사랑하는 딸'은 그들의 우두머리라는 것, 마녀 자신도 최근 잠깐 동안 그녀를 만났을 뿐 어떤 인물인지는 잘 모른다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사랑하는 딸'이 가진 출생의 비밀 얘기는 마녀가 설명 끝에 덧붙인 사족 같은 얘기였다.

 아무튼, 마녀는 말을 이었다.



 "녀석들은 우리를 공격해왔어. 아마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습격할 거라고 생각해."

 "뭘 노리는 거라고 생각하죠, 당신은?"

 "물론 진연이지. '세계의 왕좌'를 독차지하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될 경쟁자니까."



 그 말에 진연은 흠칫 몸을 떨었다. 바리는 마녀 말에 반박했다.



 "그건 너무 단순한 이유 같아요."

 "뭐가?"

 "애당초 진연 씨는 '왕좌'를 차지할 생각조차 없었어요. 아니, 그 존재조차 몰랐죠. 그런데 어떻게 경쟁자가 된다는 말예요?"

 "'왕좌'는 스스로 주인을 선택해. 너도 알잖아?"



 엄마 윤주가 죽었으니, '왕좌'는 자연스레 새 주인을 찾아 움직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유력한 후보자는 윤주가 낳고 기른 딸인 진연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진연이 살아있는 한 '왕좌'는 결국 그녀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게 마녀 주장이었다.

 이에 대한 바리 반박은 다음과 같았다.



 "'왕좌'가 자유로운 몸이라면 그렇겠죠."

 "그게 무슨 소리야?"

 "생각해봐요. 윤주 씨 죽은 지 벌써 며칠이나 흘렀어요. '왕좌'가 주인을 선택할 수 있는 처지였다면, 지금쯤은 진연 씨 앞에 나타나고도 남았어야죠. 하지만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가능성 아녜요?"



 이미 다른 주인을 선택했거나, 혹은 자유로운 몸이 아니거나.



 "'왕좌'가 다른 주인을 찾았을까?"

 "그랬다면 누구보다 당신은 눈치 챘겠죠.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당신이라면, 새 주인 의지대로 세상이 변하는 걸 못 느낄 리 없으니까요."



 자색 하늘의 주인이라는 이름은 그런 의미 아닌가. 바리가 구태여 보충설명하지 않아도 마녀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답은 뻔했다. '왕좌'는 누군가가 붙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생각이란 건, 그 때문이었어?"

 "네. 돌아가는 정황상, '왕좌'를 빼앗은 건 '사랑하는 딸' 그녀겠죠. 그렇게 따지면 이상하지 않아요? '사랑하는 딸'은 이미 '왕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걸 사용하지도 않았고, 애꿎은 진연 씨를 죽이려 혈안이 돼 있다는 뜻이잖아요."



 대답하면서 바리는 대화를 나누는 것도 슬슬 한계라는 걸 직감했다. 여태껏 잘 참고 들어주던 마녀는 바리 말이 끝나도 딱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우물거렸고, 얼굴은 달아오른 철물처럼 벌게졌다.



 "아! 역시 이런 건 나한테 안 맞아! 지루해, 지루하다고!"

 "제법 잘 참았네요. 마녀 씨치곤."

 "이렇게 된 이상, 당장에라도 뛰쳐나가야겠어! 가서, 신부고 사랑하는 딸이고 간에 전부 때려눕히고 왕좌를 되찾아버리는 거야!"

 "뭐라고?"



 마녀 말을 듣고 진연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바리는 얼굴을 손으로 짚었다. 시커멓기론 그림자들 뒤지지 않는 저 어릿광대가 지금 대체 뭐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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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보다 하루 정도 늦은 것같네요;;


 그저께였나요, 비실비실대던 컴퓨터가 드디어 사망했습니다;;

 아직 고칠 수 있는지 알아보진 않은 상태인데요, 월요일에 한번 알아봐야죠;


 그래서, 지금은 남의 컴 빌려쓰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럴지는 모르겠습니다만...암튼 두고 봐야죠;;

?
  • profile
    클레어^^ 2011.03.28 01:00

    흐음... 컴퓨터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점점 이야기가 미궁속으로 빠져드네요...;; 설마 이러다 제3의 인물이 나오는 건가요?

  • profile
    윤주[尹主] 2011.03.28 03:56

     아마 지금껏 언급된 인물들 이상으론 다른 인물이 더 나오진 않을 것같네요;

     컴퓨터는 뭐, 월요일날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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