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12 18:20

이그드라실! 18

조회 수 505 추천 수 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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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이상한 모습이다. 선예와 여신이 싸우는 걸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바로 앞에서 큰 불이 일어나 서로 맞부딪치고, 불씨가 사방으로 튀어나가기까지 하는데도 전혀 주위로 옮겨붙질 않았다. 타오르고 있는 건 오로지 나와 선예뿐이었다. 간혹 선예나 내가 뿜어낸 불길이 담장이나 바닥을 그을리게 했을 뿐이다. 어째서일까?

 궁금증은 여신이 선예에게 한 말로 풀렸다.


 "불은 감정이다. 감정은 네가 보고 듣는 것, 그러니까 네가 관심 갖는 것에만 전해지는 거지. 그 시커먼 불은 네 것이니, 네가 관심 없는 것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네게 가장 크게 상처입은 이 남자야말로 네가 가장 크게 관심 갖는 상대란 거지. 그렇지 않느냐?"

 "어째서 오빠가 상처입죠? 전 그냥 좋아했을 뿐인데."

 "그건 너희 감정이 본래 거인의 불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세계를 삼키는 커다란 불에서 유래했기에 그것은, 마치 사람이 온기를 찾듯 상대를 끌어당기기도 하지만 너무 가까이 다가간 상대를 데이게도 한다. 한 번 뭔가에 빠지면 주체할 수 없이 거기에 타오르다가도, 계기가 있으면 쉽게 사그라들기도 한다. 후후, 인간은 재미있는 존재다. 썩어 없어질 육신 안에 신의 불꽃이 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하면서 여신은 말을 이었다.


 "본의 아니게 타오른 모양이다만 슬슬 가라앉히지 않겠느냐? 이대로라면 이 남자만 아니라 세계가 전부 네 불길에 타 없어질 기세다."

 "하지만 전 이걸 어떻게 사그라들게 하는지 몰라요. 어느날 갑자기 타오른 걸요?"

 "귀찮은데....그냥 너희 이대로 사귀어 버리는 게 어떠냐?"


 격렬히 항변하고 싶지만 손가락 하나도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여신이 내게서 이끌어낸 불꽃이 완전히 내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선예가 입을 열었다.


 "어쩌면, 선배에게 키스 받으면 될지도 몰라요."

 "키스라고?"

 "선배에겐 몇 번씩이나 말했다구요! 사귈 수 있다면 그것도 좋지만, 당장은 그, 키스만이라도..."

 "하하하, 들었느냐? 그러니 내키지 않더라도 지금은 네가 희생을 하거라. 인류를 위해서니라."

 '내키지 않고 자시고 이래서야 거부권도 없잖아! 꼼짝도 못하겠는데!'


 속으로 불평을 토해냈지만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선예와 사귄다고? 감정이 조금 지나쳤을 뿐 본래 좋은 애니까, 사귀는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 그건 오랫동안 이웃해온 나니까 누구보다도 잘 안다. 남 잘 챙겨주고, 애교도 있고, 누구에게나 친절하다. 그게 내가 아는 선예의 본모습이다. 혹시나 사귀는 사람이 생기면, 좋은 여친이 되리라고 한 게 빈말은 아니다. 그러니까,

 사귄다면 문제는 선예에게가 아니라, 전적으로 나에게 있는 거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믿지 않고 살았다. 관심주지 않고 살았다. 나도 모르는 누군가에 상처입힌 적도 있었을 거고, 아는 사람들에게도 나도 모르게 피해 입힌 적도 있었을 거다. 선예와 사귄다고, 이런 내가 저 애에게 상처입히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을까?

 아니, 분명히 상처 입힐 것이다. 내 안에서 일어난 불꽃을 보면서 나는 확신했다. 여신은 이것을 질투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게 누구에 대한 질투인지, 누구를 향한 질투인지는 알지 못할 것이다. 지금 내가 선예를 사귄데도 그것은 시늉이 될 뿐이지, 정말 선예만을 사랑하고 아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면 내가 진짜 마음에 두는 사람은...


 "네 소원을 들어주마. 눈을 감거라."


 여신이 말하자 선예는 자기 눈을 감았다. 검은 불꽃은 많이 사그라든 것처럼 보였다. 눈을 감으면서 어느 정도 마음이 차분해진 건지도 모른다. 선예가 자기 말에 순순히 따르는 걸 본 여신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곤 히죽 웃었다. 어차피 내게 거부할 방도는 없다. 어차피 진작 여신에게 멋대로 쓰라고 맞긴 몸, 좋을 대로 하라지.

 완전히 체념한 것을 여신도 안 모양이었다. 여신은 둥실 떠올라 선예 오른편 어깨에 손을 얹고 섰다. 그리고 다음 순간, 별안간 여신은 선예에게 입을 맞췄다.


 "!!"

 '야!'


 깜짝 놀란 선예가 눈을 크게 떴다. 여신은 길게 키스하곤 선예가 몸을 밀쳐내고 나서야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장난꾸러기 여신에게 선예는 화를 냈다.


 "어쩔 거에요! 세상에세상에세상에세상에세상에!! 돌려줘요! 첫 키스였다고요!"

 "진정해라. 아무리 봐도 셈에 들어갈 수 없는 거 아니냐? 난 여자고, 게다가 인간도 아니니까 말이다."


 선예의 반응이 재미있단 듯 여신은 깔깔대며 웃었다. 선예는 발끈해 여신에게 손을 뻗었지만, 어째선지 그녀를 붙잡진 못했다.


 "어?"


 자기 몸이 서서히 옆으로 기울어 눕는단 사실에 선예는 당황해했다. 그녀가 반문하기 전, 이미 선예 몸은 바닥에 완전히 드러누운 상태가 되어버렸다. 무언가 말로 뱉기도 전 선예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내 몸이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간 것도 거의 그 순간이었다.


 "선예야!"


 몸이 자유로워지자마자 선예에게 달려갔다. 검은 불꽃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선예가 숨을 쉬고 있단 걸 확인한 끝에야 나는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곧바로 이그드라실 여신을 찾았다.


 "너 진짜!"

 "그냥 진정시킨 것 뿐이다. 너도 키스같은 거 하고 싶진 않았을 거 아니냐."

 "그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건!"

 "꿈이라고 생각하겠지. 이것뿐만 아니라 지난 약 3일간 기억 모두를 말이다."

 "지난 3일간?"


 여신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허공에 떠 있는 그녀 몸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나오는 걸 보면서, 뭔가 범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려는가 했을 뿐이다.

 그 상태로 여신은 내게 말했다.


 "3일간 그 애와 관련해 일어난 일들, 사람들의 기억들 전부를 수정해 주겠단 거다. 이대로라면 그 애가 불쌍하지 않느냐."

 "잠깐! 설마 이대로 사라지려는 건 아니지?"


 문득 생각이 미쳐 물었더니, 비웃음이 되돌아왔다.


 "네 녀석은 바보냐? 안심해라. 네가 믿는 한, 나는 계속 여기 있을 테니까."


 여신이 말을 끝마친 순간, 빛이 폭풍처럼 뿜어져나와 사방을 하얗게 바꾸어 놓았다. 나는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되어 손에 쥔 선예의 팔을 꽉 움켜쥐었다. 아무것도 구분되지 않는 빛 속에서, 오로지 그 감각만이 유일하게 이게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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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 내는 건 참 어렵군요...
 다음 화가 확실하게 완결입니다. 별 일 없으면 오늘내일 중으로 올릴 수 있을 거에요.
 만화 풍으로, 아기자기하게 끝내려고 계획중입니다만 과연 결과물이 어떨지는;;;

 그럼 마지막 화 올릴때 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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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클레어^^ 2012.05.13 04:14
    오호~. 끝이라고요?
    그럼 앞으로 선예가 깨어나면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기억 못하는 걸까요?
  • profile
    윤주[尹主] 2012.05.13 07:07
    그건 또 다음 화에서 나올 겁니다 ㅎ
    확실한 건, 배드 엔딩은 아닐 거란 거죠^^;
  • ?
    乾天HaNeuL 2012.05.14 22:14
    응? 꿈이었습니다. 아... 개꿈?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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