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11 17:25

이그드라실! 17화

조회 수 695 추천 수 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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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예 몸 전체에서 큰 불길이 일었다. 선예 자신을 심지삼아 타오르듯, 불길은 그녀 온 몸을 휘감고 솟구쳐 올랐다. 그 못지않게 선예의 두 눈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선배, 그 여자앤 누구에요?"

 "아, 얘말야? 설명하자니 난감한데,"

 "호오, 나를 볼 수 있는 건가? 제법 불꽃이 많이 격양된 모양이구나."

 "뭐야, 너 원래 다른 사람 눈에 안 보이는 거였어?!"

 "당연한 게 아니냐? 안 그랬다면 진작에 나에 대해 모두가 알았겠지."

 "그런 설정 난 들어본 적도 없다고!"

 "저기 선배, 두 분 너무 사이 좋으신 거 아녜요?"


 아차 싶었을 땐 이미 불덩어리가 쏘아진 후였다. 나와 여신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려 불꽃을 피했다. 불길은 아슬아슬하게 둘 사이를 지나 담벼락에 부딪쳐 사라졌다. 위기를 넘기자마자 여신이 내게 소리쳤다.


 "좀 제멋대로 쓸 테니까 참고 있거라!"


 두근, 하면서 심장이 크게 한 번 뛰었다. 그와 동시에 격심한 통증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몸 속 깊은 곳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스멀스멀 기어나오려는 듯했다. 그것은 내 안에 있었지만, 오히려 나보다 더 큰 무엇이었다. 그것이 나를 완전히 집어삼켜버릴지도 모른다는 걸 나는 직감했다. 괴로움에 몸을 떨면서, 나는 여신을 불렀다.


 "이그드라실!"

 "아직 괜찮다! 네가 그 정도로 무너질 리 없다구!"


 크윽, 하고 작게 신음을 뱉었다. 선예 앞이라 애써 참아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마음 속 불씨를 꺼낸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나는 고개를 들어 선예를 보았다. 그렇다면 선예는, 저 커다란 불길을 밖으로 꺼낼 때까지 얼마나 괴로워했던 걸까?

 언뜻 보니 선예는 여신과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그저 평범한 여자애같기만 하다.


 "당신, 그만 둬요! 오빠가 힘들어하는 게 안 보여요!"

 "하핫, 나 때문인가? 저 녀석이 힘들어하는 게?"

 "그럼 누구 때문이겠어요!"

 "이기적인 발상이로군. 역시 수트르의 불을 꺼낸 여자다워."

 "그런 거 전 몰라요! 빨리 오빠나 원래대로 해 주란 말예요!"

 "원래대로 하면? 얌전히 네 손에 죽는 걸 보아 넘기라는 거냐?"

 "그런 건..."

 "네 역겨운 사랑 노래는 잘 들었다. 아무리 불씨에 과열되었다 해도 네 집착은 이상하다 싶을 정도야. 어떠냐? 사실 전부터 죽 좋아했던 게 아니더냐?"


 그만 두라고, 여신에게 말하고 싶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 괴로움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선예는 거의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처럼 보였다. 아는 사람이 괴롭힘당하는 걸 지켜보는 건 기분나쁘고 또 가슴아픈 일이다.

 선예는 여신에게 반문했다.


 "그러는 당신은 어떻죠?"

 "뭐가 말이냐?"

 "어째서 오빠에게 붙어있는 거냐구요! 솔직히 말하자면 사심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겠죠!"

 "아니, 난 사심 없이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자다. 여신이니까 말이다."

 "인정할 수 없어. 당신 따위가 여신일 리 없어요!"

 "어째서냐? 외양 때문이냐? 너희 인간들은 부질없게도 외양에 그렇게나 집착하더구나. 네 녀석도 그렇고, 저 녀석도 그렇고."

 "아니, 외양 때문이 아녜요! 같은 여자로서 직감이라구요! 정말 누구에게도 사심 가진 적 없다면,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오빠를 지키려 하는 이유가 뭐죠? 그렇게나 마음에 들지 않아 했으면서 말예요!"

 "...너, 그걸 보고 있었냐?"

 "네, 보고 있었어요. 전부 봤어요. 당신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어떤 눈빛을 하고 오빠 얘기를 듣는지. 어째서 오빠와 싸우곤 방을 박차고 나갔는지도요. 사실 당신은 한 번 잃은 적이 있었던 게 아닌가요? 정말 사심으로 대했던 단 한 사람을 말예요!"

 "!!"


 그 얘기를 듣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어째서 중요한 순간, 나는 여신과 다투고 헤어졌던가. 그 낯선 남자 얘기를 들을 때 여신은 분명 그에 대해 회상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여신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답답하고 불편해했다. 지금이라면 그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생각이 맞다면, 그것은...

 순간 내 안에서 그 시커먼 것이 가속해 역류했다. 끓어오르는 것만 같은 그것의 기세에 나는 억누르던 비명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악!"

 "오빠!"

 "드디어 됐다!"


 라이터가 켜지듯 찰칵, 하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린 듯하다. 그 신호음과 함께 내 몸은 선예와 마찬가지로 큰 불길에 휩싸였다. 불꽃 색깔은 선예 것과는 달랐다. 선명한 선홍색을 띈 내 불꽃을 보며 이그드라실은 말했다.


 "질투의 불꽃인가. 시커먼 집착을 몰아붙이기엔 적절하겠지."

 "적당히 해 두세요!"


 선예가 검은 불길을 부려 여신을 공격했다. 하지만 내 불길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자, 검은 불길은 여신에게 흠 한 점 내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여신은 만족한 듯 웃었다.


 "하하, 보았느냐? 이 불길은 나를 지키기로 작정한 듯 하구나."

 "뭐가 그리 우습죠?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는 주제에!"

 "가지고 논다고? 천만에! 큰 불길을 잡으려면 마찬가지로 큰 불길이 필요했던 것 뿐이다. 가지고 놀 생각은 애당초 없었지."

 "당신은 정말, 사람 마음에 대해 전혀 모르는군요. 어떤 의미에서 당신은 진짜 여신인지도 모르죠. 어쨌건 인간은 아닐 테니까요."

 "할 얘기는 그것뿐이더냐?"


 여신이 손짓하자, 불길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멋대로 뿜어져 선예를 향했다. 마치 무언가가 내 안에 있던 그것을 억지로 빨아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불쾌한 기분이 엄습했지만, 어째선지 나는 한 마디도 제대로 내뱉을 수 없었다.


 "이까짓 거!"


 선예도 검은 불꽃을 부려 여신의 공격을 막았다. 여신은 잇달아 내 불길을 움직여 선예를 노렸다. 선예는 이리저리 몸을 피하며, 그 중 하나를 쳐내어 여신을 노렸다. 자기 앞으로 불길이 날아오는데도 여신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대신 여신의 바로 앞에서 무언가 불쑥 튀어나와 선예가 쳐낸 그 불길을 집어삼켰다. 내가 잘 아는, 거대한 뱀의 머리가 거기에 있었다.

 선예는 그것을 보곤 여신에게 물었다.


 "이상하잖아요. 당신은, 선배가 아니고도 저를 막을 방도가 있어요. 그런데 어째서 선배를 괴롭히는 거죠? 지금 그것, 그 뱀으로도 얼마든지 저를 막아세울 수 있을 텐데."

 "물론 그렇긴 하지."


 여신은 힐끔 내 쪽을 곁눈질하곤, 다시 선예를 보았다.


 "하지만 약속했단 말이다. 네 녀석은 구원해 주기로. 이 미드가드오름에게 붙잡혀 먹히면, 넌 두 번 다시 구원받을 수 없어. 이 녀석 끝은 헬의 지옥에 맞닿아 있지. 거기서 다시 지상으로 돌아온 건, 신과 인간을 모두 통틀어도 손에 꼽을 정도뿐이다."

 "전 당신 따위 손에 구원받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솔직하게 마음을 부딪치도록 한 게 아니더냐?"


 거기서 여신은, 내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 신호를 선예에게 보낸 듯했다. 다음 순간 선예의 얼굴이 붉게 물드는 것을 나는 간신히 놓치지 않고 보았다. 그 신호와 함께 여신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설득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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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갈수록, 인물이라던지 글 컨셉이 점점 더 세세하게 잡히는 거 같네요;
 오늘은 이쯤에서 한 번 끊습니다. 여기서 한 번에 써내려 끝내기보다, 하루 정도 쉬었다가 덧붙이는 게 더 좋은 리듬을 탈 거 같아서요 ㅎ
 결과적으로 19화에서 끝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화를 안 간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 이상은 아무래도 힘들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어찌됐건, 쓰는 사람은 재미있게 쓰고 있습니다만, 읽는 분들도 재밌게 보고 계신지 모르겠네요 ㅎ 괜찮으시다면 의견 좀 많이 남겨주세요.
 내일 또 다음 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좋은 하루 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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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乾天HaNeuL 2012.05.11 23:21
    17화까지 정주행 완료요. ㅡ.ㅡㅋ
  • profile
    윤주[尹主] 2012.05.12 06:26
    너무 빠르잖아요! 지금와 다시 죽 보니 자랑할 만한 글은 아니네요. 다 쓰고 이런저런 변화를 줘보려고요 ㅎ
  • profile
    클레어^^ 2012.05.12 08:07
    부, 불꽃 싸움...;;
    그나저나 안에서 싸우면, 불 안나나요? 아마 불나서 119 불러야 할 판일지도 모르겠는데요?
  • profile
    윤주[尹主] 2012.05.12 18:24
    ...그러게요;;
    즉흥적으로 쓰다보니 오류가 생긴 거 같네요;; 이번에 올린 화에서 대충 땜질만 해 뒀어요;

    역시나 맘 내키는데로 쓰면 이런저런 문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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