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8 17:46

이그드라실! 14화

조회 수 601 추천 수 0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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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밤 꿈을 꾸었다. 선예가 검은 불에 휩싸여 타오르는 꿈, 온 몸이 넝마주이마냥 너덜너덜해진 여신이 나오는 꿈, 그리고 내가 사람들에게서 버림받는 꿈. 모두가 나를 탓하고, 내게 책임을 물었다. 매번 나는 다른 상황에서 다른 방식으로 실패했고, 그로 인해 매번 다른 사람이 상처입고 쓰러졌다.

 꿈은 그 사람이 가진 불안을 보여준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 말대로라면, 나는 실패하는 걸 두려워하는 셈이었다. 실패해서 세계가 망해 없어지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보다, 실패해서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원망 사는 것을 두려워했다. 매번 꿈이 비극으로 끝날 때마다, 나는 미안하다란 말을 반복하며 울고 또 울었다.

 그러다 잠에서 깨었다. 아직 새벽이었는지, 주위는 여전히 어두컴컴했다. 굳이 얇디 얇은 여름용 커튼을 들춰 확인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왜 울고 있지?"


 방 한켠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울고 있다고? 눈가를 손으로 만지자, 축축한 물기가 손끝에 묻어나왔다. 여자애 앞에서, 겨우 한낯 꿈 때문에 울고 있단 건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재빨리 눈물을 훔쳤다.


 "울지 않았어."

 "믿어 주마, 그 대충 둘러댄 거짓말 같은 얘기"


 이그드라실, 장난꾸러기 여신은 히죽히죽 웃으며 내 책상 의자에 걸터 앉았다. 나는 여신을 조금 흘겨본 뒤,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어째서 그런 구석에 있었어?"

 "그게 말이다, 좀전까진 거실에 있었다. 혼자 깨어있자니 심심해져서, TV를 틀어 봤더니 그..."

 "그?"

 "그, 어쩐지 좀 무서워졌다."


 무서워졌다고? 자칭 여신이라는 인물이? 나는 황당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빤히 여신을 쳐다보기만 했다. 어둠 속에서, 어쩐지 저 여신이 얼굴을 붉히고 있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얼굴 붉힌 모습은 상상이 전혀 안 가지만 말이다.

 조금 뜸을 들이다 여신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그게 무섭다. 그, 남녀끼리...서로, 얽히는 것 말이다."

 "그게 무슨 뜻이야?"

 "사, 사랑을 나눈다는 행위 말이다! 뭐야, 자꾸 부끄러운 소리 하게 괴롭히지 마라!"


 무슨 말인지 이해해버리자, 나 역시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이 시간에 TV에서라면, 분명 '그걸' 본 거겠지.


 "아, 아니 그런데 무섭다니? 부끄럽단 걸 잘못 말한 거 아냐?"

 "그렇지 않아. 난 분명 무섭다고 말했지."

 "어째서야?"


 성인영화가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다. 여자애니까, 부끄러워할 수도 있고, 호기심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무섭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과연 있을까? 여신이 대답하기만 기다리면서, 나는 머릿속으로 가능한 경우들을 떠올려 보려 했다. 그게 얼마나 낯부끄런 일인지 깨닫곤 금방 그만둬 버리긴 했지만.


 "이봐. 남녀란, 정말 그런 식으로밖에 사랑을 확인하지 못하는 걸까?"


 여신의 목소리는 전혀 침착하지 않았다. 목소리 중간중간 끼어든 떨림과 숨소리, 거기에 말소리 자체도 커졌다 작아졌다를 제멋대로 반복했다. 그녀 말을 알아듣기 위해 나는 온 신경을 기울여야 했다.


 "말로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빛만으로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면 또 얼마나 좋을까? 그게 순진한 생각이란 건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무섭지 않느냐? 사랑한다고 말하고, 선물을 주고 받고, 서로 몸을 섞은 이후에도 여전히 그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의심해야 한다는 건 말이다."

 "그런 걸 생각하는구나, 여자들은."

 "너는 두렵지 않느냐? 지금 관계가 변해버릴지도 모른다는 게."


 솔직히 두려웠다. 선예와 예전같은 관계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이 그녀가 저지른 일을 모두 알고, 그녀와 나 사이 관계를 의심하는데도 나는 그 애를 전처럼 편하게 대할 수 있을까? 선예 일에 대해 나를 안심시킬 때 윤겸의 표정을 본 적이 있었다. 애써 친절한 듯 꾸미려 하지만 윤겸 또한 적잖이 동요한 듯 보였다. 윤겸 역시 선예와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설령 그전까진 서로 의식하지 않던 사이라도, 나와 선예가 내연 관계기라도 했단 듯 주위에서 떠들어대면 조금이나마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나와 선예 사이 관계가 변하는 건, 결국 나와 다른 사람들 관계도 변한단 의미다. 그걸 내가 전부 감당하긴 할 수 있을까?


 "선예가 원래대로 돌아오면 그 문제도 해결될 거야."


 속으론 불안해하면서도 나는 강한 척 떠벌여댔다. 낌새를 알아차린 걸까. 내 말에도 여신은 여전히 불안해했다.


 "남자들은 죄다 그런 식이다."

 "뭐가?"

 "'문제를 해결'한다고 말하지 않느냐? 너희가 관심있는 건 죄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그것뿐이다. 난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데 말이다."

 "선예를 저대로 놔두어도 괜찮단 말야!"

 "그게 아니야! 난 그저 조금이라도 확신할 걸 원하는 것뿐이다."

 "확신할 것?"

 "한 번 말해 보거라. 그 '문제'가 해결되면, 난 필요없어지는 것이냐? 속된 말로, 깃대 꽂았으니 더는 돌아볼 일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이냐?"

 "그런 말 하지 마! 여자애가,"

 "진지하게 들어! 넌 나를 믿고 싶어 믿는 것이냐? 아니면 내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믿는 것이냐?"


 난데없이 핵심을 찌르는 말이 돌아왔다. 나는 적절히 대답할 말을 생각하려 애를 썼다. 아쉽게도, 여신은 내가 변명을 떠올릴 기회도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이제 말해 보거라. 넌 어째서 나를 믿느냐? 네가 나를 믿지 못하는 이유는 또 무어냐?"

 "야! 야! 그만 둬!"


 별안간 여신이 내 침대 위로 올라왔기 때문에 나는 당황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여신이 바로 내 눈 앞까지 다가와 얼굴을 바짝 붙였을 때, 나는 그저 얼버무리거나 당황해하기만 할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여신의 두 눈은 그렁그렁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덮어두었던 문제를 끄집어내놓아야 했다.


 "선예 일이 있기 전, 어떤 남자를 만났어..."


=====================================================

 슬슬 마지막으로 나아갑니다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죠.
 끝을 맺긴 해야 하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 끝을 맺어야 할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하질 못했습니다. 대략 방향은 정해 놨으니, 일단 쓰다보면 어떻게든 풀릴 거 같습니다만;

 편하게 쓰고 있긴 하지만, 기왕이면 10대 취향 판타지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습니다. 지난번 공모전에 제출했던 글은, 주인공이 10대도, 남자도 아니란 이유에서 탈락해 버렸으니까요. 의식하고 준비한 글은 아니지만, 결과물이 괜찮으면 이걸 초안삼아 제출물 만들어나가도 괜찮지 않겠어요?

 그러므로, 기왕이면 많은 지적 부탁드립니다. 문장이건, 이야기 전개건, 내용이건, 캐릭터건 뭐든 좋습니다. 쓰는 입장에선 자기 글이 어떻게 보이는지 잘 알지 못하니까, 가급적 여러 얘기들을 듣고 싶네요. 날선 비판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고요. 비평계에서 많이 당해봐서 익숙합니다 ㅎ

 그런데 벌써 14화인가요? 잘하면 18화까지도 가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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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2012.05.08 23:03
    모르는 장르라 할 말이 없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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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2012.05.08 23:03
    사실 애들을 싫어해서 집중도가 좀 떨어져서요.. 초중생들 싫음..
  • profile
    윤주[尹主] 2012.05.09 08:18
    굳이 장르로 볼 거 없이, 평범하게 지적할 내용 있으면 해주세요 ㅠㅠ
    어떤 얘기든 도움이 됩니다.
  • profile
    클레어^^ 2012.05.09 08:04
    으흠... 이그드라실, 의외로 순진한 면이 있는 듯 하군요...;;
    다른 신이었다면 그런 건 예삿일로 넘겼을텐데...
  • profile
    윤주[尹主] 2012.05.09 08:19
    진짜 신인지도 확실지 않으니까요...의문거리가 많은 인물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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