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6 19:36

이그드라실! 12화

조회 수 460 추천 수 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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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남자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교실 앞에서, 문자를 한 통 받았다.


 [지금 어디게요? 두근두근~♡]

 "무슨 얘긴데 그렇게 오래 걸렸어? 그 남자."


 선예가 보낸 문자를 들여다보며 자리에 앉는데 윤겸이 물었다. 별 거 아니라고 둘러대곤, 책상 그늘에 휴대폰을 숨긴 채 문자를 날렸다.


 [어딘데?]


 곧바로 선예에게서 답신이 왔다.


 [힝 그러지말구 함 맞춰봐요]

 [집?]

 [뿌우~ 남은 기회 두 번!]


 옆 교실 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나서 재빨리 휴대폰을 책상 서랍 안에 감췄다. 제대로 자습을 하고 있는지 감독하러 돌아다니시는 선생님일 것이다. 휴대폰이 서랍 안에서 작게 진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제집을 펼치던 윤겸이 그 소리를 듣고 말했다.


 "그거 들키겠는데?"

 "아씨, 문자만 안오면 괜찮은데."


 선생님에 따라 다르지만, 상선고는 휴대폰에 대해 그다지 엄격하지 않았다. 부모님과 연락용으로 대부분이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지만, 수업시간이나 자습시간에 휴대폰을 가지고 소란을 피우는 애들은 드물었다. 대개가 인서울 학교들, 혹은 지방 국립대에 진학하길 원하는 학생들이다보니, 내신에 문제될 만한 행동은 스스로 자제하기 때문이리라.

 기대와는 달리 책상 서랍 안에서 휴대폰은 다시 울렸다. 여전히 한 번 짧게 울릴 뿐이다. 선예나 혹은 다른 사람이 보낸 문자이리라. 그렇게 생각한 순간 휴대폰은 또다시 진동했다. 이번엔 주위 시선들이 내게로 쏠렸다.


 "야, 꺼둬 그냥."

 "아무래도 그래야겠다...."


 눈치를 보면서 나는 휴대폰을 조심스레 꺼냈다. 처음엔 그냥 전원을 끌 생각이었다. 그러다 문득 휴대폰 화면을 보게 되었다. '새로운 문자가 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떠있는 와중에도 휴대폰은 몇 번이고 작게 떨었다. 잠금을 해제하자 지금껏 보내온 문자가 화면을 노랗게 메웠다.


 [이번엔 한 번 잘 맞춰보세염~ 째깍째깍]

 [왜 대답없지? 오빠 생각중?]

 [떠오르는거 아무거나 대답해봐염]

 [오빠]

 [바쁘세요?]

 [문자하기 힘드심?]

 [제가 싫으세요?]

 [아무 대답이나 해줘요]

 [오빠]

 [저 올라갈께요]


 대체 어딜 올라간단 거야!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에 당황해하는 사이, 교실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숨겼지만 이미 선생님은 내 쪽으로 걸어오고 계셨다.


 "이리 내."


 상대는 깐깐하기로 유명한 수학 선생님이셨다. 그다지 학생들에게 잔소리 안하고, 자습 시간 감독도 타이트하지 않은 편이셨지만 일단 뭔가 건수가 걸리면 협상이라도 해볼 여지가 전혀 없는 분이다. 순순히 휴대폰을 건네는 게 지금으로썬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휴대폰을 받은 선생님은 들고 있던 회초리로 내 책상을 탁, 한 번 내려쳤다.


 "공부에 집중해. 엄한 데 신경쓰지 말고."

 "...네."


 뒤끝은 별로 없는 분이다. 나중에 찾아가면 잔소리 좀 하고 돌려주시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아예 체념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다시 교실 안을 쭉 둘러보시더니 열을 맞춰 놓인 책걸상 사이 통로를 천천히 걸어 교실 밖으로 빠져나가셨다.

 그 뒤로 한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교실 안은 조용해서 에어컨 소리나 종이 위에 펜촉 굴러가는 소리밖엔 나지 않았다. 가끔 복도에서 다른 반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께서 아직 남은 반들을 돌고 계신 것이리라.

 모든게 평소와 다름없이 돌아간다. 그렇게 생각했을 무렵, 복도에서 누군가 창을 톡톡,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다른 애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경악했다. 거기엔 결코 여기 있을 리 없는 사람이 서 있었다.


 "뭐야, 왜 선예가 여기 있어?"


 선예를 잘 아는 윤겸이 먼저 반응했다. 뜻밖인 상황에 멍해졌던 머릿속에 조금전 선예와 주고받았던 문자 내용이 떠올랐다.


 [저 올라갈께요]

 '그게 이런 얘기였냐!'


 교실 안은 이미 웅성대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갔다. 선예는 날 보더니 태연스레 손을 흔들며 친한 척 해왔다.


 "오빠~, 와 버렸어요. 공부중이셨어요?"


 분홍색 반팔 위에 청색 조끼, 짧은 청치마 차림을 한 선예는 그 칙칙한 남학교 안에서 어울리지 않게 튀었다. 평소엔 뒤에서 한 갈래로 모아 묶은 머리를, 오늘은 완전히 풀어내린 상태였다. 어깨죽지에 겨우 닿을 듯 내려온 단발머리는 살짝 부풀려 귀엽게 보였다.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너 왜 여기 온 거야? 아니, 일단 밖으로 나가자."


 혹시나 주위에 선생님이 계실지도 모른다. 주위를 두리번거려봤지만 복도에는 나와 선예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허둥대는 모습을 보며 선예는 꺄르르 웃었다.


 "괜찮아요, 오빠. 선생님이라면 당분간 안 오실 테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참, 이거 오빠 거죠? 칭찬 좀 해줘요. 이거 가져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선예가 내민 건 다름아닌 내 휴대폰이었다. 나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했다.


 "이게 왜 너한테 있어? 선생님이 갖고 가셨잖아."

 "그치만, 이게 없으면 오빠랑 연락할 수가 없는 걸요. 전 오빠랑 단 1시간, 1분, 아니 1초라도 떨어져 있으면 싫은데, 히잉."

 "그게 아니라!"

 "그보다, 약속한데로 과일, 오늘도 좀 가져와봤어요....선호 오빠?"


 선예가 뭐라고 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그녀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선예는 어떻게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여기까지 온 건지, 왜 선생님이 압수한 휴대폰이 선예에게 들려 있는 건지.

 대답해줄 사람은 딱 한 사람밖에 없을 터였다.


 "선생님 어디 계셔?"

 "후훗, 가르쳐 드려요?"

 "뭘 한거야, 대체?"

 "부탁 하나 들어 주시면 가르쳐 줄 수도 있는데."

 "부탁?"

 "키스해 줘요, 지금. 여기서."


 부끄럽기보단 차라리 불쾌했다. 선예가 보이는 태도는 평소와 많이 달랐다. 흡사 모습만 유사한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 때 내 눈에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선예 주위로 스멀스멀 형체 없는 무언가가 피어오르더니, 돌연 검은 불길이 일어 그녀를 완전히 휩싸고 돌았다. 그 불길을 보자 나는 곧바로 꿈에서 본 장면을 떠올렸다. 여신이라고 말했던 그 사기꾼 소녀가 꿈에서까지 나타나 내게 보였던 세계의 구조. 선예를 둘러싼 불길은 정확히 여신이 내게 보였던 그 정체 모를 불꽃과 닮아 있었다.


 "선호 오빠?"


 그 모습에 놀라 뒷걸음치다가, 선예가 부르는 소리에 놀라 그 자리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복도 끝 계단이 있는 곳으로, 다시 계단을 타고 아래층으로 달려 건물 밖으로 나섰다. 본관과 기숙사 사이 널찍한 공터까지 나와서야 겨우 진정이 됐다. 마음을 가라앉이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본관 옆 벽에 기대어 누은 선생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마치 인형처럼, 시체처럼 꼼짝 않고 누군가 대충 구겨놓은 듯 아무렇게나 팽개쳐진 그 모습에,


 "으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생각했다. 이게 꿈이 아니라면, 이 세계가 정말 멸망하려는 징조인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뺨을 꼬집어봤다. 이어 전해져오는 통증은 거짓말처럼 생생했다.


=========================================

 2화 연속, 나름 충격적인 에피소드를 써 보려고 해봤네요.
 다음 화부턴 슬슬 이야기를 정리해가야겠습니다.
 내일 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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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클레어^^ 2012.05.07 04:51
    헉... 설마 선예가 이그드라실과 무슨 관련이?
    아니, 뜬금없이 왜 선예는 주인공에게 들이대는 걸가요?
  • profile
    윤주[尹主] 2012.05.07 09:22
    다음 화에서 좀 더 상황을 정리하면서 들어가야겠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 ?
    乾天HaNeuL 2012.05.11 23:11
    우어~ 충격과 공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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