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3 18:36

이그드라실! 9화

조회 수 480 추천 수 1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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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를 푸는 건 익숙하다. 다만 그것이 지면상의 문제일 경우에만.

 교문을 막 나서자마자 이상한 시선을 느꼈다. 누군가 이쪽을 기분나쁘게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것처럼. 급히 주위를 둘러봤지만 지친 얼굴로 하교하는 낯익은 얼굴들 외에는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도 시선은 끈질기게 나를 따라붙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버스를 타서도 어디선가 계속 끈적끈적 엉겨붙는 듯 기분나쁜 시선이 나를 쫓아다녔다. 내가 여자였다면 스토킹이라고 곧바로 단정지었을 거다. 아니, 이건 확실히 스토킹이잖아!

 버스가 몇 개 정류장을 지나치는 동안, 그냥 여기서 내려버릴까 하는 생각을 수 차례나 했다. 내가 여러 번 망설이는 동안,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버스가 학원 앞에 닿자마자, 나는 황급히 내려 건물 2층까지 달음박질쳐 올라왔다. 바로 뒤에서 발을 구르는 소리와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지만 차마 돌아볼 염두를 내지 못했다.

 나는 이 스토커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전혀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김선호, 뭐가 급해서 뛰어와? 그렇게 땀까지 흘리고."


 겨우 학원 안에 들어서자, 마침 카운터에 있던 부인과 이야기하던 원장 선생님이 보고는 한 마디 던졌다. 누군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어서일까. 그제야 조금 용기를 되찾아, 겨우 등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전까지 느껴지던 시선과 바로 뒤까지 쫓아오던 소리가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왜? 누가 와?"

 "아뇨...그냥 괜히 좀,"

 "가서 얼굴 좀 씻고 와야겠다. 바로 진 쌤 수업 들어가지?"


 그 말을 듣고서야 조금 진정이 됐다. 진 쌤이란 그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였다. 성격 쾌활하고 시원시원해 인기가 많은 사람이다.

 원장 선생님 말대로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고 강의실에 들어갔다. 국, 영, 수 세 과목을 돌아가면서 1일 1과목 하루 두 시간씩 가르치는 학원이었다. 그러던 것이, 학교가 일찍 6시에 끝나자 하루 세 과목을 한 시간씩 진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수업이 7시에 시작하니까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저녁 10시까지 공부를 계속하는 셈이다.

 강의 시작 전에 식사를 하려면 인근 식당에서 밥을 사먹어야 한다. 조금 전 스토킹을 생각하면, 도무지 밖에서 식사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학원 바로 아래 편의점에서 김밥이랑 음료수를 사와 강의실에서 먹었다. 조금이지만 그래도 먹고 나니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되었다.

 대체 누가 날 미행하는 걸까? 이그드라실? 이상한 꿈을 꾼 뒤로 어쩐지 여신이 보이지 않긴 했다. 하지만 그녀가 나를 미행할 이유가 있을까? 평소엔 아무리 말려도 옆에서 졸졸 잘만 따라다니는데 말이다.

 냉정히 생각하면 스토커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자거나 연애인이라면 모를까, 나도 모르는 사생팬이 생길 만한 이벤트는 없었지 않은가. 환한 대낮에, 그렇게까지 따라붙었는데도 정체를 이 쪽에서 알아차리지 못했단 것도 이상했다.

 결국 뭐였을까. 대낮에 허깨비라도 본 걸까?






 학원이 끝나면, 원장님이 직접 차를 몰고 학생들을 집에 데려다주신다. 수강생이 그리 많지 않아서, 8인승 승합차면 충분히 집집마다 학생들을 데려다줄 수 있었다. 작은 학원이라선지, 평소엔 밤 늦게 끝나는 종합반을 수강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집이 비좁은 골목에 있어서 평소처럼 큰 길 가에 내렸다. 원장 선생님 차가 멀어지고, 내가 몸을 돌려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다시 묘한 시선이 등 뒤로 따라붙었다. 학교에서 나설 때처럼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주위에 수상해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골목길을 걸었다. 주택가인 데다 늦은 시간이라 밖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쓰레기를 내놓기 위해 잠깐 밖으로 나온 아저씨나 퇴근해 들어오는 아주머니 한두 분이 겨우 보였을 뿐이다. 서둘러 걸으며 모퉁이를 돌다가, 대학생 형 한 명과 부딪쳤다. 편한 차림에 머리를 덥수룩하게 기른 그 형은, 나를 쳐다보곤 뒤이어 내 뒤를 쳐다보더니 멍청한 표정으로 다시 나를 내려다 보았다. 나는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이곤 다시 걸음을 재촉해 그 자리를 도망쳐나왔다.

 어째서 그 형이 나를 이상한 듯 쳐다보았는지는 안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보였는데, 뒤따라오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틀림없었다. 학교에서 쫓아온 바로 그 놈이다!

 실체 없는 녀석에게 뒤쫓기는 건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누군가 바짝 따라붙어 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다. 상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내 자신이 착각하는 걸 수도 있다. 양치기 소년이 되어 버린 기분이다. 아니, 그보다도 더 나쁜 상황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양치기 소년은 그 자신이라도 진실이 뭔지 알고 있었으니까.

 큰 길에서 집까진 불과 10여분 안팎인데, 마치 30분은 넘게 걸은 기분이 들었다. 거의 뛰다시피 하면서 도망치다가, 겨우 집 근처에 와서야 아는 사람을 만났다.


 "얘, 선호니? 무슨 일이야, 그렇게 급히?"


 불러세운 건 청과물 가게 아주머니, 선예 어머니셨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너 괜찮니? 얼굴이 안 좋은데."

 "괜찮아요. 별 일 아녜요."


 숨을 고르며, 겨우 안도를 했다. 아주머니와 만나자마자 시선은 사라져 느껴지지 않았다. 학원에 갔을 때와 마찬가지다. 이제 집 안으로 들어가면 더는 이상한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입에선 괜한 말이 새어나왔다.


 "어쩐 일이세요? 이렇게 늦게."

 "응? 아, 실은 우리 애가 말야, 아직까지 집에 들어오질 않았지 뭐니. 무슨 환경정화인가 한다고 나가서는, 아까 낮에 친구들하고 있다고 했거든? 그러고나서 지금까지 연락이 없네. 얘, 혹시 우리 애 못봤니?"

 "선예라면 점심때쯤 학교에서 봤어요. 걔네 반 환경미화라서 나왔다고 하던데요?"

 "그럼 그게 아직도 안 끝난 건가?"

 "아뇨, 점심 때 이미 끝났다고..."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아주머니가 먼저 인기척을 알아채고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전까지 내가 걸어온 그 방향에서 온 누군가를 알아보고서 아주머니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선예야! 너 어디갔었어? 엄마 걱정했잖니."


 그 말에 나도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선예를 보았다. 낮에 봤던 차림 그대로였다. 짧은 반바지에 길고 펑퍼짐한 흰 블라우스. 달라진 건 손에 든 검은 비닐봉지 하나뿐이었다.


 "엄마는! 잠깐 슈퍼에만 다녀온 거 뿐이야."

 "아니, 너 아침에 나가서 지금 들어오는 거잖니!"

 "무슨 소리야? 분명 다녀왔습니다, 하면서 방에 들어갔는데."

 "엄만 못 들었는데? 그럼 언제 다시 나갔고?"

 "한 십 분 전쯤. 뭘 꼬치꼬치 캐묻는데?"


 이상하다, 라며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딸의 말에 어느 정도 납득은 하신 모양이었다. 바쁘다보니 들어오는 소리를 못 들을 수도 있는 거니까, 하면서 말이다.

 질문 공세가 끝나자 그제야 선예는 내게 말을 건넸다.


 "어, 오빠. 제가 드린 멜론 어땠어요? 용기는 벌써 엄마에게 주신 거에요?"

 "맞다. 미안, 그거 깜빡하고 학교에 두고 왔어."


 선예가 말해주기 전까진 그런 게 있었단 것도 잊고 있었다. 피곤한 하루다보니, 챙길 생각은 하지도 못한 것이다.


 "뭐에요, 내일도 거기다 과일 담아서 오빠 갖다주려 했는데."

 "어이구, 아빠 들으면 섭섭해 하시겠다. 너 언제부터 선호 얘챙겨줬다고 그러니?"


 곁에 있던 아주머니가 한 소리 했지만, 선예는 실실 웃기만 했다. 그런 선예를 보면서 조금 전 불쾌했던 기분은 삽시간에 사라져 버렸다.


 "암튼 집에 가야지. 선호도 들어가렴. 공부 열심히 하고."

 "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눈 뒤, 나는 선예에게 사과를 건넸다.


 "용기 제대로 못 챙겨서 미안해. 대충 씻어두긴 했는데, 내일은 꼭 가져다줄게."

 "약속이에요?"


 한쪽 눈을 찡긋, 윙크하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워 보일 수가 없었다. 잘 가란 말을 하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먼저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선예가 머뭇거리며 손을 붙잡았다.


 "왜 그래?"

 "아뇨, 그냥. 헤헤."


 묘하게 평소보다 친한 척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선예에게서 아무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 순간, 선예가 한 말에 나는 소름이 쫙 끼쳤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우리 다음에 또 숨바꼭질 같이 해요."


 무슨 말인가 생각하고 있으려니, 황급히 덧붙여 이런 말도 했다. 마치 좀 전 자기 말을 얼버무리려는 것처럼.


 "어렸을 때 종종 그랬잖아요."


 두 사람과 헤어져 몇 걸음 걷다가, 비로소 위화감을 느꼈다. 어째서 선예가 그런 말을 했는가. 왜 선예는 유달리 평소와 다른 친근감을 표시했는가. 왜 아주머니는 선예가 집에 들락거리는 것도 깨닫지 못했던가. 그리고 왜 선예는 이 시간까지도 그런 차림을 하고 있었던 걸까.

 한 가지 가능성을 깨달은 순간, 나는 좀 전에 본 선예 얼굴을 떠올렸다. 기쁜 듯 웃고 떠들어대서 눈치채지 못했지만, 확실히 그녀 얼굴은 평소보다 붉어져 있었다. 부끄러워한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어디선가 급하게 뛰어야 했던 걸지도 모른다.

 무엇 때문에 그녀는 그렇게나 급하게 뛰어야 했던 걸까.

 잠긴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면서 나는 오늘 보았던 꿈에 대해 다시 떠올렸다. 거대한 세계수와 그것을 지키는 뱀들의 무리, 그리고 세계수를 불태우는 검은 화염들. 어쩌면 나는 발견한 건지도 모른다. 여신이 말한, 세계를 멸망시킨다는 과잉된 감정을 말이다.

 여신 말대로, 불씨는 내 주위에 있었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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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외로 그렇게 긴 글이 될 거 같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심심하게 끝내고 싶은 건 또 아닙니다...
 15화 전후로 가면 적절할 거 같은데, 확실히 분량이 어떻게 나올 지를 모르겠군요. 넉넉히 계획 잡자면, 적어도 스승의 날 전에는 끝날 거 같습니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쓰는 것도 재미있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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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乾天HaNeuL 2012.05.03 18:39
    결국 "아이 러브 유?" 뭐 이런 건가.
  • profile
    윤주[尹主] 2012.05.03 18:42

     왜 이렇게 쾌속으로 댓글다십니까 ㄷㄷㄷ;

     실시간 감시라도 하고 계시나요...;

  • ?
    乾天HaNeuL 2012.05.03 19:32

    ㅇㅇ; 님이 글을 아침에 올리고, 나도 아침에 시간이 마침 있었을 뿐이고. ㅡ.ㅡ

  • profile
    클레어^^ 2012.05.05 07:11
    호오~. 드디어 주인공의 이름이 밝혀졌군요!!
    그나저나... 이 소설은 예전에 마녀나 반려, 이런 애들이 나오는 경우가 있나요?
  • profile
    윤주[尹主] 2012.05.05 07:52

     여기서는 마녀 일행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전혀 별개 얘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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