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1 17:52

이그드라실! 7화

조회 수 453 추천 수 0 댓글 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좋은 걸 하나 가르쳐주마."


 점심 시간이 끝나고 막 내가 지난해 수능 기출 문제를 붙잡고 풀기 시작한 그 때, 이그드라실 여신이 교실로 난입해왔다. 거침없이 다가와 내 앞에 선 그녀 때문에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야, 너 지금 나 무시하는 거니? 진짜로?"


 여신은 거리낌없이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조용하던 교실은 여신 혼자만의 목소리로도 쩌렁쩌렁 울렸다. 이상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 하나 여신에게 곁눈질하거나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참다못한 내가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좀 조용히 해요! 여기 다른 사람들 있는 거 안보여요?"

 "다른 사람들?"


 여신은 비웃음을 흘렸다.


 "다른 사람들이 어디있지?"


 그 말에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둘러 보았다. 방금 전까지 앉아 있던 애들이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행과 열을 맞춰 배치한 책상과 걸상들은 어느 하나 좀 전까지 사람이 앉아 있었단 흔적 없이 정돈되어 놓여 있었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에 거슬렀기에 나는 고개를 돌려 그쪽을 보았다. 복도 너머 창밖으로 저물어가는 해가 눈에 띄었다.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뭘 놀라고 그래?"


 여신은 내 옆자리로 다가와 책상 위에 걸터 앉았다. 방금 전까진 윤겸이 앉아 있었더 바로 그 자리였다.


 "지금 이 상황 말예요! 아무도 없잖아요!"

 "맘에 안 들어? 난 네가 조용히 단 둘이서만 얘기하고 싶은 줄 알았는데."


 후훗, 여신이 웃자 세계가 일렁였다. 교실 바닥과 벽이 가볍게 출렁였고, 본관 앞 전나무를 비롯해 모든 가로수가 바람에 흩날리며 잎사귀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해는 눈에 띌만큼 빠른 속도로 지평선 아래로 기어들어갔다.


 "이야기하긴 조금 어두운데 불이라도 켤까?"


 손가락을 맞부딪쳐 튕기는 소리. 그 소리와 함께 교실 불은 모두 켜졌다. 어느새 창밖은 새카만 어둠이 내려 있었다.


 "넌 불이 꺼진 편을 더 좋아하려나?"

 "장난은 그만 둬요!"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오는 것을 감추려고 나는 일부러 화를 냈다. 여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확실지 않았다. 다만 지금 여신과 함께 있는 이 장소가 내가 본래 있던 교실이 아니란 건 분명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걸 여신은 억지로 붙잡아 말렸다.


 "그냥 앉아 있으렴. 가만히만 있으면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옴짝달싹도 하지 말고 앉아만 있으란 그 얘긴가요?"

 "왜, 내가 너한테 뭐라도 할 까봐?"

 "가까이 붙여 기대어 봤자 소용없어요."

 "칫, 매정한 남정내같으니."

 "기껏 초딩 애한테 두근댈 정도 막장은 아니거든요!"


 엉겁결에 내뱉은 초딩, 한 마디에 여신은 눈꼬리를 치켜떴다. 잔뜩 화가 난 여신을 보며 나는 아차, 하고 숨을 죽였다. 여신의 얼굴은 잔뜩 시뻘개져 있었다.


 "이...이...이냐아아아앗!"

 "이냣?!"

 "그래, 초딩이라 미안하다! 누군 뭐 초딩처럼 보이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지, 진정해요, 좀!"

 "그 자식! 그 자식! 그 자식! 그 자식! 그 자식!"


 폭주한 여신은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난동을 부려 댔다. 주먹으로 연신 책상 위를 내려 치다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책상 모서리를 붙잡고 연신 흔들어댔다. 여신이 하는 양에 맞춰가듯 내 주위 풍경도 급격하게 변해갔다. 유리란 유리는 모두 물처럼 흐물흐물 녹아 바닥까지 흘렀고, 칠판은 뒤틀려 마치 걸레를 쥐어 짤 때 모습처럼 변했다. 이 괴상한 세계에서 멀쩡한 건 나와 여신 둘뿐이었지만, 가만 놔두면 나 역시 언제 이상하게 변해버릴지 알 수 없었다.

 광분한 여신을 말리려면 무슨 말이건 해야만 했다.


 "죄송해요. 저기, 잘못했으니까 이제 그만..."

 "그래 어차피 볼 것도 없는 몸매라 이거지? 나도 뭐 기왕이면 모델들처럼 말이지, 나올 땐 나오고 들어갈 땐 들어간 편이...으흐흐흐흐흐."

 "아니, 저기 이제 괜찮으니까 좀"

 "키만 좀 컸으면 성형이라도 하면 더 나을 텐데. 턱도 좀 깍고, 가슴도 좀 올리고, 지방도 좀 더 빼면..."

 "그럴 필요 없다구요! 지금도 충분히 예쁘니까!"


 돌연 여신은 폭주를 멈췄다. 하릴없이 중얼대던 것도, 책상을 쥐고 흔들던 것도 한순간에 방전된 전자기기처럼 그만두었다. 내 말에 반응을 보인 걸까. 그렇게 의심하던 찰나 여신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진짜로?"

 "예뻐요! 진짜로요! 처음 봤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는걸요."

 "하지만 키는 작잖아."

 "키는 언젠가 커요!"

 "몸매도 별로고."

 "괘, 괜찮아요! 좀 더 자라면 여기저기 늘 거에요. 분명!"

 "나, 안 자라는데? 여신이라서."


 일순 지뢰를 밟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니 뭐 그대로도 물론 예쁘고 딱히 지금보다 성장할 필요는..."

 "너 지금 아무렇게나 되는 데로 이야기하고 있단 거 자각은 하고 있니?"


 물론 알고 있었다.


 "가만 듣자하니 낯부끄런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고 말이야."

 "그건 딱히 제가 하고 싶어 한 얘기가 아니라!"

 "상관없어."


 여신은 내 말을 자르고 들었다. 다시 화를 내려나 생각했지만, 이어지는 여신의 말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날 위해 어떻게든 해주려 하는구나, 하는 마음은 확실히 전해받았으니까."


 상대가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여신이라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그녀가 여신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사태까지 오진 않았겠지만.


 "자, 그럼 진정이 어느 정도 됐으니까 슬슬 얘기해볼까?"

 "그러고보니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너도 조금 봐둘 필요가 있을 거 같아서 말야."


 여신의 말과 함께 교실은 변하기 시작했다. 사방을 둘러싼 콘크리트 벽이 마치 종잇장처럼 구겨져 뜯겨나가고, 뒤이어 천장과 바닥도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남은 것은 우리 두 사람이 앉은 책걸상 두 세트뿐이었다. 나는 완전히 변해버린 세계를 불안과 긴장감에 가득 차 목도했다. 끝없이 광할한 어둠 속에서 기껏해야 점 하나 정도나 될 까 싶은 우리가 있었다. 어느 순간 어둠 한편에서 밝은 빛이 은은히 새어 나와 등 뒤를 간질였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고, 그리고 발견했다.


 "이 세계의 구조에 대해서 말이지."


 여신의 말이 이어졌지만, 나는 좀처럼 그 설명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 끝없는 암흑 공간에 터무니없을 정도로 거대한 나무 하나가 있었다. 흙이 아니라 그 공간 자체에 깊고 넓게 뿌리박고, 잎으로 무성한 가지를 사방으로 뻗은 채 전체에서 빛을 뿜어대는 것만 아니면 그것은, 내가 아는 무언가와 퍽 닮아 있었다.

 착각인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학교 본관에 심어진 히말라야전나무와 퍽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

 다음 화에선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무언가'에 대해 나옵니다.
 조금 일찍 나왔어야 했나 싶지만, 너무 설정만 줄창 늘어놓는 것도 보기에 별로 좋지 않아 보인다 싶어서 말이죠;

 편한 대로 쓰다보니 문장이 조금 길지 모르겠습니다. 읽기 불편하다 싶거나 조언해주실 만한 점은 얘기해 주세요.
 그럼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
TAG •
?
  • ?
    乾天HaNeuL 2012.05.01 17:55
    그냥 로리콤일 뿐
  • profile
    윤주[尹主] 2012.05.02 08:13

    기대하던 답글입니다 ㅎ

  • profile
    클레어^^ 2012.05.02 07:16
    근데 다들 어디로 간 건가요?
    설마 다들 사라졌나요? 아니면 환영?
  • profile
    윤주[尹主] 2012.05.02 08:15

    본래 이번 화에서 밝힐 내용이었는데....글이 길어져서 다음 화로 넘겼습니다;

    아마도 내일은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하실 수 있으실 거에요^^;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21 [악마의 변호인]윤주 님 - 이그드라실 2 yarsas 2013.01.08 470 1
20 이그드라실! 후일담 2 윤주[尹主] 2012.05.13 388 1
19 이그드라실! 19화 3 윤주[尹主] 2012.05.13 471 0
18 이그드라실! 18 3 윤주[尹主] 2012.05.12 505 0
17 이그드라실! 17화 4 윤주[尹主] 2012.05.11 695 0
16 이그드라실! 16화 3 윤주[尹主] 2012.05.10 500 0
15 이그드라실! 15화 2 윤주[尹主] 2012.05.09 515 1
14 이그드라실! 14화 5 윤주[尹主] 2012.05.08 601 0
13 이그드라실! 13화 2 윤주[尹主] 2012.05.07 527 0
12 이그드라실! 12화 3 윤주[尹主] 2012.05.06 460 0
11 이그드라실! 11화 2 윤주[尹主] 2012.05.05 446 0
10 이그드라실! 10화 4 윤주[尹主] 2012.05.04 416 1
9 이그드라실! 9화 5 윤주[尹主] 2012.05.03 480 1
8 이그드라실! 8화 2 윤주[尹主] 2012.05.02 447 1
» 이그드라실! 7화 4 윤주[尹主] 2012.05.01 453 0
6 이그드라실! 6화 8 윤주[尹主] 2012.04.30 462 1
5 이그드라실! 5화 4 윤주[尹主] 2012.04.29 529 0
4 이그드라실! 4화 5 윤주[尹主] 2012.04.28 506 2
3 이그드라실! 3화 5 윤주[尹主] 2012.04.28 542 1
2 이그드라실! 2화 8 윤주[尹主] 2012.04.15 495 1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제휴문의] | [후원창구] | [인디사이드연혁]

Copyright © 1999 - 2016 INdiSide.com/(주)씨엘쓰리디 All Rights Reserved.
인디사이드 운영자 : 천무(이지선) | kernys(김원배) | 사신지(김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