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29 21:53

이그드라실! 5화

조회 수 529 추천 수 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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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면 난 이그드라실이 하는 말에 대해 여전히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미드가드오름이라던지, 토르라던지. 그런 낯선 말들만 줄줄 늘어놓았을 뿐이지 저 자칭 여신이란 꼬맹이는 정작 내가 뭘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세계가 멸망한다고 한다. 대체 어떻게? 무엇 때문에 세계가 고작 3일 안에 망한다는 걸까?


 "악! 전쟁이라도 나버리라지! 수능 따위 안봐도 되게!"


 갑자기 한 녀석이 비명을 질렀다. 시험일이 가까워올수록 그런 애들은 늘어만 갔다. 분명 이것저것 쌓여서 생각없이 해대는 말이겠지만,

 ...어쩌면 정말 전쟁이라도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내가 어떻게 손쓸 방도는 전혀 없으리라.


 장마가 막 끝난 후 주위엔 완연히 한여름 기운이 돌고 있었다. 하루 24시간 중 18시간 이상은 계속 쏘아대는 것만 같은 햇살 탓에 우리는 커튼을 치고 에어컨을 하루종일 풀가동시켰다. 교실 밖으로 나서면 숨막할 듯 습한 공기에 질식할 것 같았다. 교실 안에선 다른 의미로 질식해 죽을 것같긴 했지만 말이다.

 학교에 나와 있는 동안 우리는 EBS를 시청하거나 문제집을 기계적으로 풀었다. 음악이나 미술, 체육 시간 없이 등교해서 하교할 때까지 언어, 수리, 외국어, 사회탐구 네 과목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교육방송 시청 시간에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애가 있어도 선생님들은 별달리 지적하지 않았다. 제각기 효율적인 공부법은 다 다를테니까. 우리는 모두 그렇게 학원이나 독서실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먼 학교까지 나와서 매일같이 하다가 교문을 나섰다. 그 교문을 나서는 우리 중 몇몇은 또 학원을 가고, 또 몇몇은 독서실을 가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겠지만.

 내가 그 여신, 이그드라실에게 이렇게 말한 것도 전혀 근거없는 얘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세계가 곧 멸망한다면, 아마 지루함이나 압박감 탓일 거에요."

 "무슨 소리야, 그건?"

 "어제 당신이 그랬잖아요. 이제 곧 멸망이 임박했으니, 뭔가 제 주위에도 변화가 있을 거라고. 하지만 봐요! 아침부터 계속 살펴보곤 있지만 아무 일 없잖아요. 똑같이 학교 나와서, 똑같이 책이나 들여다보고..."


 애들이 잘 올라오지 않는 본관 옥상 위에서 나는 여신과 만나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 항상 개방되어 있고 가장자리에 추락방지용 펜스도 없었지만 지금껏 난 이 학교 옥상에서 무슨 사고가 일어났단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혹 올해 누군가 여기서 뛰어내린다면 그게 우리 학교에선 첫 자살 시도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때마침 쉬는 시간 종료를 알리는 벨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나는 여신과 헤어져야 했다. 옥상에서 내려오기 전, 나는 여신을 불러세우고 물었다.


 "한 가지만요. 대체 누가 세상을 멸망시킨단 거죠?"

 "그야 당연하잖아?"


 여신은 별 이상한 걸 묻는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너희 인간들이 아니면 달리 누구겠어?"





 "세상이 멸망한다면 무엇 때문이겠냐고?"


 내 질문을 들은 윤겸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핵전쟁, 자원 고갈....그런 것들이려나."

 "그러겠지?"


 대답이 예상했던 그대로라 나는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정말 세상이 멸망할 정도로 위기가 온다면, 일개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겠지. 너도 그 정돈 알잖아?"

 "그러게 말이다."


 학년 주임 선생이 복도를 지나며 자습중인 우리 교실 안을 들여다본 탓에 우리 대화는 도중에 잠시 끊어졌다. 복도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멀어진 후 나는 다시 윤겸에게 물었다.


 "그래도 혹시, 일개 개인이 어떻게든 막아볼 수 있는 위협이란 게 있지 않을까?"

 "공동 대응 없이? 글쎄다...난 잘 모르겠다만."


 대답을 하면서, 윤겸은 막 계산이 끝난 수학 문제의 답을 문제지 위에 적었다. 잡담을 하면서 수학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난 여지껏 윤겸 말고는 그런 사례를 본 적이 없다.

 두서너 문제인가를 연달아 답한 뒤, 윤겸은 문득 생각난 듯 내게 말을 걸었다.


 "잘 모르겠지만, 일개 개인이 할 수 있는 거라면 기껏해야 '쓸데없는 버튼을 누르지 않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다. 왜 있잖아? 까딱 버튼 하나만 눌렀더라면 세계가 핵전쟁으로 갈 수 있었던 순간에, 대응해 공격하지 않겠다고 과감히 결단내려 위기를 넘겨낸 구소련 장교말야."

 "쓸데없는 버튼을 누르지 않는 것, 말이지."


 윤겸이 한 말을 곰곰히 되씹던 그 때, 호주머니 속에 있던 휴대폰이 작게 진동했다. 주변 눈을 피해 확인해보니, 익숙한 이름으로부터 온 문자가 눈에 띄었다.


 "왜 그래?"


 윤겸이 묻는 말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건성으로 답하며, 나는 창가 너머 운동장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130cm 가량 높이 야트막한 담장을 경계로, 두 개의 학교 운동장이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하나는 우리 상선고 부지, 다른 하나는 이웃 상선중이 쓰는 것이다. 그 두 학교 사이 담장 근처에서, 한 학생이 우리 학교 본관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이쪽이 보이지도 않을 텐데도 그 애는, 마치 누가 보는 걸 알기라도 하는 양 연신 두 팔을 크게 흔들어댔다.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멀리 있지만, 그 애가 선예란 걸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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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화 분량이 쓸데없이 길지 않나 싶습니다; 줄이는 게 나으려나요?
 다음 화는 좀 달짝지근한 분위기로 써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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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클레어^^ 2012.04.30 08:43
    설마 선예는 주인공의 여자친구??
    그러고 보니 주인공의 이름은...;; 나왔는데 제가 못 본 건가요? ㅠㅠ
  • profile
    윤주[尹主] 2012.04.30 18:13

     주인공 이름은 아직 안나왔네요...한번은 나왔어야 했나요;;

     선예의 정체는, 6화에서 나옵니다. 직접 확인해주세요^^;

  • ?
    산늘 2012.05.08 04:28
    여자아이가 등장했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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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乾天HaNeuL 2012.05.11 22:56
    도장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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