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11 03:26

발큐리아! 완결편

조회 수 382 추천 수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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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길이 사그라들고 인간은 구원받았다.


 이제 남은 건 세상을 본래 모습대로 돌려놓는 것뿐이다.


 깨진 것은 도로 맞추고, 그을린 것은 닦아 놓아야지.


 영혼을 잃은 생명들에겐 다시 세계수의 축복을 내리자.


 기껏 세상을 멸망에서 구한 이들이 다시 괴로움에 빠지는 일 없도록, 조금 손을 써두는 것도 필요하겠지.


 순정은 아무 징계 받지 않고 학교를 다시 다닐 수 있을 거다. 호진은 그녀와 오랫동안 사랑할 테고, 혜미는 당분간 방황하겠지만 곧 다시 행복해지리라.


 조작되고 뒤틀린 운명들까지 모두 정돈한 후에야 나는, 등 뒤로 다가온 한 남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기척도 내지 않고 갑자기 나타난 주제에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는 남자. 바바리 코트를 입은 남자에게 나는 나직하게 힐문했다.


 "이것도 네 짓이겠지? 세상을 위기에 빠뜨린 것말야."

 "물론입니다. 나의 여신이여."


 코트를 입은 남자는 기분나쁘게 미소를 지었다.


 "넌 세계가 자칫 멸망할 지도 모를 위기를 일으켰어. 동생을 향한 혜미의 애정을 부추기고 일그러뜨렸고, 그 동생 호진을 부추겨 내게 소원을 빌게 했지. 둘 중 누구 하나가 감정이 넘쳐 세계를 태워 없앨 불길을 뿜어내기만 하면 되는 거였어. 그렇지?"

 "그건 전부 당신을 위한 거였죠,"

 "뭐가 날 위한 거야!"


 항상 이런 식이다. 그 자와 말을 하고 있으면, 도무지 얘기가 통할 기색이 안 보여 짜증이 난다. 이자는 제멋대로 생각하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안중에도 없으면서 그 모든 게 다 나를 위한 거라고 말한다. 여신인 나를 위해 세계수인 나를 불태우고 위기에 빠뜨린다고 얘기한다.


 "모르시는 건 아니죠? 당신은 우리 인간의 믿음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여기 살아가기 위해선 우리가 당신을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당신 같은 신들을 더이상 믿어주지 않죠. 그래요, 세상이 멸망할 위기에 처하기라도 하지 않는 한은 말입니다."

 "그 애들이, 호진이나 혜미가, 순정이가 날 여신이라고 믿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세계를 위기에 빠뜨렸다고?"

 "네, 당신이 믿음을 살 수 있는 방법은, 당신이 이 세상에 계속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그때도 그랬다. 선호에게 접근해 작은 의심을 심어주고, 나중에 그걸 뒤집어 결과적으로 나에 대한 믿음을 굳혀놓았다. 혜미나 호진을 부추겨 사람들의 운명을 엉망으로 만들곤, 절박해진 그들에게 나를 소개해 새로운 신자를 만들어냈다. 그의 방식은 비겁하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나는 남자의 그런 행동을 적극적으로 비난할 수 없다. 왜냐면, 그 행동들로 인해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게 다름아닌 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째서 나인가? 이 남자는 왜 나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 걸까?


 "모르시겠습니까?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영원히 당신이 존재하길 희망합니다. 그러자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믿도록 설득해야 하겠죠."


 이게 남자의 동기다. 어떠한 이해득실을 따져서 행동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영원히 살기만을 바라며 행동하고 있다. 남자는 선의로 행동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저지르는 일들은 세계의 위기를 조장하는 악행일 뿐이다. 내가 이 남자에 대해 지적할 수 있는 건 고작 이정도뿐이었다.


 적어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아니, 그건 거짓말이야.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아."

 "어째서죠?"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당신은 날 믿지 않으니깐. 내가 혼자서도 충분히 존재하고, 혼자서도 착실히 믿음을 모을 수 있다란 걸 믿지 않으니깐. 당신은 혜미와 같아. 항상 자기 곁에 날 놔두고 관상하고 싶어하지. 그건 사랑이 아냐. 적어도 난, 믿음 없이 성립하는 사랑이란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순진하시군요."


 하지만 좋습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을 이었다.


 "좋습니다. 당신은 계속 그렇게 순진한 채로 남아 있어도. 더러운 일, 추잡한 일은 전부 제가 알아서 처리해 드리죠. 대신, 이것만큼은 기억해 주셔야 합니다. 당신이 빛나는 건, 그게 언제건 어디서건 반드시 저라는 인간이 물심양면 힘을 써 주기에 가능하단 사실을 말입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구역질나. 다신 당신과는 얽히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건 불가능합니다. 왜냐면 유다는 스스로 목을 매기까진 결코 속죄할 수 없이 살아가야 하거든요."


 어째선지 남자는 그런 저주에 걸려 있었다. 타인의 손, 심지어 내 손으로도 남자를 징벌할 수는 없다. 성경 속 유다는 예수를 은전을 받고 팔곤 수치심에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고 한다. 남자도 유다처럼 스스로 목을 매어 죽지 않는 한, 어떠한 수단, 어떠한 방법으로도 결코 죽음에 이르지 못한다.


 남자의 본래 이름은 잊었다.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나를 만나 소원을 빈 자일 텐데도, 나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때문에 나도, 심지어 그 자신도 남자를 본명 대신 '유다'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더이상 이 유다와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나는 그를 애써 무시하며 곁을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등 뒤에서 남자가 어색하고 과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런 뮤지컬 대사처럼 번드르한 말, 무대 위에서나 하시지그래?"


 이제 두 번 다시 이 남자를 만날 일이 없기를. 그러나 매번 그랬듯이 나는 또다시 이 남자를 어디선가 마주칠 테고, 내키지 않아도 또다시 신세를 져야만 할 거다.


 이것은 여신과 유다의 이야기다. 일방적으로 사랑받는 나와,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그의 영원한 쳇바퀴돌리기다. 이 연쇄가 끝나는 날, 나도, 그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리라.


 신은 자살할 수 없다. 누군가 니체처럼 내게 사형선고를 내린다면, 나는 기꺼이 그 영원한 휴식을 받아들이리라. 별 대단한 일은 아니다. 내가 없어져도 세상은 그저 조금 더 불안해지고, 조금 더 살벌해질 뿐일거다. 지금 세상에 있어 그 변화란 정말 극히 미비한 정도가 아닐까?


 때문에 나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빈다. 제발 오늘 밤에는 아무도, 소원을 빌러 내게 찾아오지 말기를.


=========================================================

 다소 우중충한 결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쨌거나 주인공들이 해피 엔딩을 맞았으니 괜찮겠...죠? ㅎ;

 이러니저러니 해도 <발큐리아!>까진 어찌어찌 완결을 보네요.
 인수인계가 늦어지다보니 정시출퇴근을 하고 있습니다만, 과연 언제까지 이게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해도 일에 어느 정도 적응되고 나면 은근히 자기 하고 싶은 거 할 시간은 날지도 모르겠덥니다만;


 아무튼 그래서, 앞으론 저번 글이나 이번 글같은 고속연재는 못할 거 같네요.
 연재글을 쓰게 된다면 약 1주 내외 터울을 두고 쓰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것도 사정을 봐가면서 더 짧게 주기를 잡을 수도 있고 길게 잡을 수도 있고 하겠지만요.
 새 연재를 하게 된다면, 아직 정해진 건 없지만, 완전히 새로운 얘기를 하게 될 겁니다. 판타지를 쓸지, '이상한 이야기'류를 쓸지는 몰라도요. 그건 또 차후에 예고하기로 하죠 ㅎ

 그동안 글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래저래 부족한 글이었네요.
 다음엔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겠죠? 그렇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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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욀슨 2012.06.11 04:34

    긴 시간동안 달려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확실히 우중충하기는 하군요. 유다 남자도 신경쓰이기도 하고. 

  • profile
    윤주[尹主] 2012.06.11 07:03
    감사합니다~ 결말이나 유다 남자에 대해서는, 이 이상 말하기도 애매하지 싶네요.
    결말 이후에 대해서는 읽는 분들의 상상에 맡겨둘게요^^;
  • profile
    클레어^^ 2012.06.11 07:15
    오호... 끝이네요^^
    미니반님 소설 '횡단보도'도 곧 끝이 나고...;; 대작(?) 소설이 하나둘씩 완결을 내는 군요.
    유다와 이그드라실의 과거가 확실히 궁금해 집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2.06.11 07:38
    두 사람의 과거 얘기라....글쎄요. 막상 이야기로 풀면 재미없을 거 같아서;;
    아마 그럴 일 없겠지만, 혹시나 쓸 만한 얘기가 생각나면 두 사람 얘기도 한 번 적어볼게요 ㅎ

    그리고 제 건 대작은 아니고 저렴한 글.
    30화 육박하는 반님 글 절반 분량 조금 넘네요;; 사실 반님이나 클레어 님 내시는 분량만큼은 나와야 그래도 할 말 없을 때 둘러대는 용 취미 수준은 넘겼다 할 텐데요...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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