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9 06:37

발큐리아! 14화

조회 수 422 추천 수 1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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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흙과 불에서 왔다. 대지의 축복과 신들의 기교, 그리고 거인들의 불씨가 인간을 낳았다. 때문에 인간은 번성하며, 신들을 찬양함과 동시에 그들을 겨냥한 칼날을 몸 속에 품는다.


 여신이 준 생명력과 뒤섞여 들어온 수많은 전승과 지식들 가운데 내가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건 고작 그것뿐이었다. 다른 것들은 가치 있다는 것만을 겨우 짐작할 수 있을 뿐, 내가 의미를 알 수도, 기억할 수도 없었다. 여신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그건 네가 올바른 경험, 올바른 지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 연결되어 온갖 지식과 전승이 너에게 전해진대도 그것을 올바로 해석할 수 있는 경험과 지혜가 네게 없다면 그건 그저 잡음에 불과하다. 빗대어 말하자면, 네게 아무리 대단한 보물이 담긴 상자를 준대도 그것을 여는 열쇠가 네게 없다면 무의미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럼 거인의 불씨에 대한 건,"

 "당연한 게 아니냐. 이렇게 눈 앞에 대면하고 있으니,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눈 앞에서, 불길을 휘감은 호진을 가리키며 여신이 말했다. 인간은 그 안에 신과 세계를 멸망시킬 불씨를 품고 있다. 호진은 그저 자기 안에 있던 불씨를 겉으로 끌어낸 것뿐이란 것까진 이해가 간다. 그러면,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어째서 불을 끌어낼 수 있었는지 알아야 한다."


 여신이 한 말을 듣고 나는 자연스레 시선을 한 곳으로 돌렸다. 어째서 호진이 거인의 불씨를 끌어내게 되었냐고? 그럴 만한 이유를 제공한 사람이 있다면, 세상에 딱 한 사람뿐일 거다.


 "왜, 왜 날 보는데! 난 아무 상관 없대도!"


 혜미는 내 시선을 피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 퍽도 아니겠다.


 "야, 좋은 말로 할때 말해라. 무슨 일 있었지?"

 "무슨 일은 일이야! 아무 일 없었다니깐!"

 "지랄 말고 얘기하라고! 그럼 가만 있던 애가 갑자기 저렇게 미쳐 날뛴다고?"

 "지금은 얌전하잖아...나도 영문을 모르겠다고. 좀 전까지 자기 방에 가만히 있었던 애가 어느 순간 저렇게 변해 버려서..."


 혜미 말마따나, 지금 호진은 불길에 휩싸여 있는 것만 제외하곤 움직임도 없이 넋나간 얼굴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현관 문짝을 날리고 우리를 발견한 후로, 호진은 어째선지 꿈적도 않고 망부석처럼 있었다. 그 잠잠함이, 언제 터질지 모를 휴화산을 보는 것처럼 불안하게 느껴졌단 건 굳이 말로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호진은 그대로 놓아두고, 나는 계속해 혜미를 추궁했다. 자칫 잘못 건드렀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자기 방에 있기 전엔, 그땐 뭐했는데?"

 "아, 모른다고! 잠이나 자고 있었겠지! 하루 온종일 방 안에 들어가서 밖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던데!"

 "호진이는, 평소에도 그렇게 자주 방 안에 처박혀 있었느냐?"


 이번엔 여신이 혜미에게 질문했다. 혜미는 그렇다고 답했고, 여신은 잠시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나는 꼼짝도 않고 있는 호진을 힐끗 쳐다보았다. 보통 불꽃과는 달리 새하얀 화염에 둘러싸인 호진은 아무런 감정도, 기척도 읽어낼 수 없는 멍한 표정을 하고서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나 혜미를 보면서 호진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렇지.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된다."


 여신이 돌연 얼굴에 화색을 띄고서 입을 열었다.


 "뭘 알았단 거야?"

 "들어 보거라. 이번 세계의 위기를 가져온 건 다른아닌 호진이다. 저 애가 세상을 멸망시킬수도 있다는 거다."

 "그것쯤은 보면 알아!"

 "계기가 무엇이었는진 몰라도, 호진이 저렇게 된 건 분명 그젯밤부터였을 것이다."


 그젯밤이라면, 틀림없이 내가 호진과 여신을 처음 만났을 때다.


 여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생각을 아는 양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바로 그 날이다. 그 날 호진은 평소라면 자기가 결코 하지 않을 만한 행동을 했다."

 "그게 뭔대?"

 "한밤중에 집에서 빠져나와 내게 와서 소원을 빈 것 말이다."

 "?"

 "징후가 있었단 말이다! 생각해 보거라. 저 애 성격이라면 자기 방 안에서 혼자 기분을 풀거나 하지 결코 남에게 이야기를 한다거나 소원을 빌지는 않는다. 하지만 호진은 그날 밤 내게 와서 소원을 빌었다."

 "그냥 우연 아니야?"

 '우연히 그 밤늦은 시간에 집을 나와 한참 떨어진 남의 학교 안까지 들어와 소원을 빈다고?"


 하긴 그건 말이 안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납득하는 동안, 여신은 다음 얘기를 계속 이어 했다.


 "하얀 불꽃은 절망의 불씨다. 어느 정도 무르익을 때까지는 기본적으로 무해한 감정이다. 저 정도까지 커진 건, 그전까지 꽤나 억누르고 있었던 거겠지."

 "억누르고 있었다고?"

 "한 가지 떠올려볼 게 있다."


 여신은 문득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호진이 내게 빌었다는 소원,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느냐?"

 "지 누나랑 전처럼 잘 지내고 싶다, 그런 거였잖아."

 "사실 그 말 때문에 우리는 오해하고 있었던 거다. 전처럼 잘 지내고 싶다, 란 말은 '전엔 잘 지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의미지 않느냐? 그러니까 그 말을 들은 우린 자연스럽게 이 혜미의 행동이 과거와 무언가 바뀌었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 때문에 나는 이 혜미가 세계를 멸망하게 하는 게 아닌가 했던 것이다."

 "어째서 내가 그런 짓을 하는데!"


 혜미는 기가 막히단 듯 혀를 찼다. 여신은 그런 혜미를 슬쩍 한 번 쳐다보더니 다시 말을 계속했다.


 "하지만 사실은 어땠느냐? 세계를 멸망시키려 하는 건 혜미가 아니라 오히려 호진이었다. 그로서 호진이 전에 한 말은 거짓이 되어 버린다. 이게 무슨 의민지 알겠느냐?"

 "복잡한 소리 집어 치우고 결론만 말해!"

 "그래,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잖아!"

 "알았다. 호진은 이렇게 말했다. '전처럼 잘 지내고 싶다.' 이게 거짓이라면, 호진의 진심은 과연 무엇이겠느냐?"

 "전처럼 잘 지내기 싫다?"

 "그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한가지 더, 또다른 가능성이 있다."

 "..."


 혜미가 무언가 눈치챈 듯 입을 다물었다. 무엇을 말하는 거지? 골똘히 이것저것 생각해 보려 했지만 좀처럼 떠오르는 게 없었다. 내가 대답을 떠올리기 전, 여신이 먼저 답을 말했다.


 "전처럼 잘 지내기 싫다, 가 진심이 아니라면, 어쩌면 이게 진심인 건지도 모른다. 실은 이전부터 호진은 혜미와 잘 지내본 적이 없었던 거다."

 "그게 무슨 뜻이야?"

 "학대...였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심한 괴롭힘을 당했던 건지도 모르지."

 "참 나, 듣자듣자하니까 어이가 없네."


 여신이 한 말에 혜미가 발끈해 끼어들었다. 나와 여신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으면서도 혜미는 조금도 주눅들지 않은 눈치였다.


 "괴롭혔다고? 학대라고? 내가? 호진일? 웃기지도 않아. 내가 왜 쟤를 건드리는데?"

 "그럼 내가 전에 본 걔네들은 뭔데? 네가 애새끼들 시켜서 손봐주게 한 건 괴롭힌 게 아니고?"

 "난 호진이를 이유 없이 괴롭힌 적 없어. 애정. 그래, 남매간의 애정으로 대해준 적이 있다면 또 모를까."


 천연덕스럽게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더니, 혜미는 갑자기 나를 무섭게 쏘아봤다. 그 애의 입에서 새어나온 말에 나는 할말을 잃고 실소를 내뿜어야 했다.


 "이렇게 된 건 전부 너 때문이야! 너만 끼어들지 않았어도 우린, 아무 문제도 없었을 거란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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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화입니다. 결말까지 느긋하게 가죠 ㅎ;
 잘하면 이번 주말 마무리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
  • ?
    츤데레 포인트걸 2012.06.09 06:37
    따, 딱히 윤주[尹主]님이 좋아서 10포인트를 지급하는건 아니야!!
  • profile
    욀슨 2012.06.09 07:06
    저런 누나가 있었다면 참 소름끼쳤을 것 같네요. 잘 봤습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2.06.09 08:14
    저런 누나 있을 리 없겠죠...보통은;
  • profile
    클레어^^ 2012.06.09 07:56
    겨, 결론은 호진이 만약 혜미를 죽여도 아무 잘못은 없다 이말이군요...;;
    결말이 궁금해지네요^^
  • profile
    윤주[尹主] 2012.06.09 08:13
    머, 변호할 여지가 없는 캐릭터긴 하지만...;;
    어쨌건 내일 분량을 기대해 주세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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