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8 07:54

발큐리아! 13화

조회 수 389 추천 수 1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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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미네 집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어쩐지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대낮인데도 불길한 안개가 사방을 뒤덮고 있었다. 뒤따라온 여신이 안개낀 골목을 둘러보며 중얼댔다.


 "이 안개는 '미혹'....분명 그 녀석 짓일테지."

 "그 녀석?"


 을씨년스런 기분을 떨쳐내려 일부러 큰 소리로 말을 걸었지만 여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안개 속을 헤치고 혜미네 집 가까이 왔을 때, 맞은편에서 희뿌연 사람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발소리가 마치 다급하게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부산하게 들렸다.


 "누구야!"


 걸음을 멈추고 먼저 상대방을 향해 말을 걸었다. 내가 다가오고 있단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지 상대는, 내 목소리를 듣더니 깜짝 놀란 듯 발걸음을 멈췄다. 나 역시 잔뜩 긴장한 채 주먹을 쥐고 상대방을 노려보았다. 안개 때문에 상대가 누구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적인지, 혹은 같은 편인지. 상대방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좀처럼 움직이지 않으려는 듯했다. 내가 조바심을 내며 한 발짝 조심스럽게 앞으로 내딛은 순간, 상대편에서도 움직임이 있었다. 내 것보다 훨씬 빠르고 과감한, 그래서 위협적이기까지 한 움직임으로 상대는 내 앞까지 일직선으로 돌진해왔다. 상대 모습을 알아보기도 전에, 나는 반사적으로 상대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펑.


 "꺄악!"


 무언가 맞았다, 란 느낌이 전해지는 순간, 상대의 가녀린 비명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어쩐지 낯이 익은 목소리라 생각해 상대를 확인하는데, 나로선 전혀 기대하지 못한 인물이라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윤혜미?"

 "나순정? 아야야..."


 벌겋게 부어오른 뺨을 만지며 표독스런 시선을 던지는 건 다름아닌 혜미 본인이었다. 예기치 못한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안간힘을 썼다.


 "왜 갑자기 튀어나오고 지랄이야! 뭐하러 나왔어? 호진인 어쩌고?"

 "몰라, 난 아무것도 모른단 말야!"

 "애새끼처럼 질질 짜지 말고 말을 하라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데? 혹시 이거 다 전부 네가 벌인 짓이냐?"

 "내가? 뭐하러! 난 아니야! 그저....난 그러니까..."


 어째선지 혜미는 평소답지 않게 횡설수설해댔다. 그러다 문득 내 곁에 있는 여신을 발견하고는 눈을 뒤집고 그 애에게 달려들었다.


"얘! 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 얘 맞지? 이제 필요 없어. 소원 따위 안 들어줘도 되니까 난 그만 빼줘. 저런 걸 상대하라니, 난 싫단 말야!"

 "아 거 참, 더럽게 징징대네! 네가 애새끼야! 닥치고 가만 안 있어!"


 내가 버럭 성을 내자 혜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다물었다. 잠자코 그 모습을 보던 여신이 뒤늦게 말을 건넸다.


 "안됐네. 한 번 소원을 빈 이상 물릴 수는 없다."

 "어째서! 부탁이니까 제발 물려줘. 한번만! 저런 것과 상대하려면 목숨을 걸어도 모자랄 거 아냐!"

 "그렇다면 목숨을 걸면 되지 않느냐."

 "뭐라고?"


 여신이 한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 혜미가 되물었다. 무리도 아니다. 나도 이제야 겨우 저 여신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고 생각하니깐.


 여신은 혜미에게 다시 한 번 말했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세상을 구하라고 말했다. 무리인 소원을 부탁하려면 그 정도 각오는 했을 거 아니냐?"

 "그게 뭐야? 무리인 소원이라고? 무리라고 생각했으면 부탁하지도 않았어! 각오? 그딴 게 필요했으면 네가 먼저 얘기해 줬어야 하는 게 아니니? 요즘 세상에 그런 건 상식 아냐?"

 "어이구, 그러세요? 내 참, 보자보자 하니까. 누가 들으면 백화점에서 물건 사면서 지랄지랄하는 건줄 알겠다, 이 X년아?"


 보다못한 내가 끼어들자, 혜미는 내 쪽을 보고 눈을 흘겼다. 그 꼴사나운 모습에 나 역시 뚜껑이 확 열렸다.


 "뭘 꼴아봐, 개잡년아! 왜, 지랄같냐? X같냐? 상식? 무리인 줄 몰랐어? 그딴 걸로 따지고 들 거면 애초에 남한테 빌질 말았어야지. 아니면 너 좋아하는 홈쇼핑에서 주문하던가. '저기요, 평생 놔두고 기를 만한 말 잘 듣는 남동생 있어요?', 하고. 꼴값하고 자빠졌다, 진짜. 넌 애새끼가 뭐 하나 잘 봐줄 구석이 없냐?"

 "미친 년, 내가 뭐하러 너한테 잘보이는데?"

 "시발새끼가, 야! 한 대 더 맞을래? 아유, 진짜...."


 주먹을 보이며 윽박지르자 혜미는 금새 입을 닫았다. 저딴 게 일진이라고... 그 한심한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속에서 절로 천불이 일었다.


 "야, 됐고. 네 동생 새끼 어딨냐고?"

 "신경 꺼! 내가 알 게 뭐야. 그런 새끼."

 "이게....아 됐다! 내가 그냥 들어가 보고 말지."

 "...야! 나순정!"


 혜미를 내버려둔 채 집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멀뚱히 보고 있던 그 녀석이 갑자기 내 이름을 불렀다.


 "왜?"

 "넌 머하러 들어가는데? 저런 말 들으면 불안하지도 않니? 진짜 목숨이라도 걸어야 하면 어쩌려고 그래?"

 "아, 그럼 애당초 애새끼 잘 챙겨서 같이 나오던가! 겨우 지 하나 몸 빼서 나온 주제에 지랄 병을 하네, 진짜!"

 "그게 아냐! 호진이는,"


 혜미가 무언가 말하려 했을 때, 마침 나는 현관 문 손잡이를 붙잡고 있었다. 별안간 손잡이가 뜨거워져서 앗, 하고 손을 떼었더니, 뒤이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안에서 폭발이라도 한 것처럼 떨어져나갔다. 그 바람에, 현관문 앞에 서 있던 나도 꼼짝없이 공중에 몸이 붕 떴다가 그대로 정원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꺄아아아!"


 혜미년이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며 허겁지겁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담벼락에 거의 처박힌 내 주위에 온갖 휘어지고 떨어져나간 건축재들의 파편들이 있었다. 떨어져나간 현관문 역시 나와 채 2, 3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떨어져 담벼락에 커다란 균열을 냈다.


 일어나보려 했지만, 팔다리가 힘이 풀린 것처럼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딘가 크게 다치기라도 한 걸까. 몇 번이고 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여보려 하지만 사지가 마치 남의 것인양 꿈쩍을 하지 않는다. 순간 어째선지 머릿속에 가장 처음 떠오른 건 다름아닌 여신의 모습과 이름이었다.


 "이그드라실!!"

 "네가 원하는 대로, 일어나 네 발로 걸어라!"


 여신이 대답하는 소리와 함께, 손끝으로부터 서서히 힘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몸을 비틀어가며 담벼락에 기대어 어색하게 몸을 일으킨 뒤, 조금 전 폭발이 일었던 현관 쪽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왠 커다란 불꽃 하나가 일렁이는 게 보였다. 아니다. 저건 불꽃같은 게 아니다. 다만 누군가 불씨를 휘감고 타오르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누나...어째서, 나를..."


 불길을 휘감고 있는 호진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대낮인데도 짙게 덮인 안개를 살라먹을 기세로, 호진을 둘러싼 불길은 탐욕스럽게 이글거리며 불타오르고 있었다.


 비상식적인 장면을 앞에 두고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는 사이, 여신의 목소리가 작지만 분명하게 내게 들려왔다.


 "보아라. 저것이 바로 세계를 멸망시킬 우리의 적, 거인의 불씨다."


==============================================

 최종보스 등장입니다.
 여태껏 <발큐리아!> 진행하면서 여러 가지가 바뀌었지만, 최종 상대가 호진이란 것만은 버리고 싶지 않더군요;

 이제 이 떡밥을 어떻게 회수하느냐가 문제겠죠? ;;
 그럼 다음 화에 뵙겠습니다^^;
?
  • profile
    욀슨 2012.06.08 08:02

    무스펠하임의 왕이군요.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이야기, 다음 화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
    츤데레 포인트걸 2012.06.08 08:02
    따, 딱히 욀슨님이 좋아서 10포인트를 지급하는건 아니야!!
  • profile
    윤주[尹主] 2012.06.08 08:11
    다음 화에서 해당 설정 이야기를 조금 적을게요. 오해가 있으시면 곤란하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 profile
    클레어^^ 2012.06.08 08:02
    호오~. 결국 호진이 뚜껑 열린 건가요? 아니면...;;
  • profile
    윤주[尹主] 2012.06.08 08:12
    이 얘기도 다음 화에...생각해보니 요즘은 이런 댓글밖에 안 달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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