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3 04:41

발큐리아! 10화

조회 수 507 추천 수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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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미가 손가락으로 부리는 애들 중 하나를 잡아 족쳤다. 처음엔 '혜미한테 걸리면 죽는다'느니 되도 않는 소리를 해대던 녀석은, 겨우 나한테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은 후에야 입을 열었다.


 "내가 말했단 얘기 하지 않을 거지?"


 헤어지면서 녀석은 그렇게 내게 물었다. 물론 내가 말하는 일은 없을 거다. 그러나 저 녀석이 엉망이 된 자기 얼굴에 대해 혜미에게 둘러대려면 아마 골치 좀 꽤나 아플 것이다. 건성으로 말하지 않는다, 고 답하곤 몸을 돌려 나왔다.


 열쇠는 모두 모였다. 이제 필요한 건 오로지 내 스스로 결정하는 것뿐이다.


 "내가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세계는 멸망하는 거냐?"


 호진과 혜미를 본 이후 계속 내 옆에 붙어 다니는 여신, 이그드라실에게 물었다. 여신은 당연히 그렇다고 답했다.


 "증거는?"

 "뭐라고?"

 "내가 네 말을 믿을 증거 말야. 혜미 그 년을 두들겨패지 않으면 세상이 멸망한다는 거, 넌 증명할 수 있어?"

 "두들겨패야 한다고 말하진 않았다만....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세상이 망하는 건 분명하다."

 "그러니까, 그걸 증명해 보라는 거 아냐, 새꺄."

 "조건없이 믿는 자가 구원받는 법이다."


 여신은 뜬금없는 얘기를 꺼냈다. 어째서 내 질문과는 상관없는 그런 얘기를 꺼냈는지 캐물을 새도 없이, 여신은 계속 자기 말을 이었다.


 "조건 없이 믿는 자만이 진짜 헌신을 한다. 진심어린 헌신이 아니고선 누구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없느니라. 자신이 원하는 건, 다른 누구라도 원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지금 그게 무슨 상관..."

 "지금 네가 바라는 게 무어냐? 세상을 구하는 것이냐? 아니면 그 호진인가 하는 애를 구하는 것이냐?"


 여신은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내가 어떤 대답을 할 것인지 기대하면서 그 작은 여신은 내 눈을 뚫어져라 보았다. 정작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는데도 말이다.


 "제길...모르겠다고, 진짜..."

 "너는 내게 세상이 멸망한다는 증거를 물었다. 그건 잘못된 질문이니라. 왜냐면 질문하기 전에 너는 이미 그 증거를 믿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무언가 증거를 대면, 너는 그것이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할 거다.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너는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 핑계를 마련할 수 있겠지. 진심으로 네가 내 말을 믿을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사실은 증거 따윈 물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여신의 말이 옳았다. 난 아직 여신의 말을 믿을 마음도, 세상이나 호진이를 구할 마음도 없었다. 여신이 무언가 증거를 댔다면, 그걸 받아들일 수 없단 핑계로 그애 말 무엇이건 믿지 않겠다고 했을 것이다. 여신은, 그 영악한 꼬맹이는 이런 내 마음을 먼저 알고 미리 도망칠 길을 막았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여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째서 그 혜미란 애를 여지껏 가만히 둔 것이냐? 너라면 주먹질을 해서라도 그 여자애가 방약무인으로 날뛰는 걸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째서 그 애 앞에서 유독 꼬리만 개처럼 있었던 것이냐? 선생님들 총애를 받는 녀석이라서? 학급 반장이라서? 그런 이유는 아니지 않느냐?"

 "아, 씨. 그럼 날보고 어쩌라고!"


 마치 여신이 해묵은 상처를 들쑤신 양 화를 냈다. 잊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기분이 나빠져서, 어느샌가 나는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주저리주저리 예전 일들을 털어놓고 있었다.


 "그 새끼 때문에 감방간 새끼들도 있어! 얼굴 생긴거 믿고 선생들한테 아양이나 떨고, 애들 앞에선 지멋대로 꼴값떠는 거 못 봐주고 덤볐다가 피본 새끼들이 한 둘이 아니라고! 우린 할 말 있으면 그 새끼 하나 선에서만 끝을 내. 근데 혜미 그 더러운 새끼한테 덤비면 우리만이 아니라 가족들, 친척들까지 끌고 들어와 작살을 낸다고!"


 내가 일진이었을 때, 내 아래 있었던 애들 한둘이 그렇게 혜미랑 얽혀서 징계를 받거나 법정까지 갔다. 혜미 그 년을 손봐줘야 한다고, 그 애들한테 넌지시 말한 건 나였다. 혜미년은, 그걸 알면서도 일부러 직접 자기에게 덤빈 녀석들만 처리해 버렸다. 사회봉사를 하는 애도 있었고, 어마어마한 합의금을 문 애들도 있었다. 소년원에 들어간 녀석도 있었다. 물론 걔네 모두 퇴학당해 이제는 학교로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한다.


 유독 내 말을 따랐던 애들이 그 꼴이 나자, 더 이상 혜미에게 얽히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혜미년 손을 좀 봐준다는 녀석들이 간혹 있었지만 그때마다 얼버무리거나 타일러 말렸다. 그런 식으로 몇 개월인가 흐르니, 더이상 내 아래 남아있는 애들이 없었다. 모두 혜미 눈치만 본다. 나 역시 그런 상황에 단 한 번도 적극적으로 불만을 표출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식으로, 혜미는 암묵적으로 전교 일진이 되었다.


 "그래서, 네 자신은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이냐? 그 혜미란 년을 이대로 가만히 놔둘 참이더냐?"


 여신이 다시 같은 질문을 했다. 나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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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페이스를 늦춰 봅니다. 저번 화까지 좀 진행이 빨랐지 않나 싶네요; 이것저것 풀어야 할 얘기도 남았고요.

 이번에도 완결까지 하면 약 15화 안팎이 될 거 같습니다. <이그드라실!>보단 짧게 끝나리란 생각이 드네요.
 그러면 내일쯤 또 다음화를 올리겠습니다. 주말 저녁 잘들 보네세요~
?
  • profile
    클레어^^ 2012.06.03 07:06
    흐음... 설마 소원이 '혜미를 죽여달라' 이러는 건 아니겠죠, 순정양?
  • profile
    윤주[尹主] 2012.06.03 08:19
    ...그건 생각못했군요;

    내일 올리기 전에 한 번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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