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1 07:22

발큐리아! 9화

조회 수 479 추천 수 1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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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미 앞에서 호진은 작은 짐승처럼 떨고 있었다. 혜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호진에게 말했다.


 "세상에, 네 꼴 좀 보렴. 엉망진창이잖니?"

 "..."

 "그러게 내가 말했지? 누나한테 숨기는 게 있으면 안된다고 말야."


 혜미가 뻗은 손끝이 호진의 얼굴에 닿았다. 아직 솜털 덮인 보드라운 뺨이 미모사 잎사귀처럼 움찔대며 물러서는 것처럼 보였다. 혜미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목소리를 낮춰 호진에게 말했다.


 "그래, 숨기면 안 되지. 남도 아니고 친남매 아니니?"

 "..."

 "어째서 누나가 한 말을 안 듣는 거야? 내 얘긴 이제 우습다 이거니? 하긴 너도 클 만큼 컸다 이거겠지?"


 호진은 입을 열지도 않고 잠자코 있었다. 혜미는 집요하게 그런 호진을 괴롭히고 그에게 캐물어댔다.


 "이 누나도, 실은 우리 동생에게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어. 하지만 먼저 잘못한 건 너 아니니? 그 한밤중에 나한텐 아무 얘기도 않고 어딜 다녀온 거야? 너 누나가 걱정하리라곤 생각 안 해봤어? 아니, 누나뿐만이 아니야. 누나 친구들도, 얼마나 너를 열심히 찾아줬는데?"

 "..."

 "윤호진. 끝끝내 너 아무 말도 안하겠다 이거지? 도대체 왜 그러는데? 혹시 걔네들 믿고 이러는 건 아니지? 너 도와줬다는 애 말야."


 조금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혜미는, 누군가 호진을 구해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호진을 구한 게 나라는 건 모르는 듯했다. 내가 두들겨 패 쫓아낸 애들을 직접 만났더라면 모를 리 없는 사실이었다. 소식을 알린, 딴 녀석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 두 녀석이 지시대로 호진을 제대로 괴롭히는지 확인하거나, 혹은 멀리서 두 년이 쓰러져 있는 걸 본 누군가가 말이다. 혜미는 우리 학교 짱이다. 손 하나만 까딱해도 부릴 수 있는 애들은 넘쳤다. 소문에 따르면, 아침마다 찾아와 깨워주는 애, 등교하는 동안 가방 들어주는 애도 따로 있다고 할 정도다. 나만 해도 매번 혜미가 보내는 애들과 결과가 당연한 싸움을 항상 하고 있지 않던가.


 지금도 누군가 어딘가서 혜미와 호진 주위를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도저히 무작정 뛰쳐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성질대로 튀어나갔다간 언제 뒤통수를 맞을 지 모른다...


 아니, 사실 그런 건 다 핑계에 불과하다. 나 자신은, 실제로는 지금 이 상황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호진이 혜미의 친동생이고, 혜미가 호진을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에 말이다.


 혜미가 뒤이어 하는 말이 언뜻 들려왔다.


 "걔네가 누군진 몰라도, 어차피 누난 신경도 안 쓸 거야. 왠줄 아니? 걔넨 어차피 타인이니까. 가족도 아니니까. 걔네가 가족처럼 널 잘 챙겨줄 거 같니? 가족처럼 평생 네 뒷바라지 해줄 거 같니?"

 "..."

 "잘 생각해보렴. 누가 널 진짜 끝까지 생각해줄지. 누가 마지막까지 네 뒤를 봐줄지 말야. 아무리 생각해도 내 말이 틀리다, 그렇게 네가 생각한다면 별 수 없지. 대신, 앞으로 매일같이 누군가 널 괴롭힌대도 난 절대 걔네를 말리지 않을 거야. 주먹으로 맞건, 돈을 뜯기건, 팔이 부러지건 이 누난 아무 상관도 안 할 거야. 그러니 네 좋을대로 하렴. 자, 어쩌고 싶어? 얘기해 봐. 괜찮으니까."

 "..."


 호진은 이제 금방이라도 터질 듯 울먹이고 있었다. 끝내 나는 호진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 애는 단순히 괴롭힘당하는 불쌍한 꼬맹이일 뿐인가, 아니면 내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망할년의 동생인 걸까. 나는 여전히 호진을 대할 내 태도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동안 정적이 흘렀을까. 갑자기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흐느끼는 건 호진이 아니라 그 곁에 있던 혜미였다.


 "호진아...누난 진짜, 너무너무 슬퍼."


 흑흑거리며, 눈에 눈물까지 찍어 바르는 그 모습에 구역질이 나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혜미는 여태까지와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다. 윽박지르는 것이 별 소용이 없다고 느낀 탓일까? 교무실에서 선생들을 대할 때처럼 혜미는 있는 애교 없는 애교 다 부려가며 동생을 구슬렸다.


 "내가 얼마나 널 생각해 주는데, 흑흑. 그날도 네가 방에 없으니까, 흑....잠도 못 자고 서성이면서 무슨 일이라도 난 건가, 막 걱정하고....그래도 부모님께 얘기하면 분명 혼날 테니까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혼자 답답해서 진짜...그나마 친구들이라도 있어서....흐윽."

 "..."

 "누나가 그렇게 싫니? 호진아, 넌 내가 그렇게 미워? 진짜로? 넌 한 번도 나나 엄마, 아버지 걱정해본 적 없어?"

 "..."

 "조금 심하게 대했다면 미안해. 그래도 누난...다 널 위해서 그런 거야. 밤늦게 돌아다니다 위험한 일이라도 당할까, 질나쁜 애들한테 끌려다닐까, 평소에도 얼마나 네 생각을 하는데. 그래도 네가 이 누나가 싫다면, 난....흑흑, 어떻게 해야 될지..."

 "...미안해, 누나. 내가 잘못했어."


 기어이 호진은 혜미에게 사과하며 빌기까지 했다. 그런 호진을 끌어 안으며 혜미는 능청스레 우는 연기를 했다. 자기가 무슨 드라마 여배우라도 되는 양, 두 눈 벌게져서 눈물까지 흘리며 입으론 그럴듯한 대사까지 읊으면서 말이다.


 "그래, 호진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다른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아도 돼. 이 누나가 다 알아서 잘 보살펴 줄 테니까. 호진인 다른 사람 말고 이 누나한테만 의지하면 되는 거야. 알았지?"


 더 볼 것도 없었다. 나는 몸을 홱 돌려 두 사람에게서 관심을 끊었다. 뒤따라오던 여신이 내게 물었다.


 "저대로 놔두어도 괜찮은거냐? 넌 이걸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럼 안 괜찮아? 지 누나 만났고, 사과했고, 서로 좋다고 아예 얼쑤 안기까지 하고 있잖아! 아, 진짜. 괜히 따라와서..."

 "그 남자애가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거 아니라고, 너도 알고 있을 게 아니냐?"

 "그게 뭐? 진심으로 미안해한 거건, 어쩔 수 없이 달래려고 미안해한 거건, 그게 뭐가 중요해? 이걸로 쟨 더는 괴롭힘 안 당할거 아냐? 그럼 된 거 아냐?"

 "어째서 호진이, 그 애가 괴롭힘당했다고 생각하느냐?"

 "뻔하지. 밤늦게 널 보겠다고 집에서 나왔으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그 애는 내게 소원을 빌고 싶어했겠느냐? 무슨 간절한 소망이 있길래 저 애가 나를 여기로 불러들였겠느냐?"


 간절히 나무 아래서 소원을 빌고, 여신이 존재한단 걸 믿어야만 여신은 이 세상에 모습을 나타낼 수 있다. 여신이 아직 존재한단 건 호진이 여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뜻이다. 혹은, 여신이 존재한다는 걸 간절하게 믿고 싶어하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망설이는 사이, 여신이 먼저 답을 말했다.


 "그러니까, 여전히 저 소년에게는 바라는 소원이 있는 거다. 그걸 성취하기 위해서라면 이 세계를 반드시 멸망하지 못하게 지켜내야 한다고 믿고 있단 말이다."

 "...그러고보니 아직 저 꼬맹이가 무슨 소원 빌었는지 듣지 못했지."

 "말하지 않았느냐? 누나 친구들에게 괴롭힘당하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그런 얘긴 대충 들었던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쩐지, 난 호진에게 그보다도 중요한 소원이 있었을 거란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한 번 더 여신에게 물었다.


 "그것 말고는 없었어? 솔직히 불어. 알고 있잖아, 넌."

 "물론 알고 있다. 저 소년이 처음 소원, 그러니까 누나 친구들에게 괴롭힘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그에게 물었느니라. 정말 그거면 되냐고, 사실은 다른 더 간절한 소망이 있는 건 아니냐고 말이다."

 "뜸들이지 말고 빨리 불어. 그래서, 뭐라고 했단 말야?"

 "그 애는 조금 고민하더니 이렇게 내게 말했다."


 여신의 대답을 듣고, 나는 기가 찼다. 어째서 이 녀석은 그렇게 중요한 걸 미리 말해주지 않았던 걸까? 왜 이 꼬맹이는 세계를 구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세계를 구하려면 뭘 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은 걸까?


 주위에 뭔가 달라진 사람이 있다면 그 녀석을 찾으면 된다고 여신은 말했다. 지금 막, 내가 여신을 추궁해 들은 호진의 진짜 소원이란 이런 것이었다.


 "'어릴 때처럼 누나와 평범하게 지내고 싶어요.' 그 녀석은 내게 그렇게 빌었다."


 깨달음과 동시에 몸을 돌렸지만, 이미 호진과 혜미는 정류장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두 사람을 태운 버스가 이미 내 곁을 지나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뒤늦게 버스 뒤꽁무니를 보면서 나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고함을 내질렀다.


 "아, 씨발 진짜!"


 멸망하려는 세계든, 아니면 그 속 모를 애늙은이 꼬맹이든, 여하튼 양쪽 다 구하건 삶아먹던 하려면 혜미 그 년을 쓰러뜨려야 한다. 그러자면 저 두 남매가 어디로 가는지를 먼저 알아내야만 한다.


 의외로 해결방법은 쉽게 떠올랐다. 


=====================================================

 내일은 연재 없습니다. 이번 금요일 밤은 산에서 잘 계획입니다;
 1박하고 돌아오면 글 쓸 수 있을지 어쩔지 모르겠지만, 암튼 주말 중에 한 편이라도 글 또 올리겠습니다.

 다들 내일 하루 잘 보내시고요, 나중에 또 뵙죠^^;
?
  • profile
    비욘더 2012.06.01 10:31
    혜미... 무서운 여자!
  • profile
    윤주[尹主] 2012.06.01 16:08

    헉, 비욘더 님 보고 계셨나요;;

    댓글 감사합니다. 그러고보니 그런 명대사가 있었죠;;

  • profile
    클레어^^ 2012.06.02 07:33
    겨, 결국엔 맞짱을 뜬다는 건가요?
    근데 여기에서는 선호나 선예 등은 나오지 않나 봐요?
  • profile
    윤주[尹主] 2012.06.03 04:44
    결말은 생각해 둔 게 있습니다. 그게 맞짱이 될지, 다른 무언가가 될지는 두고봐야겠죠^^;

    저번 글에 나왔던 선호나 선예 등은 나오지 않습니다. 결말을 위해 한 명 정도를 출연시킬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계획에 없네요.
  • ?
    乾天HaNeuL 2012.06.05 18:14
    이거 왠지 근친 분위기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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