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28 18:48

발큐리아! 6화

조회 수 1424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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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정이니?"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더니 부엌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깜짝 놀라 돌아 보았다. 우울하게 쳐진 눈꼬리에 주저하듯 살짝 벌린 입, 안절부절 못해 옷깃을 어설프게 붙잡은 두 손... 하나같이 보는 사람을 짜증나게 한다. 그것은 내 표정을 살피느라 좀처럼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결국 입을 먼저 연 건 내 쪽이었다.


 "왜? 무슨 말 하려고 그러는데?"

 "...아니, 들어오는 소리가 나길래,"

 "그거 아니잖아. 얘기 들었을 거 아냐? 나 학교 잘렸다고."

 "..."

 "아, 진짜 답답해 미치겠네! 왜 할 말 있으면 그렇다고 말을 못해? 엄만 바보야! 벙어리라도 돼?!"


 금방 울상이 된 얼굴로 엄마는 나를 쳐다본다. 그게 내가 당신을 욕한 탓인지, 아니면 자식 새끼 사고 치고 다니는 소식 듣고도 속수무책이라 답답해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왜 멍하니 서 있어? 엄마가 돌이라도 돼? 들어가서 엄마 할 일이나 해!"

 "순정아,"


 엄마는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느릿하고 어쩐지 우울한 목소리가 주위 공기를 한 톤 더 다운시켰다.


 "왜? 뭐 때문에 그래? 혼내려고? 이제와 부모 행세 해보겠다고?"

 "..."

 "더 말할 것도 없어. 나 걔네들한테 사과할 짓도 안 했고, 나 자르지 말라고 사정할 생각도 없어. 엄마도 그럴 필요 없으니까, 아무 상관 말고 가만히 있기나 해. 알았어?"

 "그래도,"

 "아, 그래도, 는 무슨 또 그래도야!"


 화를 내자 엄마는 찔끔 눈을 감는다. 원래부터 그랬다. 당신은 겁 많고, 화낼 줄 모르고, 남들 눈치만 보면서 평생을 살았다. 말수 적고 부끄럼 많은 당신이 어떻게 매일 장에 나가 부두에서 조금 얻은 생선을 파는지 나로서는 모를 일이다. 한 양동이 가져간 생선 다 팔아 치우는 날이 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그래도 매일 몇 마리씩은 어찌어찌 팔고 들어오는 모양이다.


 오늘처럼 대낮에 엄마가 집에 있는 건 드문 일이다. 분명 어디서 소식 듣고 집에 들어와 내가 오기만을 기다린 것이리라.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당신은 나를 기다렸을까? 화라도 내려 했을까? 혼이라도 낼 생각이었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저 양반은 여태껏 단 한 번도 화낼줄 모르고, 혼낼 줄도 모르고 그렇게 살아왔을 테니까.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려는 내 등 뒤에 대고 엄마가 말했다.


 "순정아,"

 "..."

 '엄만 너 믿어."


 대체 뭘 믿는다는 건지, 어째서 믿는다고 말하는 건지... 믿으면 뭔가 해주기라도 할 건가?


 세상에서 가장 믿지 못할 말은, 부모가 자식에게 '믿는다', 혹은 '사랑한다'고 하는 말일 것이다. 자기가 낳은 새끼라서, 혹은 가장 자기와 가까운 사람이라서 더더욱 부모는 자식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없다. 부모가 말하는 '믿는다', '사랑한다'는 솔직한 감정이기보단, 혈연이기에 어쩔 수 없이 할 수 밖에 없는 의무적인 표현이리라....특히나 저 사람에게는 더더욱.


 내놓은 자식처럼 나는 홀로 자랐다. 무책임하게 X 놀려 날 태어나게 한 아빠란 새낀 얼굴 본 적도 없었고, 엄마는 늘 내 눈 닿지 않는 밖에 있었으니까. 내놓아 기른 자식을 이제와 사랑할 수는 없다. 실제로 엄마는 내게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믿는다고는 여러번 말했지만, 그 믿음이란 게 힘이 된 적은 여지껏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건 엄마 당신 삶에서도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그러니까, 나는 그 쬐끄만 여신을, 그녀 얘기를 순진하게 믿고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문득 호진이란, 그 귀여운 꼬마애 얼굴이 생각났다. 그 애는 여신 얘기를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 어떻게 그렇게 남을 조건없이 믿을 수 있는지, 나로선 도무지 알 수 없다.


 나와는 분명 다른 세계에서 사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방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엄마가 다시 집 대문을 나서는 모양이었다. 사람 없는 집구석은 다시 고요함을 되찾았다. 쌓였던 피로가 몰려왔기에 나는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지독한 하루를 잊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다음날 새벽까지, 나는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그 상태로 깊이 잠들어 버렸다.


===================================================

 <발큐리아!> 6화 올립니다.

 처음 계획땐 좀 더 시원시원한 글을 생각했는데, 쓰다보니 우중충한 글이 되어 가네요; 개드립이 없어서 그러나....
 반대로 주제는 점점 더 구체적으로 잡혀가고 있습니다. 몇 가지 에피소드를 거치고 나면, 전편 <이그드라실!>과 이음새도 보다 분명해질 거 같네요. 전편의 캐릭터가 더 등장하진 않겠지만, <이그드라실!>에서 부족했던 게 이번 글에서 조금이나마 채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시간 나는대로 틈틈히 써서 올리겠습니다. 다음 화는 저녁때 올릴 가능성이 높겠네요.
 오늘 하루는 다들 즐겁게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1년에 몇 없는 공휴일이니까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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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클레어^^ 2012.05.28 21:52
    흐음... 가족과 사이도 안 좋고... 성격도 더럽고...
    이런 캐릭터가 주인공인 경우는 좀 드물지 않을까요?
    아직은 아무 일은 없나 봅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2.05.28 22:36
    그런가요? 드라마나 영화 따위에서 자주 있는 주인공 아닌가 하면서 쓰고 있는데요;;

    슬슬 이틀째 이야기로 넘어가면, 사건을 더 진행시켜보려고 해요. 지루한 가운데 꾸준히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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