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23 18:56

발큐리아! 4화

조회 수 424 추천 수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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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으세요, 누나?"


 만나자마자 남자애는 걱정스런 표정을 하고선 내게 물었다. 어떻게 걔가 내 퇴학 얘기를 들었는지 조금 의아했다. 나를 남자애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준 자칭 '여신'이 밝히기 전까진 말이다.


 "에헴, 내가 미리 다 설명해 놨도다."

 "뭘 그렇게 뻐기는거야? 대체 내 얘긴 어디서 들은 거지?"

 "내가 아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 난 여신이다. 뭐든지 알 수 있지."

 "헹, 니가 여신이면 난 하느님이다, 젠장."

 "이 얘긴 벌써 결론나지 않았더냐?"

 "잘 들어, 네가 뭘 했든, 앞으로 뭘 할 생각이든 난 절대 네가 여신이란 걸 인정 못 해! 네 말 따위 누가 믿어줄 거 같기나 해!"

 "후후, 뭐 좋을 대로 하거라. 네가 안 믿어줘도, 대신 저 애가 나를 믿어주는 한 나는 언제까지고 여기 있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뭐라는 거야, 대체."

 "그러니까 여신님 얘기론, 누구 한 사람이라도 자길 믿어주는 사람이 있어야지만 자신이 여기 존재할 수 있대요. 믿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사라져버리고요."


 남자애가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나는 자연스레 그 애를 쳐다 보았다. 처음 봤을 때도 느꼈다. 남자애치곤 작고 아담한 체구에 아직 어린 티가 완연해 예쁘장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체격이 완전히 잡히지 않은 탓인지 몸 여기저기가 전반적으로 동글동글하고 부드러운 선을 그리고 있어서, 옷만 갈아 입히면 남자애인지 여자애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앞서 이 남자애에 대해 소개를 받은 적이 있다.


 "네 이름이 그러니까,"

 "호진이에요. 윤호진. 그냥 호진이라고 부르시면 되요."


 말 안해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잠시 그 애 얼굴을 쳐다보다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너 말야..."

 "네?"

 "혹시 연애인 누구 닮았단 소린 안 듣냐?"

 "글쎄요? 평범하단 얘기는 많이 듣지만요."

 "하긴, 어딘가서 많이 봤을 법한 얼굴이긴 하네."

 "크흠, 내 이름은 잊지 않았느냐? 나는,"

 "아, 알고 있어. 알고 싶지도 않아. 이그 뭔가 하는 복잡한 이름 따위."

 "이그드라실이다! 외우려는 시늉은 좀 해라!"


 길고양이처럼 갸르릉대며 온 몸 털을 세우는 이 녀석은 호진과는 반대로, 여자아이라기보다 개구쟁이 남자애처럼 보인다. 키는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이려나? 일찌감치 더워진 날씨를 반영하듯 반팔, 반바지를 입고 있는 꼬맹이에게선 여성스러움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내가 할 얘기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말야, 이 꼬맹일 믿는 단 건 너도 뭔가 소원을 빈 거지?"


 문득 생각난 것에 대해 호진에게 물었다. 호진의 표정이 일순간에 어두워졌다.


 "왜 그래? 말하기 곤란한 소원이라도 빈 거야?"

 "지금은...묻지 말아 주셨으면 해요. 별로 남들에게 떠벌이고 싶은 얘기도 아니니까요."

 "그럼 어젠? 난 뭐하러 부끄럼을 무릅쓰고 소원을 말한 건대?"

 "잠깐, 잠깐. 각자 사정이란 게 있는 거니까, 너무 캐묻지는 말거라."

 "무슨 사정 말인데? 젠장할, 난 뭐 말하고 싶어서 말했나."

 "이런저런 사정이 있는 법이다. 이 애 사정이라던가, 상담해준 내 직업의식이라거나, 이야기를 진행시킬 작가의 사정이나..."

 "네 얄랑한 직업 의식 따위 봐줄 생각도 없고, 게다가 마지막 그건 또 누구야? 작가? 지랄하네, 알지도 못하는 새끼 사정까지 내가..."

 "스톱! 그 이상 말했다간 연재가 위험하다!"


 크흠, 하고 이그 뭐시긴가는 헛기침을 해 겨우 사태를 수습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당장 밝힐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좋아, 그럼 캐묻지는 않을께. 나도 귀찮은 일 하는 건 질색이니깐."

 "그보다, 누나 학교는 어떡하죠? 정말 그만 두시는 건 아니죠?"

 "아직 퇴학이라고 결정된 건 아니라지 않느냐? 교직원 회의서 결정할 때까지 집에서 근신이라고..."

 "아니, 퇴학 처분 받아도 상관은 없는데?"

 "뭐라고요?"


 내 말에, 어째선지 두 사람 모두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괜히 뻘쭘해서 고개를 돌렸다. 이런 식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을 보는 건 참 오래간만이었다.


 "그렇잖아. 어차피 세상이 곧 멸망한다는데, 학교가 무슨 소용이겠어? 앞으로 이틀? 사흘? 힛, 그동안에 못해본 것들이나 전부 해봐야지."

 "무슨 소리 하는거냐? 세상이 멸망하면 너희도 무사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너희가 그걸 막아야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왜 막아야 돼? 시발, 솔까 이딴 세상 그냥 망해 버리면 좀 어때?"

 "넌 좀 더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느냐?"

 "앙? 좀 더 살아보면, 그러면 세상이 달라지기라도 해? 어차피 세상이 멸망하지 않아도, 난 엄마처럼 시장 나가 생선이나 팔던가, 아니면 어디 골목길에서 지금처럼 똑같이 주먹다짐이나 하고 있겠지. 꼴보기 싫은 년들은 오히려 돈다발을 뿌려 대면서, 대대손손 떵떵대며 살기나 할 거고. 근데 내가 왜 그년들을 위해 세상을 구해야 하는데? 내가 왜 미쳤다고 보상도 못 받을 일 가지고 생지랄을 떨어야 하느냐고, 새꺄!"


 처음엔 화낼 생각까진 없었다. 얘기하다보니, 하필 나도 모르게 혜미 년들 생각이 났고, 한심한 엄마 생각이 났을 뿐이다. 좀 더 그년들을 패주지 못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났고, 내 얘긴 들어주지도 않고 혜미 년 말만 들어준 선생들에게 화가 났던 것뿐이다. 그런데도 난 지금, 엉뚱한 두 꼬맹이에게 그 화를 전부 풀고 있다....어쩌다 이렇게 꼴사나운 인간이 되어 버린 걸까, 난.

 잠시 동안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다. 몇 번인가 걔네들에게 사과하려 했지만 말이 쉽게 나오질 않았다. 그 잘난 허세도 이런 때는 부릴 수가 없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대화 주제를 조금 돌리는 식으로 입을 떼는 게 가능해졌다.


 "애당초, 세계를 구한다고 해도 우리가 뭘 해야 되는지 통 모르겠다고. 그거 먼저 얘기해 주는 게 순서 아니냐?"

 "일단 구할 의사가 있는지 물어보는 게 순서 아니겠느냐?"


 망할 여신같으니, 겨우 의욕을 내 보았더니 한 순간에 무너뜨려 버린다.


 "됐으니까 얘기나 해 보라고. 자꾸 짱나게 굴지 말고."

 "뭐 좋다. 말해 주마. 어째서 이 세계가 위기에 빠졌는지,"


 말을 도중에 끊고, 여신은 나와 호진을 잠시 번갈아 보았다. 어째서냐고 묻기도 전에 그녀는 예고도 없이 자기 말을 다시 이어나갔다.


 "왜 너희 두 사람이 위기로부터 세계를 구해야 하는지도 말이다."


==============================================

 4화 이어서 올립니다.

 개인적으론 아쉬운 소식입니다.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약 4일간 연재가 불가능할 거 같네요. 여기까진 개인적인 용무 탓입니다.

 석가탄신일 이후 입사하게 되면 연재를 어떤 식으로 진행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회사 사정이라던가, 문화라던가 이런 걸 전혀 모르니까 말예요. 가능하다면 지금처럼 매일 연재를 하고 싶지만(물론 업로드 시간은 저녁이 될 텝니다만), 안되도 주말 연재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가능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ㅠㅠ

 상세 일정은 그때그때 맞춰서 조정하겠습니다. 최소한 이 글까진 마무리지을 계획이네요. 물론 글쓰는 것과는 별개로 꾸준히 눈팅은 하겠지만요 ㅎ

 석가탄신일까진 5화 올려보겠습니다.
 어쨌건 이번 화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주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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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乾天HaNeuL 2012.05.23 20:10
    입사하고 나면 아마 시간이 팍 줄겁니다. 야근이 있으면 더더욱. ㅇㅇ;;
  • profile
    윤주[尹主] 2012.05.27 02:45
    ㅠㅠ 어떻게든 되겠죠;; 대충 돌아가는 사정 알게 되면 방법이 생기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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