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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재 특성상 욕설, 비속어 간혹 있습니다. 양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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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따윈 멸망해버리라지, 하고 생각했었다.


 "...아, 시발년. 존나 아프네."

 "지랄말고 구석탱이에 짜져 있어라, 잡년아?"


 머리를 한 대 쳐 줬더니 금새 조용히 한다. 개랑 미친 년은 매가 약이다. 옛말 하나 틀린 게 없다.


 오늘은 셋을 상대했다. 반에서 힘 좀 쓴다는 양아치 년 하나가 다른 학교 애들까지 둘 줄줄이 끌고 와서 시비를 걸었다. 어째서 시비를 거는지도 모르고 나는 걔네랑 싸웠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상처뿐인 승리를 거뒀다.


 이 년들도 내 소문에 대해 모르지는 않을 거다. 나순정. 순정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성격 포악하고 주먹 좀 쓰는 일진, 혹은 광년, 혹은 '미친 개'. 잠깐만, 어째 갈수록 자기비하가 되는 거 같은데?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내게 거스르거나 눈 밖에 나려 하지 않았다. 백전 백승, 과장법이 아니다. 중학교 때만 따져서 골백번은 맞짱을 깐 것 같다. 그 중 한 번이라도 나는 져본 적이 없다. 상대가 누구건, 이길 때까지 달라붙어 싸웠으니까. 애들이 무서워하는 것도 당연하다.


 고등학교에 오니, 상황은 반전됐다. 주위에 누가 와서, 누가 떠나건 별 신경을 쓰지 않는 사이, 엉뚱한 년 하나가 전교 짱이 됐다. 그것까진 별 상관없었는데, 그년은 내가 눈엣가시라도 되는지 계속 이런 식으로 애들을 시켜서 싸움을 붙인다. 뭐, 걸어오는 싸움은 받아주면 그만이니 별 상관은 없다만.


 필요없으리란 건 알지만, 일단 바닥에 드러누운 녀석들에게 충고는 해 둔다.


 "야, 이제 작작 좀 해라? 너네 자꾸 이러면 두 번 다시 못 걷게 다리몽둥이를 확 분질러 버릴테니까, 알았냐? 송사리 년들이 존나 귀찮게 말야."


 대답 대신 신음 소리만 연신 흘러나왔다. 알아 들었으려니 하고 등돌려 가던 걸음을 재촉했다. 늦은 시간 일부러 집을 나선 건 미친년들과 한 판 붙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상선고. 이 주변에선 알아주는 명문고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나는 상선고 담장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원을 빌기 위해서다.


 거기, 웃지마! 양아치 년이면 빌 소원도 없는 줄 아냐?


 아무튼간에, 딱히 뭘 훔치거나 박살내려고 들어온 건 아니다. 그냥 이 학교 존나 커다란 나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소원 하나만 빌고 나갈 생각이다...말하고 나니 참 쪽팔린 짓이다, 싶다. 그냥 돌아갈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돌아가는 것도 폼 없어 보인다. 그렇게 생각해선, 나는 낯선 학교 본관 앞 커다란 상록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까지 해서 빌고 싶은 소원이 뭐냐고?


 ...아니, 말할 수 없다. 낯부끄럽게 그런 얘기 따위 할쏘냐!


 암튼 무엇이건 소원을 빌어준다고 소문이 자자한 그 나무에 가보니, 예상외로 먼저 와있는 사람이 있었다.


 "저기, 누구세요?"

 "어?! 나 말야? 그게 말이지..."


 큰일났다, 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 눈에 띄면 곤란하다. 소문에 따르면, 그 나무에 소원을 빌려면 다른 사람 모르게 해야 효과가 있다고 한다. 거기에 이 녀석이 쓸데없이 내 얘기를 퍼뜨리면 분명 학교에서 비웃음을 살 거다. 누가 뭐라해도 여학교다. 소문은 금새 퍼진다. 학급 애들은 내가 이 오밤중에 뭐하러 남의 학교까지 왔는지 대번에 알아차릴거다.


 상대는 체구가 작은 남자아이였다. 좋았어. 이렇게 된 이상 속전속결이다!


 "저기요? 괜찮으세..."

 "으랴앗!"

 "크헉!!"


 어퍼컷을 맞은 상대는 공중에 붕 떴다가 금새 바닥에 나뒹굴었다. 좋았어, 유일한 목격자는 이제 사라졌다. 만족스런 결과에 나도 모르게 절로 웃음을 실실 흘린 모양이다.


 "그것 참 호쾌한 주먹이로구나. 맘에 들었다."

 "꺄악!"

 "이제와 뭘 또 여자애처럼 내숭을 부리는거냐?"


 여자애 맞거든! 화를 내려던 나는 상대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방금 바닥에 때려눕힌 애도 중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 말을 걸어 놀래킨 애는 그보다도 어렸다. 초등학생, 그것도 저학년 정도일까? 한여름이라는 계절에 어울리게 반팔에 반바지 차림, 거기에 캐릭터가 그려진 샌들을 신고 있었다. 그보다 눈길이 간 건 아이의 머리칼이었다. 잿빛 머리인가 했지만 그보단 창백한 금발 머리라고 하는 게 더 옳지 싶었다. 그런 신비한 색 머리칼이 여자아이 허리춤까지 길게 흘러내려와 있었다. 긴 머리칼임에도 잘 다듬어져 엉킨 구석도 하나 없고 윤기마저 감돈다. 덥수룩하게 기른 자신의 사자머리가 조금 부끄러워졌다.


 "왜 꼬마애가 이 시간에 여기 있는 거야?"

 "꼬마애라니!"


 내 질문에 아이는 화를 냈다.


 "꼬마애가 아니면 뭐야."

 "잘 들어라. 난 말이지, 세계수의 여신 이그드라실이다. 네녀석들의 소원을 들어주러 친히 여기 납셨다, 이 말이다."

 "여신? 너같이 쪼끄만 게?"

 "자꾸 꼬맹이라고 하지 마!"


 갑자기 지면이 흔들린 듯 느껴졌다. 어, 어, 하는 사이 내 두 발은 땅에서 떨어져 1m 정도 떠올랐다. 당황한 나머지 중심을 못 잡고 허우적대다가, 꼴사납게 넘어져 드러누워 버렸다. 그 와중에도 몸은 붕 뜬 채로 바닥에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떠냐, 이제 좀 내 말을 믿을 수 있겠느냐?"


 묘한 말투로 어린애가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아이가 다시 손짓하자, 나는 다시 바닥에 두 발을 딛고 설 수 있었다. 자칭 여신이라는 여자애는 얼이 빠진 내 모습을 보곤 만족스럽게 웃었다.


 "좋다, 좋다. 이젠 차분하게 우리 얘기를 해보도록 하자."

 "..."

 "왜 대답이 없느냐? 궁금한 점이 있으면 뭐든 물어보거라."

 "..."


 저 어린 녀석은 아직 모른다.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말이다. 눈 뜬 채 코 베어가는 세상.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엄마가 매일같이 하는 얘기다. 계속 영문 모를 일들에 당황해하다가,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어째선지 엄마의 그 말이 생각이 났다.


 이번에 코를 베이는 건, 내가 아니라 저 건방진 꼬맹이다.


 "응? 왜 그러느냐? 왜 내 옷깃을 잡는 거냐?"

 "이~자~시이이이익!"

 "이, 이거 놔라! 이거 놓지 못하겠느냐! 난 여신이란 말이다! 천벌이 무섭지도 않느냐!"

 "몰라, 그딴 거! 이 존만한 게, 잘도 날 갖고 놀았겠다!"

 "켁, 이거 놓고, 멱살은 좀 놓고 얘기하자!"

 "하하, 초딩 새끼라고 봐줄 거라고 생각했냐? 누군지 모르겠지만, 너 오늘 아주 잘 걸렸다! 오늘, 이 누나 기분도 참 지랄같거든? 오냐, 너랑 나랑 아예 끝장을 보자그래!"

 "하, 항복! 항보옥!"

 "입 닥치고 가만 있으라고!"


 연신 멱살 잡은 손을 제 손바닥으로 때리며 항복을 외치던 꼬마애는 결국 개거품을 물며 기절해 버렸다. 이제 정리가 끝났다. 여자애를 내려놓고 나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았다. 그만큼 소란을 피웠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어둠이 내린 교정 안은 거짓말처럼 조용해서, 방금 전 소동이 전부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순간, 욱하는 심정에 될대로 되란 식으로 고래고래 악을 질렀다.


 "아 씨발, 내 인생에 태클 좀 그만 걸라고!"


 대답하듯, 학교 주변 어느 집들에선가 일제히 개들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시끄럽다고 다시 한 번 외치려던 순간, 기숙사 쪽에서 랜턴 불빛 하나가 내 쪽을 비췄다.


 "거기 누구야!"

 "이크!"


 당황한 나머지, 무심결에 여자애를 들쳐업었다. 마침 남자애가 막 깨어나려는 게 보여서, 억지로 팔을 붙잡아 끌며 소리쳤다.


 "야! 정신 차리고 뛰어! 걸리기만 해봐, 작살을 내줄 테니까!"

 "아, 저기, 무슨 일인지는 얘기를..."

 "아가리 닥치고 일단 뛰라고!"

 "야, 이 새끼들아! 거기 서!"


 한밤중 남의 학교 선생에게 쫓겨 교문 밖을 향해 달아나면서, 여태껏 이렇게 비오듯 땀을 흘린 건 오랜만이라고 생각했다. 등에 업은 어린애 무게 탓에, 그리고 여전히 정신이 몽롱한 남자애 팔목을 잡아 끌며 억지로 달리게 하는 탓에 혼자 도망치는 것보다 두세 배, 아니 열 배는 더 힘들었지만, 어쩐지 그게 썩 나쁘다곤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깔깔대며 웃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느라 두 눈에 눈물까지 맺힐 정도였다.




 그렇게 즐거웠던 적은 어린 시절 이후론 처음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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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그드라실!>의 후속이라고 할 수 있는 <발큐리아!>입니다.

 설정이나 기본 베이스는 그대로 가져가지만, 인물이나 스토리는 거의, 사실상 전혀 연관되지 않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금 계획으론 이그드라실 여신 하나만 기존 인물이고, 나머지는 전부 새 인물이네요.
 ...물론 지난 번처럼 거의 즉흥적으로 써내는 글이라, 도중에 조금 바뀔 수는 있겠습니다만.

 아무튼 재밌게 보시면 좋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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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 윤주[尹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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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한 인간이 성장해 가는 것은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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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乾天HaNeuL 2012.05.16 19:55
    ㅡ.ㅡㅋ 사실 말하는 거지만 왈큐레란 제목의 만화 혹은 애니가 있었던 거로. ㅇㅇ;;
  • profile
    윤주[尹主] 2012.05.16 20:29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ㅠㅠ 일본식 독법이란 걸 뒤늦게 확인했네요.

    제목 <왈큐레>에서 <발큐리아>로 변경합니다. 사실 4글자 제목을 써보고 싶었어요. <왈큐레아>라고 쓰려다 말았을 정도로요 ㅎ
  • ?
    乾天HaNeuL 2012.05.16 20:42
    음.. 전 그걸 말하려고 한 게 아니었긴 했습니다만... ㅋㅋ
    왜 일본식으로 부르시나 하기는 했습니다. ㅡ.ㅡ
  • profile
    클레어^^ 2012.05.17 05:01
    헉, 살벌...
    이그드라실에게 걸린 이상, 저 날라리는 갱생의 길로 들어가게 될까요?
  • profile
    윤주[尹主] 2012.05.17 07:14
    솔직히 말하자면 주인공의 갱생 여부는 그다지 관심은 없고...;;;
    아무튼 전작만큼만 재밌게 쓸 수 있으면서 부가적으로 연애 요소도 살린 글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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