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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AD]  Prologue
 


 삶과 죽음의 경계는 무엇일까?

 

 죽음이 생명을 앗아가도 그 삶의 전부를 훔칠 수 있을까?
 하늘이 사랑을 끊어내면 두 사람의 인연은 거기서 끝일까?

 

 평생을 침대에 누워 얕은 숨결이라도 뱉고 산다면, 그 삶은 생일까?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한 채 끝까지 뛰어왔다면 그 삶의 가치는 얼마일까?

 

 죽었지만 살아야 하고, 살았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는 이들은
 어디에서 의미를 부여받고 어떤 목적으로 살아야만 하는 걸까?

 

 확실한 것은 어느 쪽이든 이미 인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

 


[UNDEAD]  1. 현월(弦月)의 밤 - 1

 

 

 -……남쪽 엘헤미아와 북쪽 루이즈번의 대립이 지속된 지도 300년이 다
되었다. 엘헤미아는 예전부터 북방정벌을 숙원으로 삼아 수차례 병력을
북진시켰지만 혹한을 견디는 강인함으로 뭉친 루이즈번의 여전사 발키리
와 매서운 기후로 인해 매번 좌절당했다. 엘헤미아는 루이즈번의 겨울여
왕이 과시하는 두터운 북벽을 넘지 못한 채 숙원을 이루지 못했고, 300년
이나 지나버린 세월은 두 나라간 감정의 골만 더 깊게 만들었다. 어떠한
답도 내놓지 못한 채 지겹도록 이어져 온 그 시점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
았던 언데드 프로젝트를 국왕이 강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에 기인
한다. 그로 인해 대재앙이라 불릴 수밖에 없었던……-

 

                                                        역사학자 포스먼 하일의 저서 中

 

 


 인류의 번영이 어디까지이든 이상국가란 없다. 모두가 행복한 꿈의 세상
은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불가능하다. 누군가가 배불러 더 이상
아무 것도 먹지 못할 때, 누군가는 빵 한 조각 먹지 못해 굶어 죽는다. 귀
족의 영애는 평생 동안 사치를 누려도 만족을 모를 것이고 천민들은 그런
생활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삶을 누리다 생을 마감할 것이다. 인류가 아
무리 진보해도 계급의 족쇄와 상극(相剋)의 삶은 변함없이 이 세상에 남
아있는 어두운 면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눈에 보이는 엘헤미아의
수도 엘파하의 번영이 극에 달해 있다 해도 그것이 인류의 완성을 의미하
는 것은 아니다.
 고고한 국가의 수도, 엘파하.
 그 시작점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인류는 어느 곳에서든지
뿌리를 내리고 성장한다. 엘헤미아도 예외는 아니었고 지금 그 성장의 정
점에 달한 곳이 바로 이 곳, 수도 엘파하이다. 엘헤미아에 사는 모든 이들
에 동경의 대상이자 그들과는 격이 다른 이들이 살고 있는 곳. 웅장하고
아름다운 외관과 질서정연하게 놓여있는 건물들 하나하나가 예술작품처럼
그 가치를 더하고, 호화로운 건물들 사이에서 다양하게 자신을 꾸민 사람
들이 길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웃음이 가득하고 즐거운 분위기가 넘쳐흐
르는 엘파하는 많은 면에서 꿈의 세계에 닿아있다. 세상에 이상국가란 없
다하고 인류의 완성이 불가능 하다 한들 그 사실이 지금 눈앞에 보이는
엘파하의 가치를 쉽사리 떨어트리지는 못한다.
 지금 엘파하에서는 한 해를 넘기는 축제 원년제(元年祭)가 벌어지고 있
다. 일주일간 치러지는 이 축제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와 다가오는
미래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 외에도, 엘헤미아의 강력한 권력자들이 한
데 모여 국왕을 알현하는 세력다툼의 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윗세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지 알 길이 없는 서민들에게는 이 행사가 마냥 즐
겁고 행복하기만 하다. 엘헤미아의 부는 나라 전체가 풍족할 만큼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수도에 살고 있는 서민들의 굶주림을 면하게 해
줄 정도는 되었다. 그들은 한 점의 얼룩조차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국왕
을 찬양하며 축제를 즐겼다.
 오늘은 원년제 중에서도 가장 성대하게 치러지는 6일째 밤이다. 마지막
날 오전 10시를 기준으로 축제는 막을 내리며 각 지역의 고위층들은 자기
지역으로 돌아간다. 폐막을 알릴 때 가장 큰 의미를 가진 혈광식(血光式)
이 진행되는데 그 의식은 이 나라 자체라 할 만큼 그 의미가 깊다. 현재
축제를 즐기는 모든 이들은 폐막식에 참석해 그 뜻을 높이는데 조금의 주
저함도 없을 것이다. 축제는 아무런 문제도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
고 모두들 이 아름다운 밤에 취해 있었다. 그건 엘파하의 중심부에 있는
한 남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름다운 밤이군.”

 

 엘파하의 중심부인 궁성 에펠에서도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 바로 이 곳,
세이건의 방이었다. 세이건은 단발이라기엔 좀 더 긴 머리를 아무렇게나
풀어헤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제멋대로 자라난 수염과 함께 야성적인
면모를 더해주고 있었다. 귀족적인 깔끔함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지만
그런 모습이 오히려 야수적인 매력을 풍기게 했다. 그의 방 발코니에서는
수도 엘파하의 전경을 전부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외부 쪽이 전부 개방된
형태로 설계되어 있었는데, 그로 인해 세이건은 축제에 취한 도시 전체를
감상하는 그만이 누릴 수 있는 방식으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찬란한
수도 엘파하 위에 떠있는 초승달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세이건은 와인 한
모금을 입에 부드럽게 머금었다. 명주(名酒) 중에 명주인 30년산 세일로
레이텐이 그의 목구멍을 간질이며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와인이다. 발코니에 서서 아름다운 엘파하를 둘러보
며 진귀한 와인을 마시는 그의 모습이 마치 국왕과도 같았다.

 

 “축제가 한창 무르익었으니까요. 각하.”

 

 하지만 그는 국왕이 아니었다. 세이건은 현재 대장군직을 맡으며 국왕을
보좌하는 엘헤미아 내 최고 권력자였다. 그의 직함을 듣고 있으면 국방대
신쯤으로 생각되기 쉬우나 세이건은 엘헤미아 역사상 유래 없는 문무를
포함한 두 분야 최고봉에 서있는 사내였다. 실제로 그런 지위가 있을 리
없지만 '부(副)국왕'에 버금가는 권력자라 할 수 있었고 현재는 국왕조차
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이렇게 에펠 내에서
도 최고의 명당자리에서 그만의 유희를 즐기고 있었다. 그는 취기 어린
목소리로 가볍게 흥얼거리다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축제 때문에 아름다운 게 아닐세, 튜더.”

 

 세이건의 뒤에 있는 사내는 보좌관직을 맡고 있는 튜더라는 인물이었다.
오직 대장군만을 섬기기에 세이건의 그림자라 할 수 있는 튜더는 군데군
데 새치가 섞인 짙은 회색머리에 깔끔한 정복을 차려 입고 있었는데 얼핏
보아도 매우 엄격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하하하, 이 아름다운 밤을 저런 축제를 즐기는 버러지들과 연관 짓지
말아주게.”

 

 재미라고는 들고 털어서 한 톨이라도 나오면 기적이라 칭해야 될 것 같
은 엄격함으로 무장한 튜더의 인상에 비해 세이건의 웃음과 말투는 무척
경박해보였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걸음과 걸걸한 음색, 그리고 제멋대
로 풀어헤친 옷매무새는 그의 직함과는 달리 굉장히 헐렁하고 가벼워보였
다. 첫 인상만 본다면 그 둘의 직책이 바뀐 것이 아닌가 오인할 정도였다.
하지만 유들거리는 인상과 달리 세이건의 움직임에는 묘하게도 빈틈이 없
었다. 그는 왼손으로 자신의 칼자루를 어루만지며 다시 세일로 레이텐 한
모금을 마셨다.

 

 “자네는 저 밑의 광경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나 보지?”

 

 튜더는 잠시 멍하니 그를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국왕 폐하의 훌륭하신 국정으로 인한 결과물이지 않습니까.”

 

 “훌륭하신 국정이라……. 자넨 역시 재미없는 사람이야.”

 

 “예?”

 

 튜더는 입을 다물고 세이건을 쳐다보았다. 무언가 자신의 대답이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뜻이다. 세이건은 한동안 말없이 와인만을 마시다
빈 잔을 내려놓았다. 튜더가 잔을 채우려 하자 세이건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사람들은 마치 ‘그래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 같지 않나?”

 

 세이건은 의도적으로 한 부분을 강조해서 말했다. 튜더는 영문을 몰라
그의 뒷모습만을 쳐다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원인과 결과를 만들어내는 행동을 하네. 원인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생기는지, 결과를 위해서 원인이 필요한 건지는 몰라도 사
람들이 하나같이 그 것들을 만들어낸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야. 그리고
나는 좋은 원인이 있어야 좋은 결과가 있다고 믿지. 그렇기에 나는 매우
생산적인 원인을 좋아해. 하지만 지금 이 축제는 과연 그렇게 생산적인
행위인걸까?”

 

 세이건은 부드럽게 웃으며 튜더를 뒤돌아보았다.

 

 “이 축제에 참가하는 귀족들이 과연 진심으로 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온다고 생각하나? 천만에. 그들은 국왕이 이 축제를 열었기 때문에 모여
드는 거야. 꿀을 발라놓아서 모여드는 벌떼처럼 말이야. 국왕은 또 어떻
고. 그 분께서 이 시기에 축제를 연 것이 자신의 서민들에게 꼭 열어야
되는 축제를 열기 위해서라 생각하는가?”

 

 마치 리듬을 타듯 말을 뱉어내던 세이건의 억양이 조금씩 높아지기 시
작했다.

 

 “축제란 즐기기 위해서 여는 것이지. 하지만 실제로는 축제를 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거야. 귀족들 역시 축제를 즐기러 오는 것
이 아니라 이 축제라는 것이 열렸기 때문에 오는 것이지. 마찬가지로 국
왕 역시 원년제를 통해서 이 시기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기이기
때문에 원년제를 여는 거야. 백성들은 국왕이 밥상을 차려주니 그를 따르
는 것이고. 모든 게 앞뒤가 뒤바뀐 게야.”

 

 세이건의 눈매는 묘하게 날카로워져 있었다. 뒤돌아보는 그의 얼굴에는
좀 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야수 같은 사나움이 깃들어 있었다. 튜더는
숨이 막혀오는 걸 느꼈다.

 

 “왕이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왕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왕 노릇을
하고 있는 이가 마찬가지로 열 수 밖에 없어서 열어버린 축제 따위가 아
름답다고? 난 그런 식으로 외부적인 원동력을 받아 움직이는 것들을 혐
오하네.”

 

 가볍게 얘기함에도 맹폭한 기세가 느껴지는 언변, 그 내용은 불경하기
짝이 없는 말들이었다. 튜더가 여기서 그의 말에 화를 내지 않는다는 점
에서 그가 맡고 있는 보좌관의 직위가 누구를 향해 있는지 잘 알 수 있었
다. 튜더는 자신 앞에 서있는 이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수도권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아무런 유력한 친지들의 도움 없이 정점에 서 있는
자가 바로 현 대장군 칼 세이건이었다. 오로지 위만을 보고 올라온 그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었고 그 기세는 지금도 위를 향하고 있다.

 

 “이 밤이 아름다운 것은 이깟 축제 때문이 아니라 내가 염원하던 것이
또 한 발자국 가까워졌기 때문이야.”

 

 튜더는 그제야 대장군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2기 언데드가 훌륭하게 완성되었지요.”

 

 “10년을 넘게 투자한 작품인데 그 정도의 성과는 거둬야 하지 않겠나.”

 

 세이건의 미소는 무척이나 순수했다. 그는 직접 자신의 잔에 와인을 따
라 튜더에게 건네주었으나 그는 정중히 사양했다.

 

 “각하를 보좌하는 저마저 취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엄격한 얼굴을 보며 세이건은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핫-! 자넨 정말 재미없는 인물일세!”

 

 본인의 말과 모순되게 웃던 대장군은 잔에 담긴 와인을 단번에 들이켰
다.

 

 

 


 대장군이 궁성 에펠에서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을 즈음 밤하늘을 쳐다보
고 있는 또 다른 이가 있었다. 축제의 밤이 서서히 저물며 사람들이 대로
에서 사라져 갈 때 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사내가 홀연히 나타났다.
그는 세이건처럼 축제와 상관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름에 가려
졌던 초승달이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 모습이 꿈속에서 금방 뽑아낸 듯한
몽환적인 그림을 만들어냈다.

 

 “아름다운 밤이군.”

 

 어떤 우주의 법칙이 역사했는지는 몰라도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는 두
사람이 서로 동 시간대에 같은 말을 하였다. 사내는 검은색으로 된 옷과
후드로 온 몸을 가리고 있었다. 정확하게 정리하자면 그에 대해 아무 것
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을 가린 채 걸어오는 그의 모습은 흡사 사신(
死神)을 본 것이라 착각할 만큼 무척이나 음산해보였다. 달빛을 받아 얼
핏 보이는 날카로운 턱선은 창백하다할 정도의 하얀색이었고 그 속에 도
사리고 있는 눈은 한번 보면 잊기 힘들 정도의 빛을 발하는 붉은빛이었
다. 주변에 남아있던 소수의 사람들이 그의 음산한 분위기에 눌려 자리를
피하고 있었지만 그는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 듯 태연히 걸어 나갔다.

 

 “초승달이 어울리는 밤이야.”

 

 허스키하면서도 묘하게 미성인 그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렀다. 그의
발걸음은 거침없이 궁성 에펠로 향하고 있었다. 궁성 에펠의 정문을 지키
고 있던 경비병들이 그가 다가오는 모습을 포착했다. 흑의(黑衣)를 걸친
사내는 주변의 빛을 빨아먹는 게 아닐까 착각이 드는 괴기한 모습으로 성
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경비병들이 의아함을 느끼며 불현듯 나타난 불
청객을 쳐다볼 때 절반 밖에 보이지 않는 그의 얼굴 밑 입가에 미소가 떠
올랐다.

 

 “시작할 시간이다.”

 

 경비병들은 그 말을 듣지 못했고 그들은 그저 다가오는 상대방을 멈추기
위해 형식적으로 창을 겨누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 말을 들었다 한들 지
금과 같은 것이 ‘시작’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어차피 그
말은 경고가 아니었으니까.

 

 - 콰아아아앙-!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과 함께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그가 걸어오던
대로의 형태가 순식간에 바뀌며 강력한 후폭풍이 사방을 휩쓸었다. 생각
지도 못한 사태로 인해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고 쓰러진 경비병들은 혼이
빠져 중얼거렸다.

 

 “대체 뭐야?!”

 

 그들이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다시 일어났을 때는 그들 앞에 나타났던
흑의의 사내가 사라지고 난 뒤였다.

 

 

 


 “뭐야?”

 

 세이건은 들고 있던 술잔을 내팽개치며 발코니 끝에 섰다. 평상시 그가
내려다보던 엘파하에서 볼 수 없었던 이질적인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엄청난 진동과 굉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축제의 한 장소가 폭발해서
날아가 버렸다. 세이건은 망연자실하며 자신의 눈앞에 있는 광경에 입을
벌렸다. 붉게 타오르는 폭발의 흔적, 파편의 잔재. 그 후에 이어지는 사람
들의 비명, 수많은 소음. 현실적인 감각이 마비되는 풍경이 그의 눈앞에
벌어졌다. 재빨리 정신을 차린 튜더가 신속하게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튜
더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 궁성 내 병사들을 부르려 하는 찰나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 쾅-!

 

 엄청난 폭발로 인해 튜더는 중심을 잃고 쓰러졌고 세이건 역시 발코니
난간을 잡으며 비틀거렸다.

 

 “튜더! 괜찮은가?”

 

 성내에서도 우왕좌왕하며 소란이 일었고, 세이건 역시 정신을 차리기 힘
들었다. 두 번째 폭발은 궁성에서 보다 가까운 지역에서 일어났다. 폭발
진동이 성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였으니까. 뭐지? 이 상
황은 대체 뭐지? 위기감을 감지한 튜더는 급히 일어나 악에 받쳐 소리쳤
다.

 

 “대체 무슨 일인가! 상황을 파악하라!!”

 

 성내 병력들 역시 소란스럽긴 마찬가지였기에 뒤따라 나온 세이건이 튜
더에게 보다 구체적인 명령을 내렸다.

 

 “외부 치안대에게 연락해서 상황파악 후 신속한 보고를 요망. 적의 공
격을 대비해 성내 기사단을 급파해 지원하도록 하라. 문지기들에게 연락
해서 엘파하 전체의 성문을 닫고 병력을 동원해 수색에 들어간다. 그리고
성내 나머지 병력은 궁성 수호에 전념하도록!”

 

 튜더는 신속하게 명령을 전달하러 사라졌고 세이건은 가쁜 호흡을 가다
듬었다. 조금 취기가 올라 있었지만 그는 차분히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히
며 빠르게 생각을 이어나갔다.

 

 ‘공격? 어디로부터?’

 

 대체 누구의 공격인가? 목적은? 목적을 알기 전에 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것은 누구일까? 국왕? 고위 귀족들과 시민들? 세이건은 칼을 뽑아들었다.
답은 간단하다. 그가 지켜야 하는 것은 엘파하 전부이다.

 

 

 


 - 퍼펑-!

 

 세 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역시 성에서 크게 멀지 않으며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지역이었다. 현장에 가장 빨리 도착한 부대는 바함이 이끄는 치안
대 일개 소대였다. 그들이 도착했을 땐 이미 상황이 엉망진창이었다. 바함
은 북방정벌에도 참가했던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대원
들에게 부상자들에 대한 조치와 폭발 현장의 조사를 동시에 진행시켰다.
폭발한 현장 속에는 폭발물의 잔재가 남아있었다. 폭발물을 감식하기 시
작한 대원보다도 바함이 먼저 그 물건을 알아보았다. 이전에 전쟁터에서
쓰는 걸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붉은 빛을 띠는 폭탄은 단 하나
밖에 없다. 그 것은 고성능 폭탄 염뢰(炎雷)의 파편이었다.

 

 “제기랄! 대체 누가 이런 미친 짓을!”

 

 바함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염뢰는 반경 30미터 범
위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박살낼 수 있는 강력한 살상력을 자랑하는
물건이다. 북방정벌을 위해 추운 북부지역에서도 쓸 수 있도록 파괴력을
극도로 높인 폭탄이기에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닌데 벌써 세 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불바다가 되어버린 현장에 급히 살수차(撒水車)를 끌고
와 진압하는 대원들을 보며 바함은 아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수도 엘파하에 테러를 일으키는 종자들이라니?
 대체 이런 폭발물이 어떻게 수도 내로 흘러들어왔단 말인가? 수도 내에
들어오기 위해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며, 특히 요즘 같은 중대한
행사 기간에는 두 말할 것도 없다. 신원이 확인 되지 않은 이들이 성문을
통과했을 수가 없다. 그럼 적은 내부인가? 바함은 사태가 상당히 심각하
다는 것을 직감했다. 공격 목표와 목적은 대체 무엇이지?

 

 “바함 소대장님!”

 

 “그래, 보고하게.”

 

 “생각보다 희생자가 적습니다. 이미 축제가 끝나갈 시점이었기 때문에
피해는 대부분 건물들이었고 다수의 부상자들을 제외하고 사망자는 대여
섯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망자는 순찰을 돌고 있던 치안대원들이었습니다.”

 

 “흠, 그나마 다행인 일이군.”

 

 바함은 까칠하게 자란 자신의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피해사항을 정리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당장 피해사실을 궁성으로 보고하라.”

 

 “네, 알겠습니다!”

 

 전령이 말을 타고 순식간에 달려 나갔다. 바함이 통솔하는 부대이기에
그런 것도 있겠지만 치안대의 움직임은 매우 신속하고 체계적이었다. 그
들의 빠른 보고 체계로 인해 거미줄처럼 이어진 엘파하의 중심부로 순식
간에 정보가 전달되는 것이다. 바함의 소대 뒤로 뒤늦게 달려온 궁성의
기사단이 도착했다. 바함은 레이몬드 소속 제 2기사단장 표식을 하고 있
는 이에게 목례했다.

 

 “어서 오시죠. 치안대 소대장 바함이라고 합니다.”

 

 “레이몬드 소속 제 2기사단장 로하츠다! 적은?”

 

 바함은 속으로 쓰게 웃었다. 피해사항 이전에 때려 부셔야 할 적이 먼저
인가. 용맹무쌍하다는 엘파하의 기사단들 아니랄까봐.

 

 “아직 파악 중에 있습니다.”

 

 로하츠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허, 모르겠단 뜻이군!”

 

 이번에는 바함이 미간을 찌푸릴 차례였다. 바함이 궁색한 변명이라도 해
야 하나 생각할 때쯤에 반바지만 입고 거대한 망치를 든(하지만 덩치 때
문에 그 망치도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구릿빛 피부의 사내 하나가 나타
났다. 일반적인 끝이 평평한 망치와 달리 그가 들고 있는 망치의 한쪽 끝
은 용의 얼굴 모양을 하고 있었고 상당히 뾰족한 형태였다. 한눈에 봐도
일반 망치보다 살상력이 높아 보이는 살벌한 무기였다. 그리고 그 거대한
무기를 무색하게 만드는 탄탄한 근육으로 덮인 몸에는 기묘한 문신이 가
득 그려져 있었다. 전신에 ‘나 위험하오’라고 써 붙인 듯한 거한의 등
장에 바함은 언제부터 그가 현장에 와 있었는지 의아해했고, 보다 참을성
이 적은 로하츠가 먼저 노성을 질렀다.

 

 “자넨 대체 누군가?”

 

 그 순간 로하츠의 목이 날아갔다. 바함은 경악했다. 언제 다가왔는지도,
언제 휘둘렀는지도 모를 망치가 거구의 오른쪽 손끝에 들려 있었고 그 끝
에선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마치 용의 아가리가 로하츠의 목을 집어
삼킨 것만 같았다. 말에 타고 있던 로하츠의 몸이 흐트러지며 땅으로 떨
어졌다.

 

 “캬! 역시 엘파하의 기사들이로구만! 출동하는 속도가 신속하기 그지
없는데? 헌데 솜씨는 그에 못 미치는 것 같은걸?”

 

 거한의 사내가 호탕하게 웃었다. 바함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습격! 습격이다앗-! 모두들 공격하라!”

 

 사내는 방자한 태도로 망치를 휘두르며 사방에서 돌격해오는 적들에게
소리쳤다.

 

 “내 이름은 매튜. 옐카의 가호 아래 오늘 신나게 한 판 놀아보자구!”

 

 

 


 세 번째 폭발 장소에서 바함이 경악을 느끼고 있던 시점과 동시에 첫 번
째 폭발장소에 도착한 그의 동기 브리거는 친우의 감정을 십분 이해하고
있었다. 사태를 파악하려 투입된 치안대원들이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그건 정말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어서 해부학에 능한 어떠한 의사
도 다시 짜 맞추는데 반나절 이상은 고민하게 될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런 면에서 브리거는 바함보다도 불쌍한 상황에 직면했다.

 

 ‘대체 뭐야? 저 괴물은?’

 

 바함이 매튜를 만난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불청객이 나타났는데,
그 불청객은 인간이 아니었다. 아니, 처음에는 분명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차갑게 생긴 사내를 치안대원들이 가로 막으려 하
자 사내는 거대한 늑대로 변신해버렸다. 맙소사! 당황한 치안대원들이 자
신의 몸이 이토록 많은 부분으로 나눠질 수 있는지 깨달았을 때, 그 광경
을 본 브리거는 그대로 미쳐버리고 말았다. 초자연적인 모습에 그가 수용
할 수 있는 한계점을 지나버린 것이다. 평화롭던 축제의 밤이 학살의 피
로 물들기 시작했다.

 

 

 


 “습격?”

 

 “네, 폭발이 일어났던 각 지역에서 습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것도 소수라고?”

 

 “예, 첫 번째 폭발이 일어났던 지역에는 거대한 늑대가, 두 번째 지역에
는 마른 체구의 남자와 여자가 각각 한명, 세 번째 지역에서는 거대한 망
치를 든 거한이 나타나 치안대와 기사단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지금 속수
무책으로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튜더는 책상에 두 팔을 올리며 끓어오르는 열을 삭혔다. 치안대야 그렇
다치고 정예 중에도 최정예로 손꼽히는 엘파하의 기사단원들이 한두 명의
습격을 막지 못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고? 그리고 왠 늑대? 이 무슨
장난 같은 소리인가! 튜더는 급히 작성된 보고서를 거칠게 읽어 내려갔
다. 그리고 그는 냉철하고 현명한 대장군의 보좌관답게 묘한 부분을 발견
했다. 폭발현장에 출동했던 바함과 브리거를 비롯한 각 지구의 소대장들
은 피해의 일부분을 보고 있었기에 짐작할 수 없었지만 모든 폭발현장의
보고를 받은 튜더는 의아함을 느꼈다.

 

 “민간인 사망자가 이렇게 적다고?”

 

 “그렇습니다. 엄청난 폭발에도 불구하고 폭발이 일어났던 시각에는 축
제가 끝났기에 민간인들 대부분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지역이라서 모두 엄청난 사상자가 나올 거라던 처음의 예상
과 달리 축제의 뒷정리를 하고 있던 대원들 40여명 가량만이 희생되었습
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튜더는 의혹을 감출 수 없었다. 폭발의 규모에 비해
피해가 너무 미비하다. 그리고 보고를 받은 후 출동한 기사단을 기다렸다
는 듯이 습격이라니. 한 명이 기사단을 상대한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일단 접어두고라도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았다. 튜더는 신속하게 돌아가는
머릿속에서 한 가지 가능성을 깨달았다.

 

 ‘미끼?’

 

 거대한 폭발로 시선을 끌고 출동한 병력들에게 더욱더 말도 안 되는 상
황을 일으키면서 전 이목을 집중시킨다. 하지만 이 정도로 허황된 연출이
많아진다면 상대방이 노리는 바는 명확하다.

 

 “빨리 궁성 내 수비를 강화해! 바깥이 아니다! 적의 목표는 궁성 에펠
에 있다!”

 

 일반적이라면 이 짧은 시간에 이런 점을 파악하기도 힘들 터, 감탄할만
한 튜더의 판단이 정답이라는 걸 축하해주기라도 하듯 네 번째 폭발이 궁
성 에펠에서 일어났다.

 

 -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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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정신없는 전개로 시작됩니다. 제 스타일이죠.
 예전에 이곳에서 레전더(Legender)라고 , ……똥을 싸지르던 글 쓰
는 거 좋아하던 친구입니다. 기억도 안 나시겠지만, 레전더 자체는 졸작
중에 졸작이라 다시는 집필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번 은 군대 기간 동안 구상했던 언데드(Undead)라는 입니다. 이
번 작품은 졸작이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마찬가지로 싸지르는 걸 좋아한다
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며, 지적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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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망상은 한계가 없지

?
  • ?
    포인트맨 2012.06.02 08:42
    축하합니다. yarsas님은 10포인트 이벤트에 당첨되셨습니다. 글이나 댓글을 작성하시면 빵!빵! 터지는 창조도시 포인트 선물 이벤트!
  • profile
    yarsas 2012.06.02 08:50
    여기에 글을 올리니 엔터 해놓았던 게 전부 붙어버리는 군요;;
    일일히 엔터해서 다시 수정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 빵!빵! 터지는 이벤트는 무엇인가 ㅡㅡ;
  • profile
    윤주[尹主] 2012.06.03 05:02
    아마 메모장에 옮겨 원하시는 대로 편집해 적으셨다 복사-붙여넣기 하시면 게시판에도 그 형태 그대로 적용되어 나올 거에요. 인터넷에 업로드하는 글은 메모장을 거치는 편이 이래저래 좋더라고요.

    아무튼 잘 쓰인 글 재밌게 봤습니다. 첫 화 전개가 정말 좋네요. 끝까지 건필하시길 빌겠습니다^^;
  • profile
    yarsas 2012.06.03 23:55
    관심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윤주님.
    윤주 님 작품도 정주행할게요!
  • ?
    PPESyndrom 2012.06.05 08:09
    재미있습니다. 다른 입에 바른 칭찬은 다빼고나서도 재미있어요.

    고등학교때 보던 판타지소설. 딱 그 느낌.

    앞으로 재미있게 볼게요
  • profile
    yarsas 2012.06.05 09:38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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