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400 추천 수 1 댓글 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UNDEAD] 5. 생과 사에 걸친 자 - 6   

 

 

 

 하이막스의 공격은 시작과 끝이 없었다. 공격의 연계를 종잡을 수가 없
는 동작들이었지만 그 행동의 끝에는 항상 치명적인 파괴력이 담겨 있었
다. 절대적인 파괴가 가능한 자만이 구사할 수 있는 전투방식이었다. 단장
은 다시금 이어지는 그의 공격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응축된 파괴력이
단장 옆에 눈을 쓸어 올렸다. 단장의 재빠른 몸놀림으로도 자신의 흑의가
찢겨져 나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아슬아슬하게 안전거리를 확보한 단
장은 튕겨지듯 앞으로 돌진했다.

 

 ‘창이라는 무기 특성상, 한타만 피하면 거리를 좁힐 수 있다.’

 

 단장의 하이막스의 바람을 왼손으로 잡으며 창 위를 뛰어넘었다. 순식간
에 하이막스의 품 안으로 파고든 단장의 오른손이 번개같이 휘둘러졌다.
정확하게 하이막스의 목을 노려 들어가는 단장의 공격궤도는 놀라울 정도
의 침착성이 없다면 불가능한 살인기였다. 일순 단장과 하이막스의 눈이
마주쳤다. 평온하기 짝이 없는 초록색 눈이었다. 단장은 자신의 마음이 고
요해짐을 느꼈다.
 엇?
 단장은 공격을 멈추고는 즉시 몸을 뒤로 뺐다. 몸을 숙이며 하이막스의
창을 교묘하게 피한 단장은 하이막스의 다리를 걷어차며 뒤로 도약했다.
물론 하이막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일정 이상 거리를 벌린 단장은 방
금 전에 느낀 생소한 감각에 집중했다. 하이막스가 휘둘러진 창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감이 좋으신 선생이로군. 1초만 늦었어도 선생의 목은 날아갔을 것이
오.”

 

 단장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자신이 알기로 이런
감각을 전해줄 존재는 단 하나 밖에 없다.

 

 “방금 그것은……, 설마. 신족인가?”

 

 단장의 말에 이번에는 하이막스가 움찔했다. 무표정하던 그의 눈빛이 조
금 진지하게 변했다.

 

 “이상한데. 선생, 대체 정체가 뭐요? 어떻게 그런 것 까지 알고 있는 것
이지? 신족의 존재를 아는 이는 거의 없는데.”

 

 하이막스의 말을 들은 단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재미없는 농담을
들었다는 투였다.

 

 “해도 해도 너무하는군. 괴물 같은 실력에 괴물 같은 능력을 가진 자가
하물며 신족이라고? 신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축복이라도 받은 건가?”

 

 “이 자의 질문에 대답하시오! 이 자가 신족임을 어떻게 알았소?”

 

 단장은 하이막스의 으름장에도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고개를 돌려 도
주하고 있는 단원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단원들은 꾸준한 속도로 거리
를 벌리고 있었다. 허나 자신이 하이막스를 붙잡아 두지 않는다면 그들이
거리를 아무리 벌린다 해도 의미가 없다. 단원들의 강제수면까지에 제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전체적인 흐름을 살핀
단장은 다시 고개를 돌려 하이막스를 쳐다보았다.

 

 “신족. 고대국가 옐마론의 정점에 섰던 존재들. 신에게 한없는 사랑을
받아 지상 위에 군림했고 그 도가 지나쳐 결국 신에게 버림받은 존재들.
그들의 능력에는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지.
 바로 안력(眼力).
 방금 너의 눈을 쳐다보는 순간 나는 잠깐 동안 너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
을 잊었다. 아마 공격자의 살의를 억제시키는 능력이겠지. 승부라는 것은
잠깐의 틈만으로도 판가름 나는 법. 좋은 능력이다.”

 

 그 말과 함께 단장의 눈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이막스는 당장에
몸이 밀려나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역시 깨달았
다.

 

 “그렇군! 선생도!”
 
 “그렇다. 내가 신족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나 역시 신족이
니까.”

 

 

 


 “단장이야!”

 

 세이지가 기쁨에 찬 소리를 내질렀다. 단원들의 시선이 모두 눈밭 위에
서있는 단장과 하이막스에게로 향했다. 둘은 방금 맹렬한 공격을 주고받
은 뒤 대치 상태였다. 상식적이라면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단장을 지원해
야겠지만 단원들은 그러지 않았다. 엘몬데드에서 인실롭이 다가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의 상황을 해결해줄 수 있는 자는 단장뿐이었다. 전
투본능하면 빠질 수 없는 매튜였지만 그 역시도 담담하게 인정했다.

 

 “우리 전부가 덤빈다 해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단원들 중 어느 누구도 매튜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매튜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지고 보는 린조차도 산을 밀어버릴 것 같은 하이막스의 기세에
는 입을 다물었다. 피트가 단원들을 독려했다.

 

 “단장이라면 알아서 몸을 뺄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빨리 발키리 부대
에 합류하는 게 단장을 돕는 거예요.”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의 눈으로도
먼 곳에서 꾸물거리는 붉은색 무리들이 보였다. 단원들은 단장이 무사히
돌아올 거란 확신을 가지며 달렸다. 그 중 후미에 있던 엘로린이 주저하
며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눈이 닿는 곳엔 조직을 살리기
위한 한 남자의 뒷모습이 있었다. 그녀는 그 남자를 향해 부르짖었다. 고
요하지만 더 또렷하게 들리는 염원을 담아.

 

 -꼭 돌아와요. 단장!

 

 

 


 단장은 엘로린의 텔레파시를 듣고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아직
도 멀었다.

 

 ‘단원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몹쓸 단장이로군.’

 

 단장은 하이막스의 초록색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것은 신족이 남
겨 놓은 또 하나의 잔재였다. 바로 신족의 후예들만이 타고나는 안력. 하
이막스의 청안(靑眼)은 쳐다보는 이에게 마음 속 가득한 평화를 맛보여주
는 비폭력적인 능력이다. 자칫 우습게 여겨질 수도 있는 이 능력은 사실
무수한 전장을 누벼본 이라면 깨달을 수 있는 무시무시한 것이다. 평생을
하이막스를 죽이기 위해 자신의 삶을 쓰겠다 서원한 자라 할지라도 그의
눈앞에서는 그 마음을 유지할 수 없다. 그 눈앞에서 분노나 살의, 증오 등
의 감정은 무의미하다. 엘헤미아에는 매우 드물게 이런 안력을 타고 나는
신족의 후손들이 있다. 자신의 능력을 자각하기 전까지 그들은 자신이 신
족이었는지도 모르며 어떠한 연유로 그 힘을 타고나는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대격세(大隔世)를 통해 그 능력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
는 소수의 후예들이 있다는 것. 하이막스 역시 바로 그런 자였다. 단장의
말대로 하이막스는 신의 사랑을 받아 생태계의 정점을 찍으라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하이막스조차도 오늘 생전 처
음 자신과 같은 동류의 힘을 가진 이를 만났다.

 

 “혈안(血眼). 내 눈동자의 이름이다. 무예로 따진다면 두려울 것이 없는
십인장들조차도 물러서게 만드는 힘이지.”

 

 보는 이를 본능적으로 위축시키게 만드는 힘. 그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
해 상대의 심리를 읽는다. 단장이 탐지능력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누구보
다 빨리 반응하고 탁월한 전투능력을 발휘하게 해준 것도 이에 기인한다.
단장이 하이막스에게 칼을 겨누었다.

 

 “아마 어쩌면 나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너를 죽일 수 있는 존재인지
도 모르겠군.”

 

 자신도 모르게 굳어있던 하이막스가 피식 웃었다.

 

 “짖지 말길 바라오. 겁 많은 짐승이나 그러는 법이니까. 선생이 신족이
라 해도 변하는 건 없소. 그 어느 누구도 이 자의 줄기를 꺾지 못하오.”

 

 그 둘의 시선이 서로에게로 고정되었다. 성난 파도도 잠재울 것 같은 평
온함과 살아있는 모든 것에 생명을 앗아갈 것 같은 두려움이 맞닿았다.
곧 그 둘은 눈밭을 모조리 녹여버릴 기세로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뒤처리는?”

 

 “끝냈습니다.”

 

 루만의 말에 루즈라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회전의자에 앉아있는
그는 루만을 쳐다보지도 않고 연구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질문 좀 하겠습니다.”

 

 “다음에 하면 안 될까? 지금 새로운 프로젝트 때문에 좀 바빠서 말이야.”

 

 “왜 제게 그녀가 언데드임을 말해주지 않으셨습니까!”

 

 “알릴 필요가 있나? 자네가 모든 계획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을 텐데.”

 

 천연덕스러운 루즈라벤의 말에 루만은 분노를 느꼈다.

 

 “어떻게 저한테까지 속이시는 겁니까! 당신들의 계획을 위해 저는 제
몸을 시험대에 올리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도 그랬어.”

 

 루만이 움찔했다.

 

 “아마 자네는 내가 억지로 발렌타인 양을 건드렸다고 생각하나 본데 분
명 한 영혼에 담겨있는 두 가지의 인격이 어떤 연구결과가 나타날지 궁금
했던 건 사실이야. 하지만 나는 방식을 제공한 거지 의지를 강요하지는
않았어. 그녀가 언데드가 되기로 한 것은 순수한 발렌타인 양의 의지야. 
그리고, 그녀가 자네한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더군.”

 

 루즈라벤의 마지막 말에 루만은 가슴이 저미는 느낌을 받았다. 루즈라벤
은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의자를 뒤로 돌렸다.

 

 “지금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록셀 공을 무너뜨리는 것이야. 루만.
록셀 공의 여론조작이 더 큰 힘을 얻기 전에 전쟁준비를 끝내야한다. 아
무리 록셀 공이라 해도 한 번 열린 수문을 닫지는 못할 터.”

 

 루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세이류드 공을 한 번 뜨끔하게 해줘야겠어.”

 

 “어떻게 말입니까?”

 

 루즈라벤이 빙긋 웃었다.

 

 “뻔한 거 아닌가? 권력 싸움에서 가장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요소
는 무력이야. 언데드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아니라면 그 누가 무력의 정
점이라 하겠는가? 오줌 좀 지리게 만들어줘야겠어.”

 

 

 


 하이막스는 자신의 왼쪽 뺨을 스치는 칼에 놀라움을 느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세심한 공격이다. 왼쪽 뺨이 화끈하더니 이내 피가 흐르기 시작했
다. 자신이 상처를 입은 것이 얼마만인가. 단장의 실력은 십인장에 전혀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레이몬드를 죽일 정도였다면 당연한 것인가.’

 

 하이막스의 창이 크게 휘둘러지자 다시 강력한 풍압이 일어났다. 단장은
이 이상 이 싸움을 오래 끌 생각이 없었다. 지난 몇 분간의 싸움은 단장
에게 있어 자연재해와 맞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느끼게 만들었다.
하이막스는 공방의 밸런스가 완벽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오래 끌면 오
래 끌수록 불리해진다. 어떻게든 이 공격의 흐름을 끊어야만 한다. 단장은
성공할 수도 있었던 방금 전의 공격을 다시금 재현해하기로 마음먹었다.
단장은 자신의 능력을 발동시켜 그의 뒤를 잡았다. 하이막스는 허리를 크
게 꺾으며 창을 뒤로 휘둘렀다. 동작이 크다! 단장은 다시 한 번 자신의
능력을 발동시켜 다시금 그의 정면에 나타났다. 뒤를 향해 휘둘러진 창이
다시 앞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약간의 틈이 있다. 단장은 자신의 오른팔을
크게 뒤로 뺐다가 그의 몸을 향해 쑤셔 넣었다. 푸욱! 심장을 향해 노려
들어간 단장의 칼은 미처 다 들어가기도 전에 도로 뽑혀져 나왔다. 단장
은 자신에 북부를 걷어찬 하이막스의 발에 균형을 잃었다. 그의 우람한
손이 단장의 팔을 붙잡았다.

 

 ‘아뿔싸!’

 

 “선생의 능력도 붙잡힌 상태에서는 쓸 수 없지 않겠소?”

 

 하이막스는 자신의 창을 놓았다. 그의 창은 바로 곁에 있는 대상을 죽이
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의 소매에서 단검보다 아주 약간 긴 소태도(小太
刀)가 나타났다. 아마 근접전에 들어갔을 때 결판을 내기 위한 무기일 것
이다. 단장은 붙잡힌 손을 빼내기 위해 뛰어 오르며 하이막스의 목을 걷
어찼다. 하이막스는 그 충격 속에서도 팔을 휘둘렀다. 하이막스의 큰 키와
우람한 체격에서 나오는 파괴력은 어렵지 않게 대상을 갈라놓았다. 단장
이 허물어졌다. 하이막스는 목이 걷어차였음에도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
은 듯 태연했다. 그는 허물어진 단장을 그대로 걷어찼다. 단장의 몸이 잠
깐 동안 떠올랐다가 힘없이 눈밭을 굴러갔다. 그의 뒤로 칼립소의 부대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장! 괜찮으십니까?”

 

 “칼립소 선생.”

 

 “대장! 룸바가 전사했습니다.”

 

 칼립소의 말에 하이막스가 잠시 침묵했다.

 

 “칼립소 선생. 기사단을 이끌고 현월단을 잡으시오. 발키리 부대가 근접
하면 물러서지 말고 전투에 응하시오. 금방 뒤따라 갈 터이니. 가서 우리
잃어버린 형제에 넋을 기려주시오.”

 

 “알겠습니다! 대장!”

 

 칼립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사단을 이끌고 자리를 떠났다. 그의 존경하
는 대장의 말이라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을 아는 그들은 두려움 없이 앞
으로 달려 나갔다. 발키리 부대의 숫자가 아무리 많다 해도 하이막스가
참전하면 전세는 급격히 바뀌게 되어 있다. 칼립소가 곡도를 들어 올리며
크게 외쳤다.

 

 “잃어버린 형제의 영혼을 위해서 숲의 분노를 보여주자!”

 

 강력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하이막스는 아주 잠시 그 모습을 쳐다보다
가 다시 단장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자신이 붙잡고 있는 단장의 오
른팔을 다른 곳으로 집어던졌다.

 

 “멋진 공격이었소. 아마 그 상황에서 이 자를 걷어차지 않았다면 지금
저기 떨어져 있는 것은 선생의 팔이 아니라 목이었을 테지.”

 

 하이막스는 순간 멈칫했다. 그것은 익숙지 않음에 대한 반응이었다. 이
자가 무엇을 놓치고 있지? 하이막스는 자신이 던진 단장의 팔과 쓰러져
있는 단장의 모습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깨달
음은 순식간에 찾아오는 법이었다. 그런 종류의 깨달음은 너무나도 생소
한 것이어서 뒤늦게 깨달을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었다. 단장의 잘려진
팔과 어깨에서 피가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런 하얀 풍경이라면 더더
욱 놓칠 수가 없는! 하이막스는 충격 속에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걷어
차였던 단장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하이막스는 본능적으로
창을 굳게 부여잡았다.
 이 자는 뭔가 다르다.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이질적인 생명체가 하이막스를 쳐다보았다.
붉게 타오르는 붉은 눈이 하이막스의 초록색 눈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단장이 자신의 잘린 어깨를 쳐다보았다.

 

 “이 힘만은 반드시 쓰지 않으려 했다.”

 

 팔이 잘린 단장의 상처 단면에서 시꺼먼 것이 일렁이며 튀어나오기 시작
했다. 피가 아니었다. 하이막스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하며 뒤로 물러났다.

 

 “엘헤미아의 북벽도 공포를 느끼나? 무리도 아니다. 이것은 죽음과 가
장 가까운 모습이니.”

 

 단장은 무릎 꿇은 채로 자신이 걸치고 있던 검은색 후드를 벗어던졌다.
그 안에 입고 있는 옷 역시 검은색이었고 왼손에도 끼고 있는 가죽장갑
역시 검은색이었다. 그리고 단장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것마저도 검은색
이었다. 검은색 찬미자와도 같은 그 모습은 하얀 배경에서 완전히 배척당
한 존재처럼 또렷하게 보였다.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내 능력이 공간이동이라 말한 적이 없다.”

 

 하이막스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나는 생과 사에 걸친 자. 신의 저주를 받아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이
세상 위에 떠돌아다니는 방랑자.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내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세상을 훔쳐보고자 하는 이다.”

 

 단장의 몸 안에서 흘러나오는 검은색의 물체는 고체도 액체도 아니었다.
그 영적인 존재는 흡사 수증기나 연기 같은 형태였다. 검은색 연기는 마
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며 그 부피를 키워가고 있었다.

 

 “지금부터 이곳에 살아있는 생명들을 거두어 가겠다.”

 

 단장의 몸을 뒤덮고 있던 검은색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믐달.”

 

 

 


 붉은색 갑옷을 입고 걸어오는 발키리들의 모습은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부대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위압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2000여명에 달
하는 그녀들은 사소한 잡담도 하지 않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브라말로카
요새를 향해 꾸준히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발키리들
중에서도 그 미모가 빛을 발하는 금발의 여자가 있었다. 눈처럼 하얀 피
부에 푸른색 눈을 가진 그녀는 다른 발키리들에게는 없는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대검에 같은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 문양이 새겨
진 여자가 전선에 나타나면 브라말로카 요새에는 당장에 ‘1급 경보’가
내려진다. 루이즈번의 공주들은 하이막스와 마찬가지로 전쟁에 참여하느
냐 마느냐로 전세를 바꿀 수 있는 막강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존재 중 하나인 루이즈번의 두 번째 공주 사라는 말도 없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녀가 멈추자 명령을 듣지도 않은 발키리 부대 전체가 일사분란하
게 멈췄다. 2000여명에 달하는 인원이 열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멈춰서
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엘헤미아의 야전지휘관들이 왜 북방의
훈련방식을 알아내고 싶어 하는지 설명해주는 대목이었다. 공주를 보좌하
는 아이리스가 갑자기 멈춘 공주에게 질문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공주님?”

 

 사라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그저 미간만 찌푸렸다. 의아해하
던 아이리스는 그녀의 공주가 한 장소를 계속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
았다. 아이리스는 그녀가 쳐다보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해하며 전방을 주
시했다. 그리고 그녀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그것’에 집중했다. 그것은
마치 오로라 같았다. 색깔이 지나치게 까맣다는 것만 제외하면.
 침묵하고 있던 사라가 갑자기 짜증을 냈다.

 

 “저 멍청이가! 저것만은 쓰지 말라고 했는데!”

 

 

 


 브라말로카 요새에 도달한 인실롭은 무너진 복도 때문에 성벽 위로 올라
와야만 했다. 길 안내를 부탁하기 위해 궁수들에게 다가간 인실롭 일행은
그들이 넋을 잃고 바깥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느꼈다.

 

 “나는 십인장 인실롭이다. 대체 뭘 보기에 그러는……, 저게 뭐야?”

 

 인실롭은 잠시 품위도 잊고 입을 벌린 채 그들의 행동에 동참했다.

 

 

 


 세이지가 눈물을 흘렸다.

 

 “단장!”

 

 스캇과 매튜 역시 착잡한 심정으로 단장의 ‘진짜 능력’을 쳐다보았다.

 

 “젠장! 기어코 쓰고 만 건가!”

 

 피트가 다급하게 외쳤다.

 

 “걱정스러운 맘이야 알지만 휘말리기 싫으면 당장 도망쳐야 합니다!”

 

 엘로린은 비를 맞아도 젖지 않던 단장의 어깨를 생각했다.
 세이지는 처음 만났을 때 뛰지 않던 단장의 심장소리를 생각했다.
 스캇과 매튜는 본능적으로 알았던 단장의 이질적인 느낌을 생각했다.
 린은 펠튼 항구에서 정복을 입었음에도 하얀색 장갑을 끼던 단장의 손을
생각했다.
 피트는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떠안은 단장의 능
력리스크를 생각했다.

 

 

 


 그날 발동된 단장의 능력으로 인해 떡갈나무 기사단은 전멸했다. 하이막
스 역시 바람의 능력이 없었다면 같은 운명을 맞이했을 것이다. 하이막스
의 부임 아래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엘헤미아의 북벽은 그들의 관문을
넘는 침입자를 막지 못했다.

 

 현월단은 수도 엘파하에 당당히 테러를 일으켜 오큐벨라스를 훔쳤으며
서해안의 함대를 격침시켰고 엘몬데드와 하이막스라는 두 개의 북벽을 넘
는 역사에 다시 없을 전대미문의 사건을 남겼다.

 

 그들은 그렇게 국경을 넘었다.

 


==================================================================
 1부 끝났습니다. 6월 1일부터 연재를 시작했으니 딱 6개월이 걸린 셈이
네요. 재밌으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모로 의문점이 많이 남는 결말이지요? 처음 구상을 할 때부터 1부에
서는 최소한의 이해를 돕는 것만 떡밥으로 던져주고 2부에서 모든 것을
풀어나갈 수 있도록 계획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너무 정신없게 느껴지지
않았나 잘 모르겠네요. 이런 난잡한 글을 인내심을 가지고 쭉 읽어주신
분들에게 참 감사할 따름입니다.

 

 글을 쓰면서 처음 구상했던 것과 달라져서 수정을 하는 거야 부지기수지
만 가장 큰 변화는 역시 하이막스일 겁니다. 하이막스의 초기설정은 ‘간
지’를 위해서 무게 잡는 캐릭터로 한 번 임팩트 있게 딱 나왔다가 단장
의 능력으로 인해 한 화만에 죽는 불운한 캐릭터였습니다. 하지만 역시
한 화만에 죽이기엔 너무 아까운 인물이라는 생각에 살렸습니다.

 

 최근에 일을 많이 하다 보니 건강이 많이 나빠졌습니다. 12월 달 전체가
기말고사라 2부는 방학하면 연재할 생각입니다. 한 달 정도 휴식 아닌 휴
식 시간을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후기 같은 걸 남겨 보고 싶었는데 별
로 궁금하신 점이 없으신 것 같아 부끄러워서 그냥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질문 사항 있으면 열심히 답 달아드릴게요.

Who's yarsas

profile

 인간의 망상은 한계가 없지

?
  • profile
    yarsas 2012.12.02 02:43
    1부 엔딩 부분이 뭔가 영 후지군요. 나중에 전체적으로 다 손 봐야 겠습니다. 이번 화는 분량이 많아서 쓰느라 좀 힘들었습니다 -_-a..
  • profile
    욀슨 2012.12.02 06:00
    확실히 알자로가 숨기고 있는 게 많다고 느끼긴 했지만, 이건 정말 예상 밖이군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더불어 1부 완결 축하드립니다. 약 한달 뒤에 연재될 2부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profile
    yarsas 2012.12.02 06:23
    이 반전을 위해 1부를 썼다고 할 수 있죠
  • profile
    윤주[尹主] 2012.12.03 09:26
    알자로나 하이막스가, 사람들이 그렇게나 동경하던 신족들이었군요. 알자로의 능력도 포함해서 전혀 예견치 못한 이야기였네요. 정말 1부 모든 이야기가 알자로의 정체로 완벽히 귀결이 되어 보입니다. 이 정도면 하나의 이야기 완결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개인적으로 1부 전체는 소재와 이야기를 전개하 발전시켜가는 능수능란함이 엿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 국면이 바뀌어갈 때마다 갈등 구도가 발전하고, 인물들의 디테일이 살아나고, 소재가 다른 소재를 자연스레 유도하고 불러냈고, 그 결과 이야기 전체 구조가 짜임새 있게 하나의 질서를 이루게 된 거 같아요. 마지막 얘기는 순전히 감으로만 얘기하는 거라서, 자세히 뜯어보기 전엔 확신할 수 없는 거긴 하지만요. 치밀하게 구상하신 이야기고, 그 구상을 100%는 아닐지라도 중요한 부분은 거의 실현하셨다란 판단이 듭니다. 여기서 손을 더 대신다 해도 몇몇 장면 연출과 완급 조절 정도 선에서 수정을 하시게 되겠죠.

    2부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의 이야기가 예상이 됩니다. 급한 일 마무리하시면 다시 또 연재 이어가셨으면 합니다. 그동안 정말 잘 읽었습니다.
  • profile
    yarsas 2012.12.04 08:54
    언데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알자로죠. 이 내용을 처음 구상할 때부터 그가 언데드의 키워드였습니다. 없으면 안 되는 존재죠.

    2부도 기대해주세요 ^^

등록된 글이 없습니다.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제휴문의] | [후원창구] | [인디사이드연혁]

Copyright © 1999 - 2016 INdiSide.com/(주)씨엘쓰리디 All Rights Reserved.
인디사이드 운영자 : 천무(이지선) | kernys(김원배) | 사신지(김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