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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AD] 4. 춘신(春信)의 무장 - 3    

 

 

 

 수도 엘파하에 존재하는 많은 행정기관 중 출입구(區) 관리처라는 곳이
있다. 이름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만 수도의 출입자들을 관리하는
기관이다. 외부인이 수도 엘파하 내부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 지
역 관리처에서 증서를 끊어 와야 하며(사유에 따라 거주 기간이 정해지며
색깔로 신분을 구분한다) 외부로 나가기 위해서도 같은 수속을 밟아야 한
다. 국경을 넘는 것도 아닌데 이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이유는 역
시 한 국가에 수도이기 때문이지만 사실 좀 초라하게도 엘헤미아에는 국
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가 루이즈번 밖에 없다. 기관의 이름이 출입경 관
리처가 아니라 출입구 관리처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출입구(口) 관리처로 오해하곤 한다). 엘헤미아는 각 지방마다 지방색이
강한 편이라 이런 기관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수도 내부에서 외부로
나가는 절차가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것보다는 훨씬 간단하며 상대적
으로 관리도 허술한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궁성 에펠로 들어가는 게 아
닌 바에야 수도 시민들이 매번 수도 밖으로 나갈 때마다 이 수속을 밟아
야 한다면 관리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재난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시
민들에게 흔히 무늬만 행정기관이라고 욕을 들어먹기도 하지만, 모든 조
직이 그렇듯 사건이 터지고 나면 운 없는 소수의 책임자들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좌천되기 마련이고 부하직원들은 사태를 수습하기에 바빠진
다. 이번 테러사건 이후로 같은 수순을 밟게 된 출입구 관리처는 현재 수
도 내에서 가장 바빠진 기관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덕분에 직원들은 근
무태만했던 지난날을 후회하며 열심히 옛 자료들을 정리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그런 믿기 어려운 자료들을 보는 바함의 표정도 밝지 않았다.

 

 “이 사람은 어제 들어와서 삼일 전에 나갔나?”

 

 “아아니! 이런 실수가……”

 

 “동일인이 하루에 두 번이나 나갔나? 그것도 5분 만에?”

 

 “이이런! 쌍둥이인가?”

 

 “이 사람 이름은 왜 이 모양인가? 조토심심 라카로카? ‘좆도 심심, 나
가놀까’라고 장난친 거 아닌가?”

 

 “저어런! 국가의 기관을 우롱하다니!”

 

 바함은 한심스럽다는 듯이 직원을 쳐다보다가 이 기관에서 얻을 수 있을
정보를 깨끗이 포기했다. 오전 내내 기록을 뒤지고 난 뒤에 얻은 결론이
었다. 그는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행정직원을 뒤로한 채 바깥으로 나
왔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그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기록을 찾을 수
없다면 직접 탐문하는 수밖에 없다. 경비병들에게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그는 빠른 걸음으로 북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애
초부터 북문 관리처에 있었던 바함은 금세 북문 쪽에 도착했고 곧장 경비
초소를 찾아갔다. 북문은 위치상 출입자들이 별로 없는 구역이었다. 경비
병들은 한껏 편안한 자세로 늘어져 있다가 예상 못한 바함의 등장에 화들
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함은 멋쩍게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사실
경비대와 치안대는 별개의 조직이기 때문에 그들이 바함을 보고 놀란 이
유는 순전히 예상 못한 등장이었기 때문이다. 경비병들 중 상급자인 로스
마가 바함을 알아보았고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아이고! 바함 소대장님 아니십니까? 경비대장님이라도 나타난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차피 북문으로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데 뭘. 편하게 있게나.”

 

 “진짜 염통이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니깐요! 무튼 오랜만입니
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자네 이름이 로스마던가?”“예.”“별거 아닐세. 잠시 확인해볼 것이
있어 들렸네. 엘도 영감 계시나?”

 

 “엘도 씨요? 집에 계시려나? 아시다시피 은퇴하시고 나서는 매일 같이
들리시지는 않아요. 가끔씩 술 사들고 오시죠. 앗! 근무 중 음주는 비밀로
해주실 거죠?”

 

 로스마가 넉살좋게 윙크를 했고 바함은 껄껄 웃었다.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안 잘리려면 조심해야 될 거야.”

 

 “하하. 농담입니다. 소대장님 말씀처럼 요즘 시기에 근무 태만한 게 들
키면 바로 모가지죠. 애들 시켜서 엘도 씨 불러드릴까요?”

 

 “됐네. 쉬고 있는데 내가 방해했군. 직접 찾아가지. 지금 시간이면 집에
계시려나?”

 

 로스마는 바깥에 떠있는 해의 위치를 가늠해 보았다.

 

 “슬슬 노을이 지기 시작할 시간이니 지금쯤이면 산책을 하실 시간이군
요. 분명 이쪽으로도 오실 거예요. 저쪽 분수 보이시죠? 분수 돌아서 오른
쪽으로 가시다보면 마주치실 겁니다.”

 

 “고맙네. 수고하게. 로스마.”

 

 로스마는 싱글벙글 웃으며 붙임성 있게 경례를 올렸다. 바함은 그의 인
사를 뒤로하며 그가 말한 분수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퇴역
대원인 엘도에게서 쓸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
다. 출입구 관리처의 기록을 뒤진 것은 바함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기록을
뒤지다보면 반드시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거라 판단했고 그 이유는 바로
‘인체실험’때문이었다. 실험이라는 것은 완성도와 그 완성도까지의 과
정이 정비례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다르게 얘기하면 인체실험이 성공
적이었던 것만큼 실험에 쓰인 재료도 많았다는 뜻이다. 살인을 하고 난
뒤 살인범이 가장 애를 먹는 것은 바로 시체를 처리하는 것이다. 양질의
언데드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대량의 시체양산도 병행했다는 말이며 살인
범과 같은 고민거리를 떠안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많은 시체
를 수도 내에서 처리했을 리는 없다. 그리고 그 점에 대해 바함은 짐작하
는 바가 있었다. 그것은……

 

 “아, 엘도 영감님! 오랜만입니다.”

 

 “음? 바함 아닌가! 그건 그렇고 영감이라니! 아직 그런 소리 들을 나이
는 아닐세.”

 

 “하하, 목청을 보니 그 말도 맞는 것 같군요.”

 

 “그건 그렇고 웬일인가? 여긴 자네 담당구역이 아닐 텐데?”

 

 “아, 실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들렸습니다. 북문 쪽은 영감……,
엘도 씨가 그래도 가장 베테랑이시니까요.”

 

 “이미 은퇴한지가 2년이 넘었는데 뭐가 궁금한가?”

 

 “별거 아닙니다. 그냥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보통 북문 쪽은 엘몬
데드 때문에 자주 개방될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 마실 가기 위해 나갈만한 방향은 아니지.”

 

 “보통 무슨 용도로 열렸죠?”

 

 “그야 대체로 수도에서 나오는 각종 쓰레기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열렸
지. 엘몬데드 협곡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이만큼 폐기물 처리하기 그만
인 곳 아닌가. 그 외에는 뭐, 가끔 귀한 약재 구한다는 잡상인들 정도인가
…….”

 

 역시. 바함은 자신의 예상이 적중했다는 확신을 느꼈다.

 

 “제가 묻고 싶은 건 바로 앞 대목입니다. 평상시랑 다른 무언가가 없었
습니까? 뭐 높은 인물이 특별히 문을 열기를 원한다든지, 아니면 좀 부피
가 큰 쓰레기라던가. 뭐 사소한 거라도 괜찮습니다. 분명 궁성 에펠에서
나오는 쓰레기였을 텐데요.”

 

 엘도는 좀 의외라는 듯 바함을 쳐다보았다. 엘도의 얼굴에 느껴지는 미
세한 변화를 바함은 놓치지 않았다. 바함은 입매를 살짝 끌어올렸다.

 

 “있군요?”

 

 “왜 그걸 물어보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방금 자네가 말한 일이 분명 있
었네.”

 

 바함은 입맛을 다셨다.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실체의 꼬리를 잡았다. 바
함은 심장이 요동치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다급해진 바함이 재촉하자
엘도는 설명을 보충하기 시작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근 십년이 다 되어가는 일일세. 아니 넘었나? 정
확하지는 않지만 그쯤 되었어. 그 긴 시간동안 끊이지 않고 격주로 한 번
씩 궁성 에펠에서 나오는 특이한 쓰레기가 있었네. 나는 분명히 기억하네.
아니, 솔직히 기억할 수밖에 없어. 언제나 같은 사람이 몰고 나오는 대형
화물마차였으니까. 항상 꼭두새벽에 찾아와서는 문을 열게 시켰지. 우리
같은 이들이 귀족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 리가 있나. 내용물을 확인할 수
도 없고 그러려니 했지.”

 

 바함은 대형화물마차라는 말이 나올 때부터 그것이 시체더미일 것임을
짐작했다. 엘도를 잘 구슬리면 증언자로 써먹을 수 있겠군.

 

 “그 물건을 항상 처리한다던 인물의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10년이나 나왔으니 잊을 턱이 없지. 그자가 내미는 허가증에는 누말이
란 이름이 적혀 있었네.”

 

 바함은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그 이름을 머릿속에 새겼다. 본명이 아닐
가능성이 크지만 어쨌든 꼬리는 잡았다. 출입 허가증이 있음에도 불구하
고 출입구 관리처에 기록이 없다는 것은 분명 뒷돈을 먹였다는 뜻이다.
바함은 그를 반드시 찾아내리라 다짐했다.

 

 

 


 십인장 루더가 소유하고 있는 군함의 성능은 사실 다 비슷비슷하다. 해
전이 없는 만큼 굳이 다양한 종류의 성능을 가진 군함을 만들 이유가 없
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루더가 타고 있는 군함인 저스티스 호 역
시 특별히 뛰어난 성능을 갖춘 배는 아니다. 굳이 특출한 점을 찾자면 역
시나 타는 이에 신분에 맞게 외관이 좀 더 화려하다는 것과 좀 더 길게
뻗은 선수가 있다. 다른 배보다 좀 더 긴 길이를 자랑하는 저스티스 호의
화려한 선수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단순히 서있는 것만으로도 강한 투
기를 뿜어내는 사내, 바로 십인장 인실롭이었다. 그는 턱에 있는 흉터를
쓰다듬으며 앞에 있는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고민에 빠지
면 흉터를 쓰다듬는 게 버릇이 돼버렸다. 발키리에게 흉터를 선사받은 후
부터 생긴 버릇으로 오늘따라 그 느낌이 더 생생했다. 지속적으로 북진해
갈수록 날씨는 점점 더 추워졌고 그것은 루이즈번의 영역에 점점 가까워
진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생각하기 싫음에도 결코 떨쳐내지 못하는 두 존
재가 가까워져 온다.
 턱에 흉터를 남긴 이름 모를 그녀와 엘헤미아의 북벽 하이막스…….
 그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인실롭은 그의 추격전이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벌써 율리아 항구라니! 싫은 추억을 떠올리
게 만드는 장소는 마찬가지로 반갑지 않았다. 하이막스가 있는 옵슬레이
에는 결코 가고 싶지 않았기에 인실롭은 율리아 항구에서 현월단을 꼭 잡
고 싶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전방을 쳐다보았다. 먼 곳에서 쳐다보는
것이었지만 강력한 용오름이 바다를 휘젓다가 점차 소멸해가는 모습은 장
관 중에 장관이었다. 하늘 전체가 먹구름으로 가득 찼으며 급하게 모인
구름들은 저마다 으르렁 거리며 벼락을 자아내고 있었다. 시야에 들어오
는 바다 전체가 미쳐 날뛰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도저히 인공적으로 만
들어낸 광경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이 근방 해역에 존재했던 배들은
결코 온전하지 못할 위력의 용오름이었고, 트로고스의 정찰 덕에 크레센
트 호는 완벽하게 그 범위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바다 속에 있는 현월단
의 입장은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 즉 완벽한 덫이었다. 맡은 바 소임을
다한 용오름의 크기가 눈에 띄게 작아져 시야가 확보되기 시작했다. 인실
롭이 망원경으로 확인한 크레센트 호의 모습은 덫이 얼마나 훌륭하게 작
용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인실롭은 망원경을 내리곤 다시
전방을 쳐다보았다. 크레센트 호를 넘어 수평선에는 15척의 군함이 점점
이 보였다. 전쟁도 가능한 숫자였다.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위용
을 자랑하는 루더의 함대가 저스티스 호 방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 사이에 있는 크레센트 호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인실롭의 뒤로 몬반이 나타났다. 몬반 역시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실로
감탄하고 있었다.

 

 “정말 죽어도 못 잊을만한 광경이로군. 망원경으로 보는 편이 더 잘 보
이지 않겠나?”

 

 “벌써 봤다. 난파 직전이야.”

 

 몬반은 몸을 가볍게 풀기 시작하며 순수하게 웃었다.

 

 “하핫. 꽤나 긴 추격이었군.”

 

 인실롭은 절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무 긴 추격이었다.”

 

 몬반은 인실롭에 격한 반응에 조금 의아해했지만 그다지 신경 쓰진 않았
다. 그들 뒤로 함대의 사령관 루더와 그의 보좌인 알로에가 선수 쪽으로
다가왔다. 루더는 온화한 언성으로 인실롭에게 말을 걸었다.

 

 “결판이 난 듯싶소만.”

 

 “루더. 섣불리 다가가면 오히려 위험할 거라고 판단된다. 접근은 우리
배만으로 하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건너편 함대에는 포격 준비 시키고.”

 

 인실롭에 말에 알로에는 인상을 찌푸렸다. 서해안의 지휘권은 명백히 십
인장 루더에게 있다. 하지만 인실롭의 말투는 영락없는 명령조였다. 알로
에가 자신의 충성심을 들어내려 할 때 루더가 전혀 개의치 않다는 표정으
로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 했소.”

 

 루더는 선장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렸고 곧이어 수평선 쪽 함대에게 깃
발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함대끼리 몇 차례 깃발신호가 오고간 시간은
채 몇 분도 되지 않았다. 몬반은 저런 의미 불명해 보이는 신호 몇 개로
함대를 통제하는가하며 의아해했지만 그의 고민이 우습다는 듯 수평선의
군함들은 서로의 거리를 크게 벌리기 시작했다. 측면으로 돌기 위해 큰
포물선을 그리는 것이다. 군함같이 거대한 배는 방향을 틀기가 쉽지 않다.
하물며 15척이나 되는 배가 포격을 위해 측면으로 돌려면 만만찮은 공간
과 재주가 필요하다. 결코 말처럼 쉽지 않은 함대 배치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진행되고 있었다. 바다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인실롭이었지만 군
대 제식에 해당하는 잘 통제된 배의 움직임을 보며 루더에 대한 경이를
느낄 수 있었다. 난파되기 직전에 배 한척을 두고 벌이는 움직임치고는
너무 정교하다. 꿇릴 수야 없지. 인실롭은 아직 거리가 많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칼을 뽑아들었다. 그리곤 마음의 동요를 억누르며 조용
히 호흡을 골랐다. 그의 주위로 칼날처럼 날카로운 투기가 발산되기 시작
했다. 무사에 대한 또 하나의 경지를 보게 된 루더는 경탄하며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저 나이에 저 정도의 성취라니, 정말 놀랍군.’

 

 알로에는 인실롭의 기백에 밀려 뒷걸음질마저 치고 말았다. 루더는 고작
도적단 하나 때문에 십인장들이 이런 기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게 코믹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여러 가지 의미로 참 대단한 적이었다. 루더는 싱긋 웃
으며 군함 위에 병력들을 배치시켰다. 군함 위에는 2개의 기사단이 있었
고 그들 모두 패검한 상태였다.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하늘이 조금씩 진정되며 파도의 높이도 잦아들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재해이다 보니 사라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날씨가 안정이 되자 반대
편 군함에 있던 리더스카이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인실롭은 망원경을 들
어 그 광경을 쳐다보기 시작했고 리더스카이는 공격에 대비해 조심스럽게
원을 그리며 크레센트 호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인실롭은 시야를 조금 내
려 크레센트 호를 쳐다보았다. 너덜너덜해진 크레센트 호는 더 이상의 항
해가 불가능한 볼품없는 모습으로 정지해 있었다. 저 작은 범선이 맞기에
는 끔찍한 재해였을 것이다.
 결판이 났다.
 현월단의 도주는 여기서 끝이 났다.

 

 


 대장군 세이건은 자신의 방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세일로 레이텐을 마시
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언제쯤 저 부동자세가 풀릴까 심히 고민하게 만
드는 튜더가 엄격함으로 무장한 표정을 유지한 채 서있었다. 세이건은 간
만에 즐기는 휴식을 망치고 싶지 않았지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 번 말해보게. 록셀 공이 어쨌다고?”

 

 “요즘 저희들의 정보를 캐내려는 몇 가지 의심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귀족원에 있는 이들 중에서 각하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런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이는 록셀 가문의 수장 록셀 세이류드 공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책잡힐 만한 게 있나?”

 

 “지금은 민감한 시기이니까요. 이 계획의 주모자는 저희들입니다. 그 점
이 시민들에게 밝혀진다면 좋지 않은 상황이 야기될 것입니다. 요즘 시민
들 사이에서 그런 소문이 도는 모양입니다.”

 

 “사람을 푼 모양이군. 록셀 공께서 드디어 칼을 빼들으셨나. 크큭. 다급
해진 모양이군.”

 

 세이건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튜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궁지에 몰린 건 그쪽이니까요. 루즈라벤의 자료가 공개될 리는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루만에게도 꼬리가 잡히지 않게 처리해두라고 
지시를 내려놓았습니다.”

 

 세이건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발코니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눈앞에 수도
엘파하가 한눈에 들어왔다.

 

 “난 항상 외부적인 원동력으로 움직이는 이들을 혐오해왔지. 어느 정도
는 나로 인해 움직이게 된 것이겠지만 록셀 공께서 드디어 스스로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일어나셨다?”

 

 세이건은 짧게 읊조렸다. “재밌군.” 뒤에 있는 튜더가 겨우 들릴만한
혼잣말이었다. 세이건이 갑자기 격정적인 자세로 두 팔을 펼쳤다.

 

 “록셀 공! 이깟 성의 주인 노릇을 하고 싶어서 그렇게 안달이 나셨단
말이오?”

 

 세이건의 목소리가 방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의 앞에 펼쳐진
엘파하의 전경 때문에 마치 수도 전체에 그의 목소리가 퍼지는 듯 착각을
일으키는 모습이었다. 세이건은 튜더를 뒤돌아보며 야수처럼 포효했다.

 

 “튜더, 말하라! 그는 고작 왕좌 따위에 집착하는 것이냐?”

 

 튜더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범인이 생각해낼 수 있는 그릇의 한계겠지요.”

 

 세이건은 다시 엘파하의 전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손에 들려 있던
와인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세상과 건배를 마친 대장군은 한 글자 한 글
자를 못으로 때려 박듯 내뱉었다.

 

 “가지고 싶다면 맘대로 가져라. 록셀! 나는 그 너머를 보고 있다.”

 

 

 


 인실롭은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리더스카이가 변
신을 풀고 크레센트 호에 내려섰다. 그리고는 충격에 휩싸인 듯 저스티스
호를 향해 격렬하게 소리쳤다. 들릴 리가 없는 거리였지만 인실롭은 본능
적으로 그가 날아오는 것보다 더 빨리 소식을 전하기 위해 취한 행동임을
알 수 있었다. 자크 지방의 새는 발음 때문에 입모양으로 그의 말을 알아
듣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고 그 때문에 인실롭은 몇 번이나 주의 깊
게 쳐다봐야 했다.

 

 “어, 업……. 다. 그, 드, 이…… 업. 다.”

 

 인실롭은 알아볼 수 있는 발음만을 그대로 옮겼다. 몬반이 경악하며 인
실롭의 말을 이어 붙였다.

 

 “없다! 그들이 없다!” - 퍼어어엉!

 

 몬반의 말과 동시에 강력한 포성 소리가 들려왔다. 인실롭은 충격으로
망원경을 내리며 포성이 들려온 방향을 쳐다보았다. 루더 역시 경악하며
선수 끝으로 다가섰다. 함대에 배 두 척이 포탄을 맞고 시커먼 연기를 피
워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두 군함을 쏜 배는 다름 아닌 두 배 사이에 있
는 군함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포탄이 연이어 발사되었다.

 

 - 퍼어어엉!

 

 직격으로 두 번이나 포격을 받은 두 척의 군함은 순식간에 재기불능 상
태가 되었다. 예상치 못한 아군의 행동에 모두들 기가 막혀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루더는 망원경을 들어 포격을 한 군함을 쳐다보았다. 분명
자신의 군함 중 하나인 윈드스워드 호였다. 돌발행동을 한 윈드스워드 호
가 서서히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사태를 깨달은 인실롭이 괴성을 질렀다.

 

 “공간이동! 그대들이 엘몬데드 협곡의 일을 다시금 재현해보인거야!”

 


==================================================================
 정말 잘 도망 다니는군요.

Who's yarsas

profile

 인간의 망상은 한계가 없지

?
  • profile
    욀슨 2012.09.23 08:48
    명탐정 바함...... 그건 그렇고, 알자로도 바다 위에서도 그 정도 거리는 이동할 수 있었던 모양이었군요. 재미있게 봤습니다.
  • profile
    yarsas 2012.09.24 07:46
    중요한 핵심 짚어주셨습니다. 다음 화에 그 부분에 대한 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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