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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AD] 2. 창공의 불청객 - 4     

 

 


 그것이 강력한 도발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이 이상은 무의미하다 판단
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인실롭은 ‘마지막 질문’이라는 그의 약속을 지
켰다. 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는 얘기다. 그 어떤 개전의 신호도 없었다.
멈췄던 물꼬가 터지듯 거세게, 하지만 결코 요란스럽지 않게 시작된 싸움
이었다. 클라보가 땅속으로 스며들듯 사라졌고 몬반은 자신의 도끼를 부
여잡고 알자로에게 돌격했다. 클라보가 모습을 감췄다는 사실을 신경 쓸
틈도 없이 몬반이 맹렬한 기세로 공격을 시도했다. 단장은 주의 깊게 공
격 궤도를 살피며 그의 공격을 피했다.
 그때였다.
 닿을 거리가 아니라 판단했던 도끼가 순식간에 단장의 목을 자를 기세로
다가왔다. 단장은 몸을 크게 뒤로 물리며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일격을
피하자마자 땅속에서 클라보의 팔이 튀어나왔다. 분명 기습에 속하는 공
격이었지만 단장은 예상하기라도 한 듯 여유롭게 클라보의 팔을 피했다.
하지만 단장을 향한 몬반의 공격이 쉴 틈 없이 이어졌다. 그의 기량을 충
분히 보여주는 매섭고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받아칠 여유가 없었던 단장
은 나무쪽으로 짧게 도약했다. 그 뒤로 번개 같은 인실롭의 칼이 찾아왔
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공기를 찢어버릴 정도였고 그 일격이 나무 세
그루를 동시에 쪼개놓았다. 언데드의 재생력으로도 뼈도 못 추릴 만한 일
격이었다. 허나 그 일격의 피해자는 그의 눈앞에 없었다. 나무를 발판 삼
아 단장이 2차 도약을 한 것이다. 히브레가 거대한 주먹을 공중을 날고
있는 알자로에게로 휘둘렀다. 분노로 똘똘 뭉친 히브레의 공격은 마치 산
이 분노한 것 같았다.

 

“감히 리지를 공격했어라!”

 

 꼼짝없이 당할 거라 생각했던 모두의 예상과 달리 단장은 공중에서 아무
런 발판 없이 3차 도약을 했다. 인실롭은 감탄했다. 놀랍군! 레이몬드를
상대한 단장의 전투능력은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보면 볼수록 정체가 궁
금해지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감정이 흐트러져선 안 된다. 인실롭
은 그의 빈틈을 노리며 주의 깊게 전투의 흐름을 살폈다. 단장은 지금 거
대한 히브레의 팔에 올라타 농락하듯 그의 몸 위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애당초 레이몬드를 상대할 만한 괴물이라면 무식하게 덩치만 큰 히브레는
상대가 못 될 터였다. 하지만 로한이 그러했듯 단장에게도 수적 열세는
극복하기 힘든 난관이었다. 어느새 나무 위에서 내려오는 몬반의 도끼와
밑에서 올라오는 클라보의 팔이 양쪽으로 압박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
다. 이번엔 결코 피할 수 없었다. 완벽한 공격이었다. 인실롭은 자신조차
피할 수 없을 회심의 공격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최소 중상이었을 그 난
폭한 공격들은 히브레가 그러했듯 대상을 잃고 허공을 갈랐다. 인실롭의
눈이 크게 떠졌다. 공격을 감행한 두 언데드도 믿을 수 없어 입을 벌렸다.
어느새 그들의 시야 바깥에서 나타난 알자로는 가볍게 칼끝을 돌리며 그
들 전부를 쳐다보고 있었다. 인실롭은 이를 악물었다. 반드시 맞았어야만
하는 공격이었다.

 

 ‘공격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 분명 그의 능력과 관계있다.’

 

 인실롭은 알자로가 대장군과 십인장이 지키고 있던 궁성 에펠에서도 순
식간에 사라졌음을 알고 있었다.

 

 ‘허상을 만들어내는 능력인가? 모든 것을 교란시키는?’

 

 눈으로 쳐다본다고 능력을 알 수 있을 리는 없었지만 인실롭은 단장에게
칼을 겨누며 그의 모든 부분에 주의를 기울였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이 순간도 거짓이라면 어떡해야 할까. 지금 눈앞에 있는 적이 실체가 아
니라면? 그렇다면 헛된 곳을 공격하게 만들고 적을 교란시켜 도망치는 것
도 가능하다. 단장은 인실롭의 의심에 가득 찬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공격에 확신이 없다면 날 이길 수 없을 것 같군. 인실롭.”

 

 인실롭은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하군. 그대가 어제 수도에서 단원
들 전부를 노출시키면서도 이제껏 자신을 계속 숨겨왔다는 건 그만큼 그
능력이 특수하기 때문이겠지.”

 

 “정답.”

 

 “엘몬데드 협곡으로 동료를 먼저 보내고 혼자 이곳에 남았다는 건 우리
를 교란시킬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고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이겠지. 그리
고 이런 짓을 꾸민 걸 보면 이 상황에서도 자신이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
하는 거고.”

 

 “그것도 정답.”

 

 단장의 겉모습은 무표정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인실롭의 판단은 소
름끼치도록 정확했다. 지휘관으로써 손색이 없었다. 그 때 인실롭이 일갈
(一喝)했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 클라보!”

 

 “미안하지만 그건 틀렸어.”

 

 얘기 도중 어느 샌가 기척을 감췄던 클라보가 단장의 발밑에서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하지만 단장은 이미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았다.

 

 “클라보의 능력은 이미 알고 있다.”

 

 클라보는 신체를 일정시간 액체형태로 만들 수 있는 매우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신체의 3분의 2의 해당하는 물을 조작해 형태를 갖춘 액
체로 변하는 것이다. 그것은 잠행 및 스파이 활동에도 유용하며 지금처럼
땅속에 스며들어 적을 기습할 수도 있었다. 장시간 유지할 수 있게 지속
적인 능력개발이 이루어진다면 어떠한 공격도 통하지 않는 강력한 능력자
가 될 것이 분명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능력은 혹한의 북방에서 전혀
쓸모가 없다. 능력으로만 따지면 로한보다도 상위권에 있을 클라보의 넘
버가 낮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단장은 어떻게 클라보의 능력을 알고 있을까? 앞서 몬반이 얘기
했듯 언데드끼리 서로의 능력을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넘버 2 발락
같이 너무 유명한 경우이거나 서로의 능력상성을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당한 경우가 아니면 말이다. 입이 너무 가벼워 주체 없이 떠드는 루즈라
벤의 수다 때문에 알게 되는 경우도 포함해야겠지만, 언데드는 엄연히 군
사계획이다. 그들의 능력은 당연히 기밀에 속한다. 서열 10위권의 능력이
라며 두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도 몬반은 오늘 클라보를 만나기 전까진
그의 능력을 전혀 몰랐다. 마냥 자신보다 서열이 낮아 약할 거라 생각했
다가 놀랐었던 참이었다. 헌데 단장은 어떻게 그의 능력을 알고 있을까?
몬반은 시험해보기로 했다. 몬반은 클라보의 공격을 피해 뒤로 도약한 단
장에게 빠른 속도로 돌격했다. 몬반의 도끼가 피를 탐하며 휘둘러졌다. 그
공격은 매우 기이했다. 그리고 단장은 또 피해냈다. 몬반은 도끼르 추스르
며 말했다.

 

 “역시. 넌 내 능력도 알고 있군. 좀 전에 피한 건 우연인 줄 알았는데.”

 

 “이해력이 좀 느린가 보군. 난 너희들 전부를 알고 있다고 분명히 말했
는데.”

 

 몬반은 짧게 으르렁 거렸다. 그의 능력은 탄소조작이었다. 자신의 몸을
강화시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포를 무기에 섞어 자신의
의도대로 떡 주무르듯 형태를 변형시킬 수 있는 강점을 갖춘 능력이었다.
그는 전투의 형세에 따라 무기의 길이나 형태를 마음껏 조정할 수 있었
고, 그만큼 다양한 무기에 조예가 깊었다. 그렇기에 급박한 실전에서 그의
공격을 감당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몬반은 순수한 병장
전(兵仗戰)에서 로한과의 승부도 이겼던 전례가 있었다. 그런 그의 공격
을 처음부터 그렇게 간단히 피했다는 건 그의 능력을 알고 있었던 것에
기인한다(알고서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은 일단 제쳐두고 말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알자로의 정체는 더 모호해졌다. 루즈라벤이나 튜더가 아니고서
야 이렇듯 모든 언데드의 능력을 상세히 알고 있는 이는 대체 누구인가?
그 때 이제껏 고통으로 몸부림치던 리지가 일어섰다. 팔이 없어진 부위는
이미 재생이 끝나 있었다.

 

 “다들 뭐하고 있는 거야! 내가 빠졌다고 이렇게 멍청하게들 당하고 있
어?”

 

 히브레가 눈을 껌뻑거리며 말했다.

 

 “리지, 젤 많이 당한 건 리지인 것 같은데유…….”

 

 “닥쳐, 병신아!”

 

 정말 다행히도 히브레는 ‘지금 리지가 병신이에유.’에 해당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리지는 다시는 재생되지 않을 자신의 오른팔이었던 부분을
쳐다보며 이를 갈았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자신을 지배했다. 단장은 그
런 그녀의 분노를 무감정하게 쳐다보았다.

 

 “팔 한 쪽으로는 부족한가? 그래도 걸어 다닐 수 있는 편이 좋을 텐데.”

 

 리지가 앙칼지게 받아쳤다.

 

 “두 배, 세 배로 갚아주마! 약 처먹은 개 같은 놈! 넌 왼팔 하나로 충
분해! 내가 반드시 네 뼈와 살을 발라서 돼지우리에 던져줄 거다!”

 

 “역시 처음부터 목을 자르는 편이 좋았겠군. 언데드라서 좀 더 살게 해
주려 했는데……. 교양 없는 여자는 딱 질색이다.”

 

 단장은 칼의 각도를 조금 바꿔 잡았다. 마치 무정물을 대하듯 그 목소리
와 동작엔 다른 감정이 없어 보였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
리지를 히브레가 붙잡았다.

 

 “뭐해! 히브레! 이거 안 놔?”

 

 “모르겠어라, 리지? 이 이상 덤비면 정말 죽을 것이어라.”

 

 인실롭은 한숨을 내쉬었다.

 

 “명령불복종으로 그대 목을 치지 않은 것에 감사해라, 리지. 더 이상 전
투에 나서지 마. 히브레. 리지를 지켜라. 몬반과 클라보. 이제부터 우리 셋
만으로 전투를 담당하겠다. 속도와 힘으로 협공해 단숨에 밀어붙인다. 쉴
틈을 주지 마.”

 

 몬반과 클라보가 자연스럽게 인실롭 옆에 붙었다. 정말 기가 막힌 대치
였다. 처음에 분노도 사라졌고 협공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히브레도
빠졌다. 이성적이면서도 치명적인 흐름의 공격이 빗발칠 것은 너무나 자
명한 일이었다. 협공 면에서는 오히려 지금의 셋이 더 완벽한 조합이다.
엘헤미아의 북벽 하이막스 조차도 쉽게 상대하지 못할 조합은 단장에게
있어서도 꺼림칙하긴 마찬가지였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알자로는 무
적자(無籍者)가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이미 자신이 버거운 싸움을 하고
있다고 판단한 상태였다. 방금 전 이루어진 공격들을 모조리 피해낸 것은
그에게 있어서도 기적과 우연에 가까웠다. 그들의 공격을 피하려면 자신
의 능력을 써야 한다. 하지만 능력을 남용하면 단(團)이 죽게 된다. 엘몬
데드 협곡을 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능력이 필요했다. 최소한 15분
은 더 버텨야 단원들이 추격당하지 않는 선에서 엘몬데드 협곡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단장은 조금 더 시간을 끌어야겠다고 판단했다. 때로는
허세도 좋은 전략이다.

 

 “그만두는 게 좋을걸. 너희들은 나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인실롭은 그렇게 녹녹치 않았다.

 

 “건방떨다 갑자기 대화를 하려 드는 건 시간을 끌고 싶다는 뜻이로군.
슬슬 한계인가 보지?”

 

 단장은 단번에 자신의 속셈을 간파당한 것에 낭패를 느꼈다. 역시 십인
장은 재수 없는 것들이다.

 

 “능력이 뭔지는 몰라도 사용한도에는 분명 제한이 있을 터. 로한도 하
루 종일 땔감 없이 불태우지는 못해. 이제껏 공격다운 공격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만 봐도 그대가 시간을 끌고 있다는 건 명백하다. 조금
만 더 밀어붙이면 밑천이 바닥나겠군.”

 

 몬반이 도끼를 겨누었다.

 

 “딱히 동료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쪽이 리지에게 한 행동
은 충분히 복수해줄 사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클라보가 소매로 입을 슬며시 가리며 말했다.

 

 “제 능력을 알고 있다고요?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지 확인시켜줘야 겠
는 걸요.”

 

 단장은 짧게 상황을 정리했다. 그의 전투능력은 사실상 넘버 10위권들과
비슷한 수준. 일대일로 붙으면 그럭저럭 결판이 나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
에선 자신이 결딴날 판이다. 단원 전부가 붙어도 전멸할 수도 있는 일을
더 이상 버티는 것은 무리다. 더 이상 버티려했다간 오히려 단의 죽음을
초래하는 꼴이 될 것이다. 단장은 인실롭을 노려보았다.

 

 “반드시, 다음번에 반드시 오늘의 후퇴를 갚아주겠다.”

 

 “나중에 받는 거 싫어해서. 지금 내놔.”

 

 “조금 전에 했던 말을 정정하지. 너희들은 결코 나를 죽일 수 없다. 아
니, 붙잡을 수 없다는 편이 더 정확하겠군.”

 

 그 말을 끝으로 단장은 갑자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진행된 일이었지만 그들은 당황하지 않고 각자의 무기를 쥔 채
추격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은 걸음을 멈췄다. 머리가 새하얘지
는 느낌이었다. 단장이 거대한 나무쪽이랑 겹쳐진다고 생각한 그 순간 그
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인실롭은 분노로 괴성을 질렀다.

 

 

 


 “현월단의 소행이라고?”

 

 세이건은 마치 재밌는 이야기라도 들은 것 마냥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튜
더를 쳐다보았다.

 

 “예. 명화 두 점이 도난당했을 때 초승달 마크를 남겨서 세간에 알려진
그 도적단입니다. 오큐벨라스를 훔쳐간 자리에서 뒤늦게 그들의 마크가
발견되었습니다.”

 

 “기가 막히는군. 궁성 에펠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가지고 싶어 하는 것
만 쏙 빼간다고?”

 

 대장군의 노골적인 비아냥거림을 듣던 튜더는 궁성보안이 자신의 소관이
아님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이제껏 루즈라벤이 관리를 잘 해온다는 말만 믿고 있었는데 사실 그들
이 바깥에서 도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고? 농담이 지나치군, 튜더.”

 

 세이건의 목소리엔 노기가 담겨 있었다. 튜더는 고개를 조금 숙여 보였
다.

 

 “각하. 루즈라벤을 변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그들의 리더를 더 주
목해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언데드가 체계적인 관리와 감시를 동시에 받
는다는 건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각하께서 이 일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 역시 루즈라벤과 함께 언
데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것이구요.”

 

 “단장이란 자의 능력이 지금 이 일련의 사건들을 가능하게 했다는 게
요점인가?”

 

 튜더는 고개를 끄덕였고 세이건은 이죽거렸다.

 

 “차트에 있지도 않은 유령이 온 곳을 들쑤시는군.”

 

 세이건은 삐딱하게 선 채로 손을 약간씩 까딱거렸다. 그가 깊은 고민에
빠질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다행히 조금은 화가 누그러진 모양이었다. 튜
더가 안심하려 할 때, 불현듯 세이건이 입을 열었다.

 

 “인실롭이 지금쯤 녀석들을 따라잡았을 텐데.”

 

 “그들이 정말 엘몬데드로 갔을 거라 확신하십니까?”

 

 “그래, 그 점은 확신하네.”

 

 “저는 지금도 그 연유를 모르겠습니다. 설명해주실 수는 없는 겁니까?”

 

 “도주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나?”

 

 “예?”

 

 다행히도 세이건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신속함이네. 그럼 추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겠나?”

 

 튜더는 말문이 막힌 채 의아함으로 대장군을 쳐다보았다. 역시나 대장군
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도주보다도 더한 신속함이야.”

 

 튜더는 말장난 같은 대장군의 말을 계속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엘헤미아의 막강한 자랑거리 중 하나는 바로 빠른 정보 전달력이
네. 트로고스를 이용하면 전국 어디든지 두 주면 전파가 완료되지. 다르게
말하면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지는데 두 주면 충분하다는 얘길세. 그런 그
들이 잡히지 않고 엘헤미아에서 탈출하려면 얼마나 빨리 도망쳐야할까?
엘몬데드보다 빠른 길은 없어. 그게 최단거리야.”

 

 “하지만 엘몬데드는 넘을 수 없지 않습니까?”

 

 “왜 없어? 엘몬데드라 해도 비행수단이 있다면 얼마든지 넘을 수 있어.
트로고스 역시 그런 비행수단 아닌가?”

 

 “하지만 일반인이 트로고스를 길들인다는 건……, 게다가 트로고스 역
시 동물입니다. 언데드 같은 괴물은 본능적으로 피한다는 것 아시지 않습
니까?”

 

 “누가 트로고스를 이용해서 그들이 엘몬데드를 넘는다고 했나?”

 

 튜더는 대장군의 말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들이 비행수단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그것까지 확신하지는 않아. 다만 그곳을 절대 넘지 못할 것이라 미리
판단하는 성급함을 혐오하지. 녀석들은 그곳을 넘을 수단을 반드시 가지
고 있을 거야.”

 

 엘헤미아의 막강한 정보전파 수단인 트로고스. 그것은 독수리의 일종으
로 날개를 펼치면 크기가 4미터가 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조류다. 비
행과 사냥 면에서 따라갈 조류가 없는 그 맹금은 왕국에만 밀전(密傳)되
는 비법으로 인해 길들여진다. 길들인 트로고스를 승용물(乘用物) 삼아
사람이 타고 전국적으로 정보를 전파하는 것이다. 궁성 에펠에는 체계적
인 형태로 관리되고 있는 거대한 트로고스 양식장이 있다. 트로고스를 타
고 비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다 매우 위험한 일이라 전문적인 교육 하에
고도의 비행술을 배워 이루어지는 엘헤미아의 자랑거리였다. 그렇기에 트
로고스를 타고 공중을 날려면 왕의 허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현재 그 허
가는 떨어진 상태다. 하나는 전국적인 수배령을 내리는 일이었고, 두 번째
는 도주자들을 수색하는 정찰이었다. 그리고 그 정찰병들이 곧 있으면 돌
아온다. 튜더는 반신반의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해결사 루만이 그들
의 집무실에 들어왔다.

 

 “대장군님의 말씀이 맞았군요. 가장 빠른 트로고스가 확인했습니다.”

 

 루만의 간략한 보고에 튜더는 결국 인정해야 했다. 대장군은 비릿한 미
소를 지어보였다.

 

 “항상 강조하지만 성급한 일반화는 금물일세. 튜더. 적을 잡으려면 적보
다 더 교활해져야 하는 법이야.”

 

 튜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군은 그렇기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레이몬드를 죽이고 우리 앞에서 도망갈 정도의 적인데, 대응이
너무 허술한 거 아닌가? 추격자들의 넘버가 너무 낮은 것 같던데…….”

 

 “조치는 확실히 해두었습니다. 저는 각하의 명을 가벼이 여기지 않으니
까요.”

 

 튜더는 대장군의 보좌관이다. 그의 지시에 확신이 없어도 명령이 떨어지
면 만전을 기한다. 튜더에게 있어서 엄격함으로 무장된 보좌관이란 그런
것이었다.

 

 

 


 세이지가 다가와 단장의 품에 안겼다.

 

 “단장!”

 

 엘로린이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온화하게 말했다.

 

 “무사하셨군요. 단장.”

 

 세이지를 내려놓으며 단장이 말했다.

 

 “재회의 반가움은 나중에. 일단은 최대한 빨리 엘몬데드 협곡으로 도착
한다.”

 

 매튜가 호전적으로 망치를 흔들며 물었다.

 

 “몇 명이나 쓰러뜨렸어?”

 

 “닥쳐라. 근육망치! 방금 싸우고 온 단장한테 너는 궁금한 게 그거밖에
없냐?”

 

 “린! 너는 이제 내가 말만 하면 뭐라 그러냐!”

 

 로한이 한숨을 쉬었다.

 

 “한심한 녀석들.”

 

 단장은 가볍게 웃어보였다. 단원들의 화기애애함은 언제나 자신을 즐겁
게 하는 요소였다.

 

 “만만한 녀석들이 아니라서 한 몸 빼기도 벅차더군. 하지만 나중에 꼭
앙갚음은 해줘야겠어.”

 

 그들은 유쾌하게 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엘몬데드 협곡에 도착했다.
다행히 적들의 추격이 그들을 따라잡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눈 앞에
펼쳐진 압도적인 풍경 때문에 잠시 동안 추적에 대한 것도 생각하지 못했
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신음했다.

 

 “이, 이거 왜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지 알겠는걸.”

 

 웅장하게 벌어진 협곡은 마치 용이 입을 벌린 듯 무시무시했다. 그 어떠
한 햇살도 자신을 유지한 채 밑바닥을 건드릴 수 없는 협곡. 바닥은 보이
지도 않았고 양옆으로 주욱 이어진 너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건너편은 지
평선이라 해야 할 만큼 떨어져 있었다. 반대편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
도로 거대한 엘몬데드 협곡의 모습은 그 경이적인 규모와 괴기한 모습으
로 사람들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밑으로 떨어지면 그 시체조차 찾을 수
없는 신이 만들어낸 놀라운 자연경관 앞에 그들은 탄식했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 볼 수 있을만한 광경이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질리게 만드는 그
끔찍함 앞에 피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휘유-. 정말 단장의 능력이 있다 해도 넘어간다는 게 끔찍하게 들리는
곳이군요.”

 

 린이 비웃었다.

 

 “피트는 정말 간이 콩알만 하군. 약해빠진 남자는 정말 매력 없는 거
알아? 단장이나 로한처럼 좀 근사해져 보라고.”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그럼 나도 멋지겠는 걸?”

 

 피트는 사람 좋게 웃었고 린은 매튜의 엉덩이를 걷어차 주었다. 로한이
단장에게 물었다.

 

 “능력, 쓸 수 있겠어? 꽤나 벅찬 싸움이었을 텐데.”

 

 “날 뭐로 보는 건가, 로한? 이 계획들은 전부 나랑 피트가 짠 거다. 부
연하지 않아도 내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계획인 걸 알잖아? 내 어깨에는
너희들의 목숨이 달려있다.”

 

 휘두르는 매튜의 망치를 피하던 린은 홀린 듯 단장의 얼굴을 쳐다보았
다.

 

 “어쩜 말을 저리도 멋있게 할까!”

 

 로한은 머리를 뒤로 긁적이며 말했다.

 

 “하여간 멋있는 건 자기가 다한다니까. 그럼 어서 우리를 구해주겠어?
뒤에 뭔가 달고 다니는 건 성미에 안 맞아서.”

 

 알자로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주저 없이 그의 능력을 발현시
켰다.

 


==================================================================
 이 부분 쓰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윤주 님이 제 글을 매주 홍보해 주시기로 하셨는데 이거 정말 부끄럽군
요. 언제나 참신한 기획력과 열정, 그리고 근성에 박수를 보냅니다.
 하여튼 저는 이제 매주 금요일날 돌아옵니다. 챕터 끝나면 한주 쉬고 격
주에 연재할 생각입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몇 안 되는 소중한 분들은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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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망상은 한계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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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욀슨 2012.06.29 22:39
    오호. 단장은 시간이라도 멈추는 걸까요, 아니면 몇 초 간의 미래를 지우기라도 하는 걸까요.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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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arsas 2012.06.30 02:47
    전개되다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 ?
    츤데레 포인트걸 2012.06.30 02:47
    따, 딱히 yarsas님이 좋아서 10포인트를 지급하는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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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6.29 22:55

    오 초능력자를 다루는 소설은 정말 ..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장편으로 갈수 있죠 ...!! (소재가 한정이 없으니깐 ;) 갑자기 어마금이 생각나네요! 잘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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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arsas 2012.06.30 02:48
    어마금이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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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6.30 02:49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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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arsas 2012.06.30 03:00
    아, 안타깝게도 제가 못 본 거네요뉴_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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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주[尹主] 2012.06.30 15:42

     잘 봤습니다.
     단장의 능력에 대한 힌트가 이번 화에 있었을 거 같은데, 암만 봐도 확신은 들지 않네요; 해답을 알고 싶다면 다음 주까지는 기다려야겠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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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arsas 2012.06.30 16:02
    단장 요 놈이 문제아에요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츤데레 포인트걸 2012.06.30 16:02
    따, 딱히 yarsas님이 좋아서 10포인트를 지급하는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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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arsas 2012.06.30 16:03
    얘는 이제 내가 말만 하면 따라오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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